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추억에 예술 더하기… ‘골프장 옆 미술관’에 가다
우리동네 미술관을 소개합니다 <7> 보성 우종미술관
2008년 개관…보성컨트리클럽 하우스 자리
박수근·김환기·파블로 피카소·앤디 워홀 등
거장 작품 1600여점…폭넓은 문화예술 향유
2008년 개관…보성컨트리클럽 하우스 자리
박수근·김환기·파블로 피카소·앤디 워홀 등
거장 작품 1600여점…폭넓은 문화예술 향유
![]() 변대용 작 ‘똥강아지’ |
‘골프장 옆 미술관’. 차와 소리의 고장인 보성군에는 이색적인 타이틀이 붙은 곳이 있다. 지난 2008년 개관한 우종 미술관(보성군 조성면 조성 3길 338·관장 우영인)이다. 보성컨트리클럽 하우스 옆에 자리한 이곳은 보성 군민은 물론 골퍼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진 명소다.
하지만 시골미술관이라고 해서 만만히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골프장을 품고 있지만 미술관으로 들어가면 국내외 유명한 아티스트들의 작품이 전시장 벽면을 장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는 마르크 샤갈에서 부터 파블로 피카소,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 슈타인, 호안 미로, 쿠사마 야요이, 데미안 허스트, 나라 요시토모 등 세계적인 거장들이다.
국내 작가들의 면면 역시 화려하다. ‘국민화가’ 박수근, 김환기, 이중섭은 물론 한국 서양화단의 선구자 오지호, 모노파(物派·일본의 예술사조) 창시자 이우환, 장욱진, 김창렬, 천경자, 오승윤, 이대원 등 한점 한점이 ‘명작’인 1600여 점의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다. 특히 컬렉션 리스트에는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의 도자기를 비롯해 국보급 유물들도 포함돼 웬만한 국공립 박물관에 비해 뒤지지 않는다.
범상치 않은 우종 미술관의 존재감은 건물에서도 그대로 전해진다. 희귀한 나무와 꽃들로 단장된 골프장안에 들어선 미술관은 붉은 기와와 높은 층고가 눈에 띈다. 밖에서 보면 2층 규모이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1층과 2층 사이에 또 하나의 전시장이 있는 구조다. 건물 1층에는 상설전과 기획전이 열리는 제1, 2 전시실이 있고 2층은 고미술품과 유물들을 선보이는 제3 전시실로 꾸며져 있다.
취재차 방문했던 날은 올 여름 우종미술관이 야심차게 기획한 ‘여름, 바람이 머문 자리’전(6월7일~10월1일)이 열리고 있었다. 특히 골프장 안에 자리한 미술관의 지리적 특수성을 살리기 위해 남도로 내려오는 여행객들을 겨냥한 전시다. 다른 미술관에서는 쉽게 접하기 힘든 ‘퀄리티 높은’ 소장품들을 보여주기 위해 1층 두 개의 전시실을 꽃과 바다, 자연이 충만한 대가들의 작품들로 가득 채웠다. 전시 주제인 ‘여름, 바람이 머문 자리’에서 알 수 있듯 초여름의 설레임에서부터 여름이 머물고 지나간 이후의 흔적과 여운에 어울리는 그림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전시실에는 오지호 화백을 비롯해 천경자, 장욱진, 이왈종, 아산 이방원, 운보 김기창, 앙드레 브라질리에 등 내로라하는 20인의 동서양 회화작품이 걸렸다. 그중에서도 고 오지호 화백의 ‘계곡풍경’은 답답한 마음을 탁 풀어주는 청량감이 느껴진다. 인상주의의 거장 답게 흐르는 물의 빛과 자연의 생기를 수묵느낌의 담백한 색채로 시각화 해 시원함을 안겨 준다.
한국의 파울클레로 불리는 장욱진의 ‘나무 위의 새’는 마치 한 여름 들판에 서 있는 허수아비를 보는 느낌을 준다. 평화로운 여름날의 시골 풍경을 형상화 한 그림을 보고 있으면 어릴 적 동심으로 되돌아간 듯 하다.
