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우리 시대의 열부(烈婦) 세 사람-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2021년 09월 13일(월) 06:00
지난 6월 29일 96세의 홍석희(1926-2021) 여사께서 운명하였다. 비보를 듣고도 전염병 때문에 조문할 수 없어 마음으로만 애도의 뜻을 표했다. 홍 여사는 내 손위 동서의 숙모여서 동서 집에 들를 때 만나 뵐 경우가 많아 그분의 일생은 대강 알고 있었다. 1926년 전북 순창에서 태어나 서울대 공과대학 건축과에 다니던 양동성(1923-1951:고창고보 교장 양태승 차자)에게 시집간 후 24세에 외아들 양홍렬을 낳았다. 다음 해인 1951년 27세에 남편이 병사하자 영아를 키워 성장시키며 70년이 넘도록 수절(守節)하다 남편 곁에 묻혔다. 나는 그분을 뵈올 때마다 어떻게 저렇게 연약한 부인이 저런 모진 삶을 아무런 탈없이 살아가고 계시는지 늘 경외의 마음으로 바라보곤 했었다.

노순아(盧順阿:1896-1982) 부인은 함평에서 태어나 19세에 나주의 이용헌에게 시집간 뒤 중병으로 고생하는 남편을 8년 동안 시봉하다 부인의 나이 겨우 27세에 끝내 운명하셨다. 혈육 한 사람 남기지 않은 혈혈 청상과부로 87세까지 사셨으니 대단한 열부였다. 부인은 나의 장인어른의 숙모인데 분가하지도 않고 평생을 조카 집에서 함께 살았으니, 나는 처가에 갈 때마다 그분의 삶을 목격할 수 있었다. 우리 애들 3남매까지 그분이 돌보아 주셨으니 한식구처럼 잘 알던 처지였다. 다행스럽게 우리 장인 형제분들이 그분의 갸륵한 정신을 잊지 말자고 부인의 일생을 기록한 비를 마을 앞에 세워 놓았으니, 모두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이른바 열녀비다.

마지막 부인은 나의 집안 할머니다. 광산김씨 김죽산(金竹山:1872-1951)할머니는 나의 증조부의 5촌 숙모이고 우리 조부의 재종조모여서 내가 10세까지 그분의 삶을 지켜보았다. 집안에 행사만 있으면 우리 집에 오셔서 함께 식사도 하고 행사도 치렀기 때문에 자주 뵙던 분이었다. 우리는 그분의 댁호를 죽산할머니라고 불렀는데, 여자의 이름이 없던 시절이어서 호적에도 김죽산으로 실려 있다. 80세에 세상을 떠났으니 그때는 극노인이었다.

죽산할머니는 26세에 남편을 잃었는데 유아가 하나 있었으나 크고 보니 벙어리였다. 하지만 그런 아들 하나를 키우며 시댁 살림을 이끌고 사셨다. 참으로 대단히 지조 높은 여인이었다. 할머니의 손자들이 마을 앞에 ‘광산김씨 열부비’를 세워 모두의 귀감이 되게 하였으니 그것만이라도 다행한 일이다. 우리 집안 족보에도 “지조가 정숙하여 여사의 풍모가 있었다. 일찍 남편을 여의고 젖먹이 아이가 있다는 이유로 따라 죽지 못하고 고아를 키우며 온전하게 절개를 지켰으니 군과 도로부터 열부의 표창장을 받았다”라고 적혀 있다. 만인이 칭송하는 열부였음이 분명하다.

최근 홍씨부인의 타계로, 요즘 세상에도 그런 열부가 우리 곁에 있으며 또 그런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는가에 대해서는 나도 주저하지 않을 수 없다. 김씨부인과 노씨부인까지 생각하면서 열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본다. 시인 조지훈은 ‘지조론’에서 이렇게 말한다. “보통 사람이 능히 하기 어려운 일을 했다 해서만이 아니라 자연으로서의 인간 본능고를 이성과 의지로써 초극(超克)한 그 정신을 높이 보기 때문이다. 정조와 지조의 고귀성이 거기에 있다.” 청상과부로 지내며 인고의 삶으로 절개를 지킨 여인들을 고귀하게 여겨 한없는 칭송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연암 박지원은 ‘열녀 함양박씨전’에서 본능고를 이기며 수절했던 여인의 아픔을 눈물겹게 기술했다. “과부란 고독한 처지에 놓여 슬픔이 지극한 사람이다. 혈기가 때로 왕성해지면 어찌 혹 과부라고 해서 감정이 없을 수 있겠느냐? 가물거리는 등잔불에 제 그림자를 위로하며 홀로 지내는 밤은 지새기도 어렵도다. 또 처마 끝에 빗물이 뚝뚝 떨어지거나 창에 비친 달빛이 하얗게 흘러들며, 잎새 하나가 뚝 떨어져 뜰에 날리거나 외기러기가 하늘에서 울며 날아가고, 멀리서 닭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고 어린 종년은 세상모르고 코를 골면, 이런저런 근심으로 잠 못 이루니 이 고충을 누구에게 호소하리요.” 닳고 닳은 엽전 하나로 그 고통과 아픔을 이기고 버티었던 과부의 서러움을 이렇게 기술한 것이었다. 과부의 수절이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정약용은 ‘열부론’에서 “남편이 천수를 누리고 안방에서 조용히 운명하였는데도 아내가 따라 죽는다. 이는 자살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 자살은 천하에 제일 흉측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대신 남편을 따라 죽으면 열부가 아니고 끝까지 살아서 인고의 아픔을 견디며 집안을 이끌고 가는 사람이 열부라고 했다. 요즘 세상에서는 허망한 이야기들일 수 있겠지만, 내가 직접 목격했던 세 분 열부들의 회고담을 남긴다. 어찌 고귀한 지조를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