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영화관에 갔다 - 김미은 여론매체부장·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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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에 대한 추억 하나쯤 누구나 갖고 있다. 극장에서 주제가를 따라부르며 만화영화를 보던 나에게, 중학교 때 단체관람했던 ‘테스’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무엇보다 대형화면을 가득 채웠던 주인공 나스타샤 킨스키가 너무 예뻤고, 불륜이 발각될까 가슴 졸이며 관람하다 누군가 “안돼”라고 외치는 바람에 폭소가 터지기도 했다. 이날 함께 단체관람했던 학교가 남고여서 키스신에 혼자 민망해하던 생각도 난다. 지금도 내가 앉았던 광주극장의 2층 객석 어디쯤을 기억한다.
전국 유일의 단관극장 광주극장이 올해 90주년을 맞았다. 광주극장은 단순히 영화상영의 공간만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광주극장에서 김구 선생의 시국강연회를 듣고 ‘해방축하 대공연’을 관람했다. 권투 미들급 챔피언 문춘성의 시범경기, 여성국극단 ‘임춘앵과 그 일행’의 국극 공연, 송창식쇼와 하춘화쇼도 모두 이곳에서 열렸다. 극장은 광주 문화·사회사(史)를 가늠할 수 있는 장소였다.
90돌 맞은 광주극장
극장에 가지 않는 시대라고들 한다. 국내 최대 멀티플렉스체인 CGV가 올해만 목포, 순천을 포함해 15개 지점을 폐점한 것에서 보듯 영화관 사업은 악화일로다. 더구나 낡고 오래된, 시간을 견뎌온 공간들이 점차 사라져가는 요즘 시대에 1935년 개관 후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광주극장의 존재는 경이롭다. 시민들이 ‘아카데미와 친구들’을 꾸려 고군분투했지만 결국 지난 2023년 폐관하고 만 원주아카데미 극장의 사례까지 접하고 나면 더욱 그렇다.
지난 주 끝난 ‘개관 90주년 광주극장영화제’ 개막작은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이 메가폰을 잡은 ‘미스터김, 영화관에 가다’였다. 그는 광주극장을 비롯한 국내 영화관과 일본, 대만 등 아시아 극장을 직접 찾아 촬영했다. 명보극장을 운영했던 신영균, 서울극장 회장 고은아, 배우 문희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대스타들이 88세 노(老)감독의 카메라 앞에서 지금은 문을 닫은 극장들에 대한 아쉬움을 이야기 할 땐 아직도 우리 곁에 남아 있는 광주극장이 새삼 고마웠다.
올해 영화제는 그 어느 해보다 풍성했다. 가장 화제를 모았던 프로그램은 봉준호 감독의 추천작 ‘바톤핑크’를 보고 진행한 관객과의 대화였다. 상영 며칠 전 이미 850장의 티켓이 매진됐고, 봉 감독은 객석에서 함께 영화를 관람했다. 이 때 재밌는 장면이 연출됐는데, 2층 객석에서 길게 줄을 내려뜨려 사인을 요청하는 모습을 담은 숏츠 영상(꼭 한번 찾아보시라)은 100만회를 육박하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올해 행사는 광주극장의 대대적인 변신이 있어 더 의미 있었다. 광주시 동구의 주도 아래 ‘광주극장 100년 프로젝트, 그 역사를 보존해주세요’라는 고향사랑기부제를 통해 모인 2억 2000만원으로 영사기와 대형 스크린을 교체했고, 앞으로 의자와 냉난방시설 등도 바꿀 계획이다. 광주시는 지난 5일 국가유산청에 광주극장의 국가등록문화유산 등재를 신청, 내년 정식 심사를 앞두고 있다.
광주극장은 무엇보다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온 공간이다. 수많은 예술영화와 고전영화 등을 만날 수 있는 광주극장의 고마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박근혜 정부의 지원금 삭감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400여명의 후원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모였다. 아마도 영화관람료를 인상해야하는 것 아니냐고, 왜 커피값을 올리지 않느냐고 채근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도 광주극장이 유일할 듯하다. 더불어 시인 이서영, 문학평론가 김주선, 화가 윤연우와 이선미 등 극장 매표소에서 일했던(일하고 있는) 이들의 면면을 떠올릴 때면 광주극장은 예술가들이 사랑하는 극장임에 틀림없다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국가 등록문화유산 등재 추진
요즘 극장을 찾는 연령대가 부쩍 낮아졌음을 느낀다. 단골들은 극장의 밝은 미래를 보는 것 같다며 좋아한다. 레트로 붐이 일면서 젊은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고, 전국 시네필들의 필수 방문 코스가 됐다.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주인공 아이유가 일하는 ‘깐느극장’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극장 구경’ 오는 이들도 많아졌다.
