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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의 업보와 손자 우원 씨의 사죄- 박성천 여론매체부 부국장
2023년 04월 12일(수) 00:15
역사에 가정(假定)은 없다고 한다. 이미 벌어진 일은 주워 담을 수도 되돌릴 수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에 가정이 허락된다면 조선시대 소현세자의 죽음을 되돌렸으면 어떨까 싶다. 청나라에서 귀국한 소현세자(1612~1645)가 급사(急死)하지 않고 왕위를 계승했다면 조선의 미래는 어떠했을까, 라는 상상의 발로다.

인조의 첫째 아들이었던 소현세자는 다음 보위를 이을 후계자였다. 그러나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가 심양에서 8년을 보낸다. 그리고 학수고대하던 고국으로 돌아온 지 두 달 만에 의문의 죽음에 이른다. ‘인조실록’에는 시신의 구혈에서 피가 흘렀으며 약물에 중독된 것 같다는 기록이 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인조와 조정의 미움과 모함으로 소현세자가 독살됐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인조는 왕을 폐위하고 새로운 임금을 옹립하는 반정을 통해 보위에 올랐다. 반기를 든 이들의 관점에서 보면 명분이 있는 거병이지만 반대파의 시각에서는 명백한 ‘쿠데타’였다. 어렵사리 보위에 올랐지만 인조는 사리에 어둡고 아둔한 왕이었다. 급변하는 주변 정세를 읽지 못한데다 국정은 오만과 아집, 무능으로 일관했다. 결과는 무참하고 가혹했다. 나라는 도탄에 빠졌고 수많은 백성이 병자호란으로 고통과 죽임을 당했다. 인조 자신도 남한산성에서 삼전도로 나와 세 번 무릎을 꿇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의 항복 의식을 치렀다.



진실 밝히려는 노력에 쏟아진 관심

소현세자가 급사하지 않았다면(독살이든 병사든) 조선의 미래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그는 서양의 과학과 기술을 조선에 전파하고 싶었다. 선진 문명과 학문을 도입해 조선을 새롭게 바꾸고자 했던 포부는, 인조의 협량과 과도한 권력 집착에 막혀 물거품이 되고 만다.

얼마 전 전두환 씨의 손자 우원 씨가 광주를 찾아 사죄를 했다.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이자 광주 학살의 주범인 전두환 손자가 광주를 방문한 것은 그 자체로 센세이션이었다. 학살자도, 쿠데타 세력도 아닌 단지 핏줄이라는 이유로 광주에 와 사죄를 한다는 것이 과연 얼마나 진정성이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마약에 취해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데서 기인한 행동이라는 뒷말도 있었다. 우원 씨는 진정성에 대한 유려를 씻어 내려 유튜브를 통해 마약 사실과 자신의 죄악을 공개했다고 언급했다.

우원 씨의 광주 방문은 일거수일투족이 뉴스였다. 27세 청년의 사죄는 오랫동안 맺혀 있던 광주시민들의 응어리를 다소나마 풀어주었다. 그는 “5·18은 다시 있어서는 안 될 비극이며 그 주범은 저의 할아버지 전두환이다”라고 분명하게 선언하듯 말했다. 국립 5·18민주묘지를 참배하고는 최연소(11살) 희생자였던 전재수 군의 묘소에 들러 정중히 무릎을 꿇었고, 검정색 외투를 벗어 묘비를 닦았다.

특히 우원 씨가 숙소 인근 빨래방에서 본사 기자와 가졌던 즉석 인터뷰가 유튜브에 방영되면서 화제를 모았다. 11일 현재 조회 수가 84만 5000에 육박할 정도로 관심이 뜨겁다. 그는 영상에서 “정말 저희 가족들이 양의 탈을 쓴 늑대들이었구나, 진짜 양들은 따로 있었구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상처받으신 분들, 낙담하시는 분들, 슬퍼하시고 증오가 가득한 그 마음이, 희망이랑 믿음이랑 사랑이랑 빛이 가득하게 하나님 도와달라고 기도 드리는 것 같습니다”라고 덧붙였다.

그의 발언은 상당 부분 기독교 신앙에 토대를 두고 있다. ‘양’ ‘빛’ ‘믿음’ ‘사랑’ ‘기도’ ‘하나님’ 등의 어휘는 기독교를 상징하는 핵심 키워드들이다. 종교를 차치하더라도 그의 사죄와 치유의 기원은 울림을 주기에 충분했다.



광주시민 응어리 다소나마 풀어줘

의외인 것은 우원 씨의 아버지 전재용 씨와 계모 박상아 씨 또한 기독교 신자라는 사실이다. 2021년 모 기독교 방송에 출연한 전 씨 부부의 이야기가 전파를 타 눈길을 끈 적이 있다. 전재용 씨는 현재 백석대 신학대학원에 재학 중이며 경기도 모 교회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탈세 혐의로 2015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벌금 40억 원을 선고받은 바 있다. 전재용 씨가 진정 목회자의 길을 가려는 신앙인이라면 진실을 밝히는 데 주저해서는 안 될 것 같다.

한편으로 우원 씨는 귀국 후부터 가족들과 연락이 끊겼다며 두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중이다. 전두환의 쿠데타로 획득한 부와 재물을 누렸던 “대한민국에서 가장 자본력이 센 사람들에 속하는 가족”을 무서워한다는 것이 일견 이해가 가지만 한편으론 납득이 되지 않는다.

견강부회(牽强附會)이겠으나 역사 속 소현세자가 불쑥 떠오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려니 싶다. 물론 소현세자와 우원 씨를 단순 비교하기는 무리다. 그럼에도 진실을 밝히려 노력하는 젊은 우원 씨의 의지는 가상해 보인다. 결국 빛은 어둠을 이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