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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는 건 얼마나 복된 일인가
임의진 시인의 광주 속살 순례기 ‘언저리와 변두리’ 시즌 2
<7> 비엔날레·시립미술관, 그리고 김광석
프랑스 바르비종서 밀레 만났을 땐
‘만종’ 화집 찢어 딱지쳤던 기억에 미안
비엔날레관 옆 병원 두어주 입원
잠깐의 산책길과 전시 눈호강
미술관이 치료제이고 약이었다
2023년 09월 25일(월) 19:35
우후죽순 솟아나는 빌딩과 아파트숲에서 그나마 미술관이 있으니 숨통이 트인다. ‘미술관 노마드’들에게 행복을 안겨주는 광주시립미술관 전경. <광주일보 자료 사진>
‘고독한 산책자, 행복한 자유인’은 미술관에 보통들 있다. 모순과 길항의 궤도에 갇혀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사색과 휴식으로 안내하는 미술관. 상투적으로, 교양있고 잘난 척하는 이들이 꺼내는 미술 관람이 아니라 사실이 정말 그러하다. 농부들이 기름진 들판을 삽으로 어루만지듯 화공들은 캔버스에 붓을 들어 농사를 짓는다. 밀레의 만종이나 어디 양떼 목장을 그린 그림들을 보면 농사와 그림이 마치 하나인 듯 보였다. 글자를 깨우친 뒤로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이 기루어서 이 시를 쓴다” 시인이자 승려인 만해 한용운의 감흥을 알게 되었고, 글은 그림이 되고, 그림은 글이 되어 나를 휘감쌌다.

아버지의 목사관에서 자라면서, 아버지가 주로 거처하시던 서재를 들락거렸다. 즐기시던 땅콩이나 커피의 각설탕을 ‘톰과 제리’의 얄미운 새앙쥐 제리처럼 호시탐탐 노렸다. 그 다음으로는 딱지치기에 ‘딱’ 좋은 화집을 몰래 찢어 딱지를 접고 놀았는데, 밀레와 고흐 그리고 렘브란트 등의 화집은 두툼하고 묵직했다. 몇 장 찢어도 안 들킬 것 같았다. “이 눔의 자식아. 아부지가 애지중지하는 그림책을 누가 이렇게 딱지를 접으라 하더냐.” 하느님 아부지의 호령이 아니라 울 아버지의 불호령. 아버지가 둘인 집에서 산다는 것은 이래저래 개구쟁이에게 지청구 맞을 일 뿐이었다.

좀 나이가 들자 철이 들었다. 구수한 콩가루가 범벅된 인절미를 씹어삼키며 화집을 뒤적이는데, 정말 그림이 좋아서 뒤적였는데, 대관절 뒤통수 빡~. “또 찢어서 딱지 만들라고 그라냐?” 막내 누나였다. “아닌디. 그림이 좋아서 보는디” “우끼고 자빠졌네. 아부지한티 일러분다잉” 하는 짓거리마다 꼴뵈기 싫었던 누나, 아부지에게 일러바치기 선수였다. “누나는 뭐 알고 책을 봉가? 그냥 그림만 본다는디 왜 긍가? 나도 고호 알어. 안다고.” “고호가 누구대? 그라믄 쫙 설명해 봐라” “고호가 고호재 뭐여. 성이 고씨고 이름이 호재. 해남 화산면 옆에 화란에 산닥 안허요. 나도 겁나 안당께.” 아버지가 화산면의 교회에도 담임했던 연고로 그곳을 대충 안다고 공갈을 쳤다.