천경자의 ‘모래아섬의 마드모아젤’은 생전 여행을 통해 얻은 영감으로 환상적인 이미지를 보여준 작가의 역량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즐겨 사용하던 강렬한 색채 대신 파스텔톤의 채색화로 표현한 이국적 여인의 모습은 관람객들로 하여금 피서지에서의 지난 추억을 곱씹어 보게 한다. 제주살이를 하고 있는 서양화가 이왈종의 ‘서귀포’는 동물과 사물, 인간이 함께 어우러진 따뜻한 그림이다. 골프 애호가 답게 화면 중심에 자리한 집에 세워져 있는 골프채가 웃음을 자아낸다. 그 어느 곳 보다도 골프장 옆 미술관에 어울리는 작품이다.
2층 계단으로 올라가 3전시실에 들어서면 1층 상설전과는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우종 미술관의 뿌리를 엿볼 수 있는 고미술의 향연이다. 미술관의 설립자인 박용하(76) 여수 와이엔텍 회장이 부친의 유지를 받들어 지난 50년 간 고미술과 유물들을 수집해 온 명품들을 엄선해 놓았다. 연중 상설로 전시되는 이 공간에는 보물 제875호인 ‘상교정본자비도량참법(권7~10)을 비롯해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유물과 고미술품, 화려한 일본 근·현대 도자기와 공예품이 망라돼 ’시간여행‘을 즐길 수 있다.
우종미술관이 화려한 컬렉션을 갖추게 된 데에는 설립자인 박용하 회장의 남다른 미적 안목과 관심이 있었다. 여수에서 양조장을 했던 부친인 고 박우종 선생은 가난한 지역 미술인들을 집으로 초대해 머무르게 하는 등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또한 이들의 그림을 구입하는 부친을 통해 산수화와 문인화를 감상하는 ‘눈’을 키운 그는 가업을 이어받은 후 여유가 생길 때마다 전국을 돌며 고미술과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손에 넣었다.
남편의 열정에 감화된 우영인 관장은 그의 뒤를 이어 미술관 운영을 맡고 있다. “신혼때는 시아버님으로부터 생활비를 지원받아 살림형편이 빠듯했어요. 하지만 그림이나 고미술을 워낙 좋아한 남편은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으면 그냥 넘어가지 못하더군요. 넉넉하지 않은 생활비의 일부를 작품 구입에 쓸 정도로 열정적이었어요. 제가 ‘그림이 밥먹여주냐’고 잔소리를 할 때도 있지만 소용없더라구요.(웃음) 거실이나 안방에 그림을 걸어 놓고 감상하면서 행복해하더군요.”
미적 안목이 있다 보니 꼭 비싼 그림만 고집하지 않았다는 남편은 30년 전부터는 서양화와 현대미술 등으로 시야를 넓혀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수집했다. ‘좋은’ 그림들을 얻기 위해 국내외 옥션이나 일본, 스위스, 미국 등의 아트페어를 찾다 보니 1600여 점의 방대한 미술품을 품게 됐다.
매년 늘어나는 작품들을 보관할 장소가 마땅치 않았던 박 회장은 자신이 운영하는 골프장에 지난 2008년 10월 부친의 이름을 딴 우종미술관을 건립했다. 낙후된 시골이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작품들을 관람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이런 공로들을 인정받아 우 관장은 지난 2021년 한국박물관협회가 수여하는 ‘박물관·미술관 발전 유공 정부 포상’에서 국무총리 표창을 받기도 했다.
우 관장은 “인구 3만 7000여 명의 시골 미술관이지만 양질의 컬렉션을 지니고 있다는 소문이 알려지면서 광주, 서울 등 전국 각지에서 관람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보성교육지원청과 공동으로 기획한 ‘미술관 산책’을 통해 미래 세대의 예술교육을 지속적으로 펴나가겠다”고 말했다.
/보성=박진현 문화선임 기자 jhpark@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
하지만 시골미술관이라고 해서 만만히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골프장을 품고 있지만 미술관으로 들어가면 국내외 유명한 아티스트들의 작품이 전시장 벽면을 장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는 마르크 샤갈에서 부터 파블로 피카소,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 슈타인, 호안 미로, 쿠사마 야요이, 데미안 허스트, 나라 요시토모 등 세계적인 거장들이다.
