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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이 도시 경쟁력이다- 장필수 사회담당 편집국장
2023년 04월 26일(수) 00:15
도로와 길은 이동 공간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이용 주체라는 관점에서 보면 다르다. 도로의 이용 주체는 차량이지만 길은 보행자인 사람이 주체다. 도시화가 되면서 도로는 격자형으로 반듯반듯하게 영토를 확장하고 있지만 골목길은 도로에 밀려 자취를 감추고 있다.

골목길을 잠식하는 가장 큰 요인은 아파트 건축이다. 아파트 도시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광주의 골목길은 더 위험한 상태에 놓여 있다. 개발 사업자들은 갖은 이름으로 아파트를 지어 골목길을 파괴하고 있다. 재개발이란 미명하에 낡은 주택을 허물어 아파트를 짓고 지역 주택 조합을 만들어 또 다른 주거 지역의 골목길을 파고 들고 있다.

지난 3년 사이 광주 동구에서만 학동과 계림동을 중심으로 열 곳에서 재개발 사업으로 추억이 서린 골목길이 사라졌다. 동구에서 진행 중인 재개발 사업지만 14곳으로 1만 6000세대가 추가로 들어선다. 광주에서 지역 주택 조합 사업이 추진 중인 곳도 80여 곳에 달한다.



동리단길까지 아파트 들어선다니

최근에는 ‘가로 주택 정비 사업’이란 이름으로 아파트를 짓고 있다. 재개발→지역 주택 조합→가로 주택 정비 사업 순으로 이름만 바꿔가며 아파트 건립 공사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동리단길로 이름 난 광주 동명동에 가로 주택 정비 사업이 추진돼 논란이다. 가로 주택 정비 사업은 한 블록 단위로 노후 주택을 소규모 공동주택으로 재건축하는 사업이다. 쉽게 말해 특정 도로 안에 있는 주택이나 상가를 허물고 이곳에 아파트를 짓는 것이다. 개발업자들이 동명동 일대에 두 개의 가로 주택 정비 사업 조합 설립을 위해 주민들을 상대로 동의서를 받기 시작하자 일부 시민들은 반대 추진위원회를 만들어 반발하고 있다.

주민들은 동명동 일대에 아파트가 들어설 경우 거주지가 관광지화되면서 원주민들이 쫓겨나는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을 걱정한다. 사업 부지 일대에는 소규모 땅을 가진 노인들이 많아 조합이 꾸려진다 하더라도 사업비 증액으로 늘어난 분담금을 낼 수 없어 떠나게 될 것이란 우려다. 그러나 광주시민 입장에서 보면 경쟁력 있는 골목길이 사라지는 것이 더 큰 손실이다.

건축학자 유현준 교수는 걷고 싶은 길은 ‘이벤트 밀도’와 ‘공간의 속도’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이벤트 밀도는 단위 면적당 출입구 숫자가 많아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많다는 것이고, 공간의 속도는 사람이 걷는 속도인 시속 4㎞가 돼야 걷기에 좋은 길이란 얘기다. 천천히 걸으면서 이곳저곳 볼거리가 많은 거리가 경쟁력 있는 길인데 곧 골목길이 여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유 교수가 말한 걷고 싶은 길 1번지가 바로 동리단길이다. 개성 있는 카페와 레스토랑은 물론 갤러리 등 문화시설이 복합돼 광주에서 가장 핫하고 힙한 곳이다. MZ세대들이 즐겨 찾으면서 가장 활성화 된 상권으로도 꼽힌다. 공원 같은 문화전당을 매개로 충장로·금남로 상권과 연결돼 있고 양림동 문화예술 마을과도 연계가 가능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곳이다.



로컬 브랜드 살려 광주 경쟁력 갖춰야

골목 경제학자인 연세대 모종린 교수는 동명동-충장로-양림동으로 이어지는 광주의 골목 상권은 수도권을 포함해도 최상위급 골목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광주가 원도심 상권을 잘 관리하면 로컬 브랜드와 독립 브랜드가 강한 도시가 될 수 있다”면서 “동네, 로컬, 소상공인이 강한 도시가 광주가 추구해야 할 문화도시 모델”이라고 조언했다.

도시의 경쟁력은 결국 골목길에 있다. 성냥갑 같은 아파트와 반듯반듯한 대로로 상징되는 도시화 속에 차별화된 경쟁력을 가지려면 경험과 추억을 많이 제공하는 골목길을 육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동리단길을 잠식하는 아파트 건립이 우려스럽다. 지방 소멸 시대라며 인구 유입에만 최우선 가치를 두고 아파트 건립에 힘을 실어 주는 행정 당국의 대응도 실망스럽다.

흔히 지방 소멸 시대라고 하지만 실은 지역 소멸 시대라고 해야 한다. 지방에 있기 때문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대도시에 있더라도 경쟁력이 없으면 사라진다는 말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다비드 르 브르통은 “걷기는 세계를 느끼는 관능으로의 초대”라고 했다. 브르통의 말처럼 걷는다는 것은 주변, 더 확장하면 세계를 온전하게 경험하는 일이다. 동리단길이 그런 경험을 제공하는 곳이다. /bungy@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