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가을에는, 양림 골목 거닐며 추억을 노래하게 하소서
임의진 시인의 광주 속살 순례기 ‘언저리와 변두리’ 시즌 2
<8> 양림동, 선교사 골목과 사직골 통기타촌
‘가을의 시인 ’김현승 시의 고향
양림교회엔 아픈 가족史 담겨
이국적인 선교사 골목 눈에 선해
파리 몽마르트·서울의 남산처럼
시민의 쉼터가 되어 준 언덕·숲
세간살이 빌리고 나눠갖는 공동체
2023년 10월 16일(월) 19:35
파리 몽마르트, 서울의 남산처럼 광주에는 양림동 언덕과 숲이 있어 시민들의 쉼터가 돼 주었다. 선교사 사택이 자아내는 이국적인 분위기와 단풍이 어우러진 가을날의 풍경이 아름답다. <아트주 제공>
가을의 시인 김현승은 양림동에 살며 살이 돋고 뼈가 굵어갔다. 지성과 고독, 기독교 정신의 대변자가 된 시인은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겸허한 모국어로’ 시종 노래했다. “예수의 말은 모두가 구체적이며 시적이다. 그의 행동도 그렇다. 그의 온 생활 자체가 시다.” 시인은 어려서부터 ‘예수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자랐다. 청년기엔 소멸과 영원 속에서 방황하였으나 시적 성취와 불멸의 구원을 이루었다. 시인은 양림교회 김창국 목사의 차남으로 양림동에 주소를 두고 살게 된다. 걷고 눕고 살아가는 ‘주소지’는 한 인격의 성장과 변화를 끌어간다.

양림동엔 양림교회란 이름을 지닌 세 곳의 오래된 교회가 있다. 신학적 견해가 다르다는 건 표면적인 이유일 뿐, ‘사귐과 갈등’은 동전의 양면처럼 한가지로 우리 인생들을 갈리게 만들고, 쥐고 흔든다. 산꼭대기 기장 양림교회엔 육이오때 순교한 박석현 목사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박목사의 제낭이 바로 내 아버지다. 울 아버지는 처형 김순임 사모와 박목사 등 처갓집 가족을 맞이했다. 고향땅 해남을 떠나 영암 월출산 자락으로 이주한 조부모님은 하필 한국전쟁의 복판에 뛰어든 격이었다. 집안이 송두리째 환란을 당하게 되는데, 양림교회 박석현 목사 부부도 함께 학살에 휘말리게 된다. 그 어둡던 날, 전도사였던 아버지와 사촌 조카만 처형장 입구에서 탈출하여 살아남고, 나머지는 죽창과 삽 등으로 죄 목숨을 잃었다. 아버지는 그날 사랑하는 아내를 비롯 부모 친척 대부분을 잃었다. 그리고 훗날 우리 어머니를 만나 늦둥이 아들인 나를 낳았다. 전쟁범죄 피해자인 나와 가족들은 오히려 화해와 통일을 생각한다.

권진규 ‘그리스도상’
누이들이 모여 살던 곳도 양림동이었다. 방학 때면 나는 누이들이 살던 광주에 지내곤 했다. 양림동엔 초가집들이 남아있었는데, 한쪽엔 미국 선교사들이 모여 살았던 이국적인 골목이 있었다. 길을 잃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두리번거리며 봤던 당시 골목 풍경이 선하다. 겨울엔 수북한 연탄재가 문밖에 버려져 있고, 개들이 눈치껏 짖으며 주인을 안심시켰다. 양림동은 그야말로 다닥다닥 이웃들과 맞붙어 살아가던 살림터였다. 엉키고 설킨 나무뿌리처럼 세간살이가 분분히 달라붙어 누구랄 것 없이 한가지로 ‘빌리고 나눠 갖는’ 공동체였다. 외상을 달아놓고 연탄이나 막걸리를 사기도 하고, 쌀이나 작은 돈도 이웃사촌에게 빌리고 또 갚고, 누가 죽으면 같이들 울면서 골목마다 켜진 한 개의 외등 불빛을 나눠 쬐며 지냈다.