취재차 방문했던 날은 올 여름 우종미술관이 야심차게 기획한 ‘여름, 바람이 머문 자리’전(6월7일~10월1일)이 열리고 있었다. 특히 골프장 안에 자리한 미술관의 지리적 특수성을 살리기 위해 남도로 내려오는 여행객들을 겨냥한 전시다. 다른 미술관에서는 쉽게 접하기 힘든 ‘퀄리티 높은’ 소장품들을 보여주기 위해 1층 두 개의 전시실을 꽃과 바다, 자연이 충만한 대가들의 작품들로 가득 채웠다. 전시 주제인 ‘여름, 바람이 머문 자리’에서 알 수 있듯 초여름의 설레임에서부터 여름이 머물고 지나간 이후의 흔적과 여운에 어울리는 그림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전시실에는 오지호 화백을 비롯해 천경자, 장욱진, 이왈종, 아산 이방원, 운보 김기창, 앙드레 브라질리에 등 내로라하는 20인의 동서양 회화작품이 걸렸다. 그중에서도 고 오지호 화백의 ‘계곡풍경’은 답답한 마음을 탁 풀어주는 청량감이 느껴진다. 인상주의의 거장 답게 흐르는 물의 빛과 자연의 생기를 수묵느낌의 담백한 색채로 시각화 해 시원함을 안겨 준다.
한국의 파울클레로 불리는 장욱진의 ‘나무 위의 새’는 마치 한 여름 들판에 서 있는 허수아비를 보는 느낌을 준다. 평화로운 여름날의 시골 풍경을 형상화 한 그림을 보고 있으면 어릴 적 동심으로 되돌아간 듯 하다.
천경자의 ‘모래아섬의 마드모아젤’은 생전 여행을 통해 얻은 영감으로 환상적인 이미지를 보여준 작가의 역량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즐겨 사용하던 강렬한 색채 대신 파스텔톤의 채색화로 표현한 이국적 여인의 모습은 관람객들로 하여금 피서지에서의 지난 추억을 곱씹어 보게 한다. 제주살이를 하고 있는 서양화가 이왈종의 ‘서귀포’는 동물과 사물, 인간이 함께 어우러진 따뜻한 그림이다. 골프 애호가 답게 화면 중심에 자리한 집에 세워져 있는 골프채가 웃음을 자아낸다. 그 어느 곳 보다도 골프장 옆 미술관에 어울리는 작품이다.
2층 계단으로 올라가 3전시실에 들어서면 1층 상설전과는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우종 미술관의 뿌리를 엿볼 수 있는 고미술의 향연이다. 미술관의 설립자인 박용하(76) 여수 와이엔텍 회장이 부친의 유지를 받들어 지난 50년 간 고미술과 유물들을 수집해 온 명품들을 엄선해 놓았다. 연중 상설로 전시되는 이 공간에는 보물 제875호인 ‘상교정본자비도량참법(권7~10)을 비롯해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유물과 고미술품, 화려한 일본 근·현대 도자기와 공예품이 망라돼 ’시간여행‘을 즐길 수 있다.
![]() 오지호 작 ‘계곡풍경’ |
![]() 마르크 샤갈 작 ‘연인들과 붉은 꽃’ |
![]() 파블로 피카소 작 ‘비둘기’ |
![]() 범상치 않은 우종미술관의 존재감은 건물 내부에서 고스란히 느껴진다. 밖에서 보면 2층 규모이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1층과 2층 사이에 또 하나의 전시장이 있는 독특한 구조다. |
미적 안목이 있다 보니 꼭 비싼 그림만 고집하지 않았다는 남편은 30년 전부터는 서양화와 현대미술 등으로 시야를 넓혀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수집했다. ‘좋은’ 그림들을 얻기 위해 국내외 옥션이나 일본, 스위스, 미국 등의 아트페어를 찾다 보니 1600여 점의 방대한 미술품을 품게 됐다.
![]() 보성컨트리클럽에 자리한 우종미술관 입구. |
우 관장은 “인구 3만 7000여 명의 시골 미술관이지만 양질의 컬렉션을 지니고 있다는 소문이 알려지면서 광주, 서울 등 전국 각지에서 관람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보성교육지원청과 공동으로 기획한 ‘미술관 산책’을 통해 미래 세대의 예술교육을 지속적으로 펴나가겠다”고 말했다.
/보성=박진현 문화선임 기자 jhpark@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