아직 광주극장에 가보지 못했다면 꼭 한 번 방문해 보시라. 오랜 추억을 갖고 있는 이들이라면 다시 한번 극장으로 발길을 옮겨 보시라. 멋진 영화 관람과 함께 당신을 맞는 찰리 채플린에게 반갑게 인사를 전하고, 전국 유일의 극장 손간판에 시민들이 직접 그린 영화 작품과 봉준호 감독, 김동호 위원장의 사인을 찾는 즐거움도 누려보면 좋겠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광주 대표 배우 지정남의 일인극 ‘다음 프로는 광주극장’이 공연됐다. 오랜 기간 광주극장과 함께해온 영사기 빛의 요정이 들려주는 광주극장 이야기였다. 아마도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다시 찾아오겠다는 요정에게 광주극장은 우리가 잘 지키고 있을 테니 언제든 또 놀러오라는 말을 마음 속으로 했을지도 모른다.
세월의 흔적과 시대를 담고 있는 전국의 ‘광주극장들’이 앞으로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계속 이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고.
극장에 가지 않는 시대라고들 한다. 국내 최대 멀티플렉스체인 CGV가 올해만 목포, 순천을 포함해 15개 지점을 폐점한 것에서 보듯 영화관 사업은 악화일로다. 더구나 낡고 오래된, 시간을 견뎌온 공간들이 점차 사라져가는 요즘 시대에 1935년 개관 후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광주극장의 존재는 경이롭다. 시민들이 ‘아카데미와 친구들’을 꾸려 고군분투했지만 결국 지난 2023년 폐관하고 만 원주아카데미 극장의 사례까지 접하고 나면 더욱 그렇다.
지난 주 끝난 ‘개관 90주년 광주극장영화제’ 개막작은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이 메가폰을 잡은 ‘미스터김, 영화관에 가다’였다. 그는 광주극장을 비롯한 국내 영화관과 일본, 대만 등 아시아 극장을 직접 찾아 촬영했다. 명보극장을 운영했던 신영균, 서울극장 회장 고은아, 배우 문희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대스타들이 88세 노(老)감독의 카메라 앞에서 지금은 문을 닫은 극장들에 대한 아쉬움을 이야기 할 땐 아직도 우리 곁에 남아 있는 광주극장이 새삼 고마웠다.
올해 영화제는 그 어느 해보다 풍성했다. 가장 화제를 모았던 프로그램은 봉준호 감독의 추천작 ‘바톤핑크’를 보고 진행한 관객과의 대화였다. 상영 며칠 전 이미 850장의 티켓이 매진됐고, 봉 감독은 객석에서 함께 영화를 관람했다. 이 때 재밌는 장면이 연출됐는데, 2층 객석에서 길게 줄을 내려뜨려 사인을 요청하는 모습을 담은 숏츠 영상(꼭 한번 찾아보시라)은 100만회를 육박하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올해 행사는 광주극장의 대대적인 변신이 있어 더 의미 있었다. 광주시 동구의 주도 아래 ‘광주극장 100년 프로젝트, 그 역사를 보존해주세요’라는 고향사랑기부제를 통해 모인 2억 2000만원으로 영사기와 대형 스크린을 교체했고, 앞으로 의자와 냉난방시설 등도 바꿀 계획이다. 광주시는 지난 5일 국가유산청에 광주극장의 국가등록문화유산 등재를 신청, 내년 정식 심사를 앞두고 있다.
광주극장은 무엇보다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온 공간이다. 수많은 예술영화와 고전영화 등을 만날 수 있는 광주극장의 고마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박근혜 정부의 지원금 삭감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400여명의 후원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모였다. 아마도 영화관람료를 인상해야하는 것 아니냐고, 왜 커피값을 올리지 않느냐고 채근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도 광주극장이 유일할 듯하다. 더불어 시인 이서영, 문학평론가 김주선, 화가 윤연우와 이선미 등 극장 매표소에서 일했던(일하고 있는) 이들의 면면을 떠올릴 때면 광주극장은 예술가들이 사랑하는 극장임에 틀림없다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국가 등록문화유산 등재 추진
요즘 극장을 찾는 연령대가 부쩍 낮아졌음을 느낀다. 단골들은 극장의 밝은 미래를 보는 것 같다며 좋아한다. 레트로 붐이 일면서 젊은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고, 전국 시네필들의 필수 방문 코스가 됐다.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주인공 아이유가 일하는 ‘깐느극장’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극장 구경’ 오는 이들도 많아졌다.
아직 광주극장에 가보지 못했다면 꼭 한 번 방문해 보시라. 오랜 추억을 갖고 있는 이들이라면 다시 한번 극장으로 발길을 옮겨 보시라. 멋진 영화 관람과 함께 당신을 맞는 찰리 채플린에게 반갑게 인사를 전하고, 전국 유일의 극장 손간판에 시민들이 직접 그린 영화 작품과 봉준호 감독, 김동호 위원장의 사인을 찾는 즐거움도 누려보면 좋겠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광주 대표 배우 지정남의 일인극 ‘다음 프로는 광주극장’이 공연됐다. 오랜 기간 광주극장과 함께해온 영사기 빛의 요정이 들려주는 광주극장 이야기였다. 아마도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다시 찾아오겠다는 요정에게 광주극장은 우리가 잘 지키고 있을 테니 언제든 또 놀러오라는 말을 마음 속으로 했을지도 모른다.
세월의 흔적과 시대를 담고 있는 전국의 ‘광주극장들’이 앞으로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계속 이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