가을이면 감나무에 붉은 감이 주렁주렁 열리고, 또 은행나무도 은행 열매를 가득 매달고 노랗고 노랗게 익어갔다. 은행이파리가 떨어지면 금전 은행과는 거리가 먼 주민들도 마치 복돈이 하늘에서 떨어지듯 풍요로워지는 마음이었다. 양림동엔 교회당만 있는 게 아니라 불당들도 곳곳에 있었는데, 속된 점집이나 작은 불당마다 작은 불상이 모셔져서 주민들의 길흉화복과 함께했다. 조각가 권진규의 불상이 보고 싶었는데, 대신에 그리스도상은 볼 수 있었다. 그의 빈손이 주는 메시지완 상반되게 현실 기독교나 재래 종교들은 욕심의 ‘만땅’, 욕망의 폭주를 보여주고, 전쟁을 통해서라도 제 종교의 우월을 확인하려 든다. 얼마나 어리석은 폭력성인가. 폭력에 희생된 예수를 까맣게 잊고, 이젠 폭력을 행사하는 권력이 되었다면 반성하고 자중해야 마땅하다.

귄터 그라스 ‘못 드로잉’
골목의 낡은 집들은 ‘못들’을 박아 지켜나갔다. 문이 부서지면 못을 박고, 집 기둥이 기울어질 때도 각목을 잇대어 못을 박고, 지붕이 뜯기면 올라가서 또 뭐라도 덮어 못을 박았다. 귄터 그라스가 낙서 삼아 그린 ‘못 드로잉’을 보았는데, 구부러진 못이라도 아까워 망치로 펴서 쓰고 못 한 개 성냥 한 개피 아끼고 모은 돈으로 양림의 신자들은 절제와 나눔(헌금) 생활을 했다. 그래서 교회나 절, 하다못해 단칸방들의 기도처마다 축복과 행운의 기도가 가득가득 쌓이고 그랬다.

선교사들이 세운 기독교 병원에 이모가 간호사를 지냈고, 누이도 간호사로 근무해 찾아가곤 했다. 병원 뒤로는 호남신학교가 있는데 신학생들은 그곳을 ‘선지 동산’이라 부르면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산상 기도를 바치곤 했다. 나도 친구따라 강남간다고 그곳을 종종 찾았고, 목사로 살 땐 두어 번 전교생 ‘채플 설교’를 하기도 했다. 산 아래로 선교사들이 살던 집집들, 눈물 나게 아름다운 길목을 걸어다녔다. 벽돌집은 울창한 나무들을 끌어안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던 이들을 잠시나마 쉬게도 해주었다. 파리에 가면 몽마르트 언덕이 있고, 서울에 가면 남산이 있다면 우리 광주에는 양림동 언덕과 숲이 있어 시민들의 쉼터가 돼 주었다.

이 골목 끝엔 작곡가 정율성의 생가도 있다. 일제 강점기에 양림동 그러니까 울창한 ‘수풀 림’의 동네에서 태어난 그는 서양 선교사들에게 오선지에 노래를 짓고 쓰는 법을 배우면서 자랐다. 독립운동의 핵심 부대 의열단에 가입하여 일본 정보국과 맞서고, 신흥학교에 들어가선 ‘까투리타령, 내 고향, 조각달’ 같은 노래를 가르치면서 민족 음악에 심취했다. 일제에 맞서는 방편으로 ‘팔로군 행진곡, 중국인민해방군’ 등 군가를 만들어 중국에서 널리 알려진 작곡가가 되었다. 일제 해방공간과 이후 분단 체제에서 만든 노래로 최근 때아닌 색깔론에 휩싸여 드잡이를 당하는 중이라 안타까울 따름이다.

