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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여수·강릉, 그리고 부산- 박진현 문화·예향 담당 국장
2022년 11월 08일(화) 22:00
1년 여 만에 다시 찾은 제주도는 ‘딴 세상’이었다. 코로나19로 썰렁했던 게 언제였나 싶게 유명 관광지에는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즐기려는 관광객들로 활기가 넘쳐 났다. 그중에서도 지난해 제주시 애월읍에 문을 연 ‘아르떼뮤지엄 제주’는 단연 인기였다. 몰입형 미디어아트 상설 전시관인 이곳은 성인 기준 1만 7000원이라는 만만치 않은 입장료에도 하루 평균 3000여 명이 다녀가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과거 스피커 제조 공장(면적 1399평, 높이 10m)을 리모델링해 열 개의 주제로 나눠 아나몰픽, 프로젝션 매핑, 홀로그램, 증강 현실(AR) 등의 기술을 활용한 실감형 콘텐츠는 관람객들을 환상의 세계로 이끈다.



관광 1번지 된 ‘아르떼뮤지엄’

검은 커튼이 드리워진 입구를 지나면 가장 먼저 ‘꽃’(Flower) 전시관이 나온다. 제주의 상징인 수만 개의 동백 꽃잎이 천장이나 벽면에서 피었다 사라지자 여기 저기서 탄성이 터진다. 세계적인 역량을 자랑하는 글로벌 디지털 기업인 (주)디스트릭트 코리아가 홀로그램 기술로 화려한 색채와 사운드를 입히고 대형 거울을 이용한 수십 개의 프레임으로 몰입도를 높인 효과다. 또한 ‘파도’(Wave) 전시관에 입장하면 강렬한 비트와 거대한 파도가 마치 관람객들을 집어 삼키는 듯한 스릴을 느끼게 한다.

언제부턴가 제주도는 미디어아트 도시라는 타이틀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지난 2018년 성산읍에 개관한 국내 최초의 몰입형 미디어아트 체험관 ‘빛의 벙커’에 이어 아르떼뮤지엄 제주, 옛 서커스장을 개조한 ‘노형수퍼마ㅋㅔㅌ’이 연이어 들어서면서 디지털 영상, 음향 등을 공간과 결합시켜 미디어아트의 발신지로 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아르떼뮤지엄’은 많은 지자체들로부터 러브 콜을 받는 귀하신 몸이다. ‘아르떼 제주’가 대박을 터뜨리면서 디스트릭트는 지난해 각각 여수와 강릉에 지점을 내는 등 전국구 브랜드로 비상중이다. 여기에 최근 부산광역시도 내년 상반기 개관을 목표로 ‘아르떼뮤지엄 부산’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지난 6월 부산시는 디스트릭트와 ‘아르떼뮤지엄 부산’ 건립 운영을 위한 업무 협약을 체결하고 세계적 수준의 미디어아트 전시관을 부산에 건립하기로 뜻을 모았다. 순수 민간자본 110억 원을 투자해 건립되는 ‘아르떼 부산’은 부산의 독특한 자연환경을 담은 미디어콘텐츠를 통해 글로벌 관광명소는 물론 향후 NFT(대체 불가능 토큰)을 기반으로 국내 디지털 미술 시장을 선도한다는 구상이다.

최근 광주에서도 미디어아트가 지역 문화계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내막을 들여다 보면 안타까움을 넘어 답답할 뿐이다. 다른 도시들이 미디어아트의 미래를 향해 달리고 있다면 2014년 유네스코 미디어아트 창의도시로 선정된 광주는 과거로 회귀하는 듯한 행보를 보이고 있어서다. 얼마 전 폐막과 동시에 졸속 운영 논란을 빚은 광주미디어아트 페스티벌과 철거될 위기에 처한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미디어월’(Media Wall)이 그 예다. 올해로 10회째를 맞은 미디어아트 페스티벌은 유네스코 미디어아트 창의도시를 상징하는 대표 축제이지만 ‘연륜’에 걸맞은 역량과 노하우를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ACC의 랜드마크이자 콘텐츠 홍보 플랫폼인 ‘미디어월’도 마찬가지 신세다. 지난 2017년 26억 원의 예산을 들여 설치한 후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시점에서 5·18 민주화운동 최후 항쟁지의 현장을 온전히 살려내야 한다는 옛 전남도청 복원 사업 취지에 따라 존폐 기로에 처한 것이다. ACC의 건물이 모두 지하에 들어앉은 단점을 보완하고 미디어아트 창의도시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랜드마크라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데도 말이다.



허울뿐인 ‘미디어아트 광주’

광주는 유네스코가 인정한 국내 유일의 미디어아트 창의도시다. 물론 미디어아트 창의도시로 선정된 이후 미디어아트 페스티벌 창설, 핵심 시설인 미디어아트 플랫폼 ‘GMAP’ 개관, 유네스코 창의벨트 추진 등 인프라 조성에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그럼에도 미디어아트 창의도시다운 위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광주에는 미디어아트를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경험의 장(場)이 많지 않다. 특히 핵심 인프라인 GMAP의 스케일과 콘텐츠는 미디어아트의 매력을 느끼기에는 아쉬움이 많은 게 사실이다. 다른 도시들이 경쟁력 있는 몰입형 상설 미디어아트 전시관을 유치해 시민들의 안목도 높이고 관광객들을 불러들이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국제 무대에서 통하는 ‘유네스코’라는 로고는 돈으로 환산하기 힘든, 부가가치가 높은 자산이다. 현대미술 축제인 광주비엔날레와 동시대성을 핵심가치로 내건 ACC의 콘텐츠와 연계된다면 다른 곳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차별화된 관광 콘텐츠가 될 수 있다. 미디어아트 창의도시라는 글로벌 브랜드를 키우는 건 결국 광주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