임의진 작 ‘반 고흐, 담양 여행자’
그러던 누나는 입시학원을 거쳐 미술대학에 들어갔고, 나는 중학교 때부터 미술반에 열심이었지. 담임의 권유도 있었으나 그림 공부를 그러나 접어야 했다. 삼십대 큰형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하늘나라. 아들이라고 하나만 남게 되자 아버지는 주님께 나를 일찍부터 바쳤다면서 앞길을 가로막았다. 정작 누나는 전공을 접었으나 나는 그림을 취미 삼아 그렸다가 여러 번 개인전도 가졌다. 누구 스승을 정해 배우지 않고 그리게 된 것인데, 화집과 미술관이 스승이었던 것 같다. 첫 번 개인전은 서울에서 가졌는데, 신문에도 나오고 심지어 축하 공연까지 있었다. 천하의 정태춘 박은옥, 김두수 형이 노래를 한 곡 씩~.

지난 봄날 덜컥 심신에 병이 생겨 두어 주 입원을 했다. 가족 말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드러누운 병원은 비엔날레 곁에 있었다. 안 먹던 아침밥을 먹으라니 소화도 시킬 겸 비엔날레를 둘러보거나 시립미술관 숲길을 걸었다. 고독한 산책자는 맞는데, ‘불행한 자유인’이 배회를 하는 꼴이었다. 그래도 고마운 것이 그림이었다. 그림들을 보고 있노라니 내가 나를 혼자 두는 일에 평안해지고 그랬다. 잠깐의 산책길과 눈호강, 미술관이 치료제이고 약이었다.

오래전에 프랑스 파리 근교의 바르비종엘 찾아갔다. 밀레와 고흐, 그리고 고갱 등을 만나러 간 길이었다. 포도주에 종일 취해 기억이 별로 나질 않지만, 밀레의 무덤에 들꽃을 놓아준 기억. 밀레의 그림 만종에 나오는 그런 시골 교회에서 목사 노릇을 했는데, 딱지를 치려고 찢은 페이지가 하필 ‘만종’ 부분이었다. 인생은 그 때문에 뒤집힌 게다. 가난뱅이 밀레가 종이가 부족해 회벽에다가도 그린 그림들을 구경하고 그랬다. 동네에서 오래된 전시 포스터를 한 장 얻었는데 아직도 애지중지 가지고 있다.

고흐가 청년기에 머물렀던 암스테르담과 런던, 그리고 파리. 푸른 별이 아름다운 아를도 찾아가 보고 ‘여행자의 노래’ 선곡 음반 일로 유럽에 가는 일이 생기면 꼭 들르는 두 곳이 있는데, 바흐가 살던 독일의 라이프치히, 고흐가 최후를 지낸 파리 외곽의 오베르 마을이다. 고흐의 무덤 마을은 단골 방문지. 한번은 오베르 가까운 도몽이란 마을에다 방을 얻고 한달살이를 했다. 중고로 산 자전거를 타고 까마귀가 깍깍 우는 오베르 마을까지 왕복하고는 그랬다. 말년에 그린 그림들과 들녘의 풍경이 겹치는 장소마다 표지판이 있는데, 멈춰서서 감상하면 코끝이 시큰해지고 두눈이 그렁그렁해졌다.

답답한 공기의 교회를 떠나 자유인이 되고 싶었다. 광주에다 메이홀이란 대안공간 갤러리를 연 것이 십 년도 지난 일이다. 친구들과 놀다 그만 갤러리 놀이까지 하게 되었고, 관장을 맡아 오늘까지 전시들을 하면서 지낸다.

한번은 홍성담 화백께 전화가 왔는데 “메이홀 한 층 전세 내서 몇 달 좀 그림을 그릴까 하는데 그란 줄 아시쇼잉” 흐~ 선배님 성질 돋우면 안되니 무조건 아멘. 메이홀을 현장 작업실 삼아 그린 작품이 ‘세월 오월’이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한 이 그림은 비엔날레에 걸리지 못했다. 표현의 자유 문제가 불거져 광주는 물론 나라 전체가 한동안 난리 법석. 나는 모처의 겁박성 전화까지 받았다니까. 세월이 흐른 뒤, 비운의 그림 ‘세월 오월’은 시립미술관에 전시되었고, 수많은 관람객들이 흥미롭게 감상했다.