노래의 산실인 양림동은 ‘겨레의 노래’라는 메아리가 사는 동네였다. 양림길을 내려와 천변 건너편에 있는 전남대병원. 이곳에서 김민기 아저씨는 ‘상록수’를 대중 앞에 처음 불렀다. 노동 운동가이자 야학 교사 박기순 열사의 장례식에서였다고 한다. 훗날 평생동지 윤상원과 함께 ‘님을 위한 행진곡’의 주인공이 된 박기순의 장례식장에서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비바람 맞고 눈보라쳐도 온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 이 노래를 처음 들은 모두가 흐느끼며 울었단다. 그 울음소리가 양림동 골짜기에 번지고, 양림동의 푸르른 솔잎들을 휘청거리게 만들었다. 메아리는 광주 시민들을 흔들어 깨웠다.

오월 그날 수많은 목숨들이 전대병원이나 조대병원, 적십자병원, 또 양림동의 기독병원에서 죽어 나갔는데, 우리 공동체를 굳건히 붙잡아 준 것은 노래였다. 특히 양림동의 사직골 언덕은 옛 방송국 입구로 수많은 가객들이 이곳에 터를 잡아 노래를 불렀다. 거리에서 불린 이른바 ‘민중가요’에서부터 비롯하여 대학가요제 출신들의 생활 터전으로 노래를 부르고, 라디오 방송 ‘별이 빛나는 밤’에 애청자들이 직접 기타를 메고서 또 노래를 나눴다. 살림집처럼 다닥다닥 붙은, 생음악 점포들은 눈물진 삶들을 위무하고 다독였다.

사직골 통기타촌에서는 애정사와 애환을 토로하는 노래가 오늘도 울려퍼진다.
사직골 골목은 고인이 된 포크 가수 이장순을 비롯하여 지역의 원로 노래꾼 부조 조형물과 비틀스의 네 청년이 걸어가는 모습 등이 방문자들을 반긴다. 길 끝에 선 교회들에서는 성가들이 쩌렁쩌렁 울린다면 이곳 사직골 통기타 골목에선 세간살이 애정사와 애환을 토로하는 노래들이 콧노래와 함께 불리고 있다. 만약 낮은 자의 벗 예수가 이 거리에 출몰한다면 어디로 가서 어울릴지는 자명한 사실이렷다. 그러다가 권진규의 예수처럼 매달려 죽는대도 회심의 미소를 남기리라. 김광석의 노랫말처럼 ‘노래는 멀리멀리’ 날아갈 테니까.

사직골에서 가장 많이 울리는 노래라면 우리나라 포크계의 큰별 김광석의 빛나는 넘버들. 그 중에 김광석이 리메이크하여 크게 알려진 ‘이등병의 편지’도 있겠다. 노래의 원작자인 김현성 형은 이후 윤도현이 히트시킨 ‘가을 우체국 앞에서’를 내놓기도 했다.

김현성 형과 나는 20년도 훨씬 넘는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데, 마침 올해가 이등병의 편지 발표 40주년 되는 해다. 기념하는 전시회와 함께 이달 27일 저녁엔 이매진 도서관에서 공연도 마련했다. 김광석이 불렀던 노래를 원작자가 들려줄 참이다. 그러기에 앞서 아마 오늘도 사직골 통기타 골목에선 ‘이등병의 편지’나 ‘가을 우체국 앞에서’가 우렁우렁 울리고 있을 게다.

엊그젠 ‘유재하 음악제’ 수상자이자 전남대 출신 가수 이형주 군이 늦은 군복무 입대를 앞두고 인사차 소식. 그리하여 사직골에 있는 음식점 ‘백수 간재미’에서 환송식. 내가 오래전 선물한 가방을 여태 들고 다니는 햇병아리 가수는, 오늘도 가방 속에다 포크곡 악보들을 마치 낙엽을 쓸어 모으듯 차곡차곡 쟁이는 중이더라. “나팔소리 고요하게 밤하늘에 퍼지면 이등병의 편지 한 장 고이 접어 보내오...”. “그래 군복무 잘하고, 우리 건강하게 다시 보자꾸나.”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임의진

시인. 화가. 사진도 찍는다. 참꽃피는마을 , 버드나무와 별과 구름의 마을 , 여행자의노래 1-10, 심야버스 등의 수필집, 시집, 음반 등을 펴냈으며 EBS 세계테마기행, 세계견문록 아틀라스 등에 종종 출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