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시간의 진열장, 달빛오디세이 100회 기념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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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시간의 진열장, 달빛오디세이 100회 기념음악회
2025년 12월 04일(목) 17:45
지역에서 한 창작단체가 공연을 100번이나 이어간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달이 깊어가는 겨울밤, 그 오랜 시간이 마침내 하나의 이정표 앞에 다다랐다.

음악과 문학,역사, 철학, 무용 등을 엮어온 창작단체 ‘달빛오디세이’가 오는 8일 오후 7시30분 5·18기념문화센터 민주홀에서 100회 기념음악회 ‘분더카머-경이로운 방’을 선보인다. 이번 무대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꿈을 한데 펼쳐 보이는 일종의 ‘기념 전시’와도 같은 자리다.

달빛오디세이의 시작은 2009년 광주 환벽당에서 열린 한 국악 작품 발표회였다. 독일식 현대음악을 전공한 작곡가 김현옥은 “아무도 안 듣는, 청중에게 고통을 주는 음악”으로 느껴지는 아카데믹한 현대음악의 벽을 실감하며 악보가 아닌 ‘현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16세기 가사문학의 기억이 남아 있는 정자와 유배지, 식영정과 소쇄원 같은 곳을 찾아가 자연과 역사를 배경으로 한 공연을 시도했고 첫 환벽당 공연에는 500명 가까운 관객이 찾아왔다.

“현대음악임에도 관객들이 자연 속에서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며 새로운 가능성을 느꼈다”는 김현옥은 이후 다양한 기획·야외 공연을 꾸준히하며 단체의 정체성을 넓혀갔다.

김현옥의 음악에는 개인의 기억과 도시의 상처도 깊이 새겨져 있다`. 고등학생이던 시절 5·18 당시 금남로에서 강제로 트럭에 실려 가는 이들을 마주했고, 시위를 하던 사촌오빠 덕분에 가까스로 학교 화장실에 숨을 수 있었다. 그날 이후 “혼자 도망쳤다”는 죄책감은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았다.

“음대생들은 데모를 잘 안 하잖아요. 그게 평생 부끄러움으로 남아 있었어요. 살아남은 사람으로서, 그리고 어른이 된 사람으로서 이 부채를 음악으로 어떻게 말해야 할까 고민했죠.”

그 고민은 2019년 발표한 레퀴엠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으로 이어졌다. 5·18뿐 아니라 세월호, 이태원 참사 등 ‘어른들의 잘못으로 희생된 이들’을 향한 애도와 사죄의 마음을 담은 작품이다. 김현옥은 “베토벤이 세상을 떠난 나이인 57살이 되었을 때 더는 피하지 말고 내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광주의 기독교 사회운동가이자 ‘광주의 아버지’로 불리는 최흥종을 그린 융복합음악극 ‘오방’ 역시 그런 흐름에서 나왔다. 그는 “한때는 역사를 작품 소재로 삼는 것이 마치 ‘팔아먹는 것’ 같아 조심스러웠지만 이제는 책임과 기억을 음악으로 말할 때가 됐다”고 했다.

이번 100회 기념음악회에 붙인 제목 ‘분더카머(Wunderkammer)’는 16~18세기 유럽 귀족의 애장품 방을 의미한다. 김현옥은 이 공간을 “각기 다른 것들이 모여 서로를 비추는 경이의 방”이라 설명하며 “달빛오디세이가 쌓아온 공연들과 함께해 준 사람들을 한 무대에 담아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은 그가 오랜 시간 공들여 온 작품들을 갈라콘서트 형식으로 엮는다. ‘광주의 아버지 최흥종 오방’, 레퀴엠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 주요 장면을 비롯해 나희덕 시인의 ‘들리지 않는 노래’·‘연가’, 이성부 시인의 ‘기도’·‘전라도’가 새롭게 무대화된다. 한국 민요를 클래식 기타로 재해석한 ‘물레타령’ 등도 선보인다.

연주에는 그라토(Grato) 클래식 기타 앙상블, 광주체임버오케스트라, 성악가 박성경·정상희·신연석·조재경·김지욱 등 약 50명의 전문 예술가가 참여한다.

김현옥은 “광주에서 100회 이상 공연한 단체는 아마 달빛오디세이가 처음일 것”이라며 “예술가와 관객, 공간을 내어준 분들이 함께 만든 결과”라고 했다. 그는 “이번 무대는 무엇보다 그간의 길을 함께해 준 이들에게 전하는 감사의 마음을 담았다”고 덧붙였다.



/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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