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작가 노벨문학상, 다시 생각하는 ‘광주’ - 박성천 편집국 부국장·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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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작가 노벨문학상, 다시 생각하는 ‘광주’ - 박성천 편집국 부국장·문화부장
2025년 10월 15일(수) 00:00
지난 주 발표된 올해 노벨문학상의 주인공은 헝가리 현대문학 거장인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71)였다.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내릴 만큼 서구 문학계에서는 지명도가 매우 높은 작가다. 2015년 헝가리 작가 최초로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하는 등 세계적인 문학상의 단골 후보로 거론됐다. 당시 부커상 심사위원들은 라슬로의 문학에 대해 “놀라운 문장들, 믿기 힘들 정도로 깊이 파고드는 믿기 힘든 길이의 문장들, 엄숙함에서 광란, 의문, 황폐함으로 어조가 변하며 제멋대로 길을 가는 어조”라고 상찬한 바 있다.



종말론적 공포 속 예술이 주는 힘

라슬로는 1954년 루마니아 국경 인근 헝가리 남동부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유대인 가정에서 성장한 그는 부다페스트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독일 유학을 거쳐 이후 프랑스를 비롯해 중국, 미국, 일본 등 다양한 국가를 오가며 창작을 했다. 자연스레 그의 작품에는 헝가리 공산주의 체제의 경험과 독일 유학 이후 떠났던 창작여행에서 받았던 인상과 영감이 투영돼 있다.

알려진 대로 헝가리는 1949∼1989년 1당 체제의 공산주의 국가였다. 본질적으로 자유를 추구하는 작가에게 억압의 체제는 강렬한 창작의 기제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 세계는 폐쇄적이거나 경직되지 않았다. 한림원이 밝힌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는 왜 라슬로가 위대한 작가인지를 보여준다.

한림원은 “종말론적 공포 가운데에서도 예술적 힘을 재확인하는 강렬하며 선구적인 전작(全作)”에 노벨상을 수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라슬로는 카프카에서부터 토마스 베른하르트까지 이르는 중부 유럽의 위대한 작가로 부조리, 기괴한 과잉이 특질”이라면서 “그럼에도 소설에는 이보다 더 많은 요소가 존재하며 사색적이고 정교하게 조율된 어조를 구사해 동양을 바라보기도 한다”고 언급했다.

특히 ‘사탄탱고’는 오늘의 그를 있게 한 대표 소설이다.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돼 가던 1980년대 헝가리의 집단농장을 배경으로 절망적인 삶을 벗어나고자 하는 이들의 열망과 불안을 그렸다. 동구 공산권이 해체되기 이전 불과 수년 전에 창작된 이 작품은 향후 전개될 시대적 징후나 세계사적 변동을 정치하게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소설은 1994년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돼 문학계와 예술계에 화제가 됐을 뿐 아니라 라슬로는 당시 ‘묵시록 문학’의 거장이라는 상찬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종말을 예감하거나 이면에 숨은 비밀을 드러내는 유형을 묵시록 문학이라고 하는데, 라슬로는 당대의 어둠을 탁월하게 작품에 담아낸 작가로 각인되었다.

헝가리 출신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2년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임레 케르테스도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부다페스트의 유대인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임레 케르테스는 14세 때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맞닥뜨린 처참한 현실과 극한의 경험은 후일 세기의 걸작 ‘운명’을 탄생하기에 이른다. 임레 케르테스는 수용소에서의 야만의 시간과 그럼에도 아주 잠깐 느끼게 되는 담담한 순간을 인간의 존재 조건과 결부해 ‘운명’이라는 소설에 녹여냈다.

2002년 당시 한림원은 그에 대해 “야만적이고 제멋대로인 역사에 맞선 한 개인의 취약한 경험을 지켜내려 한 작가”라고 언급했다. 비인간적인 상황에 내던져져 있음에도 인간에 대한 존엄과 운명을 울림 있는 작품으로 풀어낸 작가의식, 작가적 책무를 높이 평가했던 것이다.



2024년 한강 노벨상 감격 떠올라

지난해 이맘때 광주 출신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발표되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올해 노벨문학상 발표와 맞물려 자연스레 지난해 한강 작가의 수상 소식이 오버랩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날 퇴근 중에 한강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차를 돌려 회사로 복귀하는 동안, 불현듯 그의 소설 ‘소년이 온다’가 떠올랐다. 광주의 역사적 상흔과 고통, 슬픔을 시적인 문체로 그리는 한편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열린 시각으로 담아낸 그 작품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있었다. 언제고 ‘소년이 온다’가 ‘평가받을 날이 온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던 터라 한강의 노벨상은 시기상의 문제이지 미래의 어느 날에 ‘벼락처럼’ 다가올 것으로 짐작했다.

앞서 언급한 헝가리 작가들과 한강 작가는 국적과 연령대는 상이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 미려한 문체와 운명에 맞서는 작가적 책무 등이 그렇다. 가혹하면서도 아픈 진실이지만 ‘광주’는 그 모든 것을 내재한, 다시 말해 장소성을 환기하는 도시다. 나는 그렇게 본다. ‘한강을 키운 건 팔할이 광주’라고. 올해 노벨문학상을 계기로 ‘제2의 한강’이 너무 늦지 않게 출현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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