현대미술의 향연이 펼쳐지는 광주비엔날레는 소중한 자산이다. 올해 열린 광주비엔날레 전시 모습. /김진수 기자 jeans@kwangju.co.kr
광주에 세계적인 미술 전시회 비엔날레가 열리고, 또 우리 시민들의 교양을 넓혀주는 수준 높은 미술관이 있다는 건 다행하고 감사한 일이다. 여기에 재일교포 2세이자 재일기업가 하정웅 선생은 귀한 미술품들을 기증하여 시립미술관의 위상을 높여주었다.

한편 비엔날레가 ‘어렵다 낯설다’ 말들 많지만, 현대미술을 가까이 우리 지역에서 감상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복된 일인가. 시립미술관은 ‘미술관 노마드’들에게 행복을 안겨주는 장소다. 인생들이 사는 동물원, 우후죽순 솟아나는 빌딩과 아파트숲 속에서 그나마 미술관이 있으니 숨이 트인다.

김준기 시립미술관 관장을 가끔 만나는데 대학 노래패 출신인 그는 통기타 명소에 가면 기타를 울리며 노래도 한 곡조 뽑는다. 엊그제 서울에서 온 손님과 어울려 남쪽 바다에서 올라온 민어회를 놓고 회동. 김관장은 광주 오월과 무등의 꿈을 담아내는, 이를테면 ‘오월 평화미술관’ 같은 걸 꼭 하나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만날 때마다 이야기 하곤 한다.

문이 삐걱거리면 쭈뼛하고 두 귀가 종그리듯, 새 그림이 걸린 전시장은 눈을 반짝거리게 만든다. 최근엔 시립미술관에 한희원 화백의 생애가 옹글게 담긴 ‘존재와 시간’이라는 회고전이 열렸다. 박석인 원장, 그리고 멀리 하동에서 축하방문차 오신 박남준 시인, 조각가 고근호 샘과 주홍 작가 부부, 한화백의 순천여상 제자인 친구와 그날 긴긴 밤을 노래했다.

시립미술관 곁 예술의 전당 쪽에 ‘블루버드’라는 통기타 선술집이 있는데, 노래모임 ‘동물원’ 노래가 흘러나오는 곳. 한 때 동물원 멤버였던 ‘가객 김광석’의 노래를 원 없이 들었다. 수북 산골짝 집으로 돌아올 때는 박남준 시인과 단둘뿐이었다.

손님방에 이불을 깔고, 시인 형이랑 속을 다스릴 차 한잔. “아직도 그림을 그리냐?” “그냥 평생 그리는 거지요.”, “누가 아직도 시를 쓰냐? 그러고 물으면 할 말이 나도 없겠다.” 둘이 피식 웃었다. “아따 노래를 징하게 들었더니 귀가 앵앵거린다. 인자 말도 하지 말고 자자잉.” “그랍시다. 인상파 화가(한희원) 그림을 봤응게로 프랑스 어디 그런 데 여행하는 꿈을 꾸자구요.” 최근에 바오밥 나무가 무리지어 사는 마다카스카르에 댕겨 온 박시인은 여기서 단호했다. “아니. 나는 꿈에 다시 마다카스카르에 갈란다. 어린 왕자에게 바오밥 나무에 대한 편견과 오해, 골칫덩어리라 생각하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줄란다.” 허허 거 참~.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휘파람 불며 걷다가 너를 생각해~” 형이랑 나는 아마 꿈에 ‘미술관 옆 동물원’ 김광석의 이 노랠 불렀을 거야. 너무 피곤해서 기억을 못할 뿐이지.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임의진

시인. 화가. 사진도 찍는다. 참꽃피는마을 , 버드나무와 별과 구름의 마을 , 여행자의노래 1-10, 심야버스 등의 수필집, 시집, 음반 등을 펴냈으며 EBS 세계테마기행, 세계견문록 아틀라스 등에 종종 출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