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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문학관, 그 정신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박성천 문화부장·편집국 부국장
2023년 10월 11일(수) 00:00
‘문학은 모든 문화예술의 기본이다’라는 말이 있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문학의 중요성과 보편성을 의미하는 정의다. 예술 작품을 해석하거나 텍스트화 하는 데 있어 문학을 능가할 장르는 없다는 뜻이다. 아무리 뛰어난 작품도 이를 소개할 평론이나 비평이 없다면 심미적인 가치가 온전히 전달될 수 없다.

문학관은 작가의 생애와 문학 세계가 응결된 공간이다. 문학을 매개로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하고 문화관광의 구심적 역할을 하기도 한다. 사실 작가와 관련한 자료 보관의 기능은 일차원적인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의 문학관은 복합 문화 공간를 넘어 사람과 문화, 예술이 교류되는 플랫폼 기능을 아우른다.

문화중심도시 첫 문학관 ‘결실’

한때 광주는 5대 광역시 가운데 유일하게 문학관이 없는 도시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었다. 적어도 지난달 북구 각화동에 개관한 광주문학관이 건립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명색이 문화중심도시라는 예향에 문학관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어떤 변명으로도 합리화될 수 없었다. 그만큼 문학에 대한 투자가 미흡했는데, 기실 그 중요성이 간과됐다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문학관 하나 없는 도시였지만 광주에는 내로라하는 문인들은 많다. 현대시학의 대표적인 시인인 ‘나도야 간다’의 용아 박용철을 비롯해 “우리집 강아지는 복슬 강아지”로 시작되는 동요 ‘강아지’를 작시한 김태오, 양림동의 언덕과 무등산을 바라보며 시심을 키웠던 ‘고독과 커피의 시인’ 다형 김현승은 현대문학의 대표 작가들이다. 그뿐인가. 2016년 맨 부커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을 비롯해 그녀의 부친이자 이상문학상 수상 소설가인 한승원, 전남대 교수를 역임했던 ‘녹두장군’의 송기숙, 민중의 한을 탁월하게 그렸던 문순태는 모두 광주를 기반으로 또는 광주 정신을 모티브로 창작활동을 펼쳤던 작가들이다.

문화적 측면에서 위대한 문인과 문학관은 다양한 콘텐츠 생산과 직결된다. 영국에서 셰익스피어는 그 자체로 ‘국부’(國富)다. ‘영국=셰익스피어’라는 등식이 성립할 만큼 불가분의 관계라 할 수 있다. 그의 4대 비극을 포함해 많은 작품들은 끊임없이 영화와 연극, 뮤지컬로 재창작되고 있다. 무엇보다 ‘셰익스피어’라는 브랜드의 힘은 그의 고향에서 여실히 증명되는데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은 작은 도시임에도 연간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세계 도처에서 방문한다. 주민들 상당수는 셰익스피어 관련 문화관광사업에 종사하며, 왕립 셰익스피어 극단은 매일 작품을 공연한다.

최명희문학관은 전주 한옥마을에 자리한 대표 문화공간이다. 문학관 인근에는 한국의 전통과 역사, 문화가 집약된 한옥들이 들어서 있다. 이곳은 하루 평균(휴관일 제외) 500여 명, 연간 약 14만 여명이 방문할 만큼 전주의 핫 플레이스가 된 지 오래다. 생전의 최명희 작가는 ‘언어는 정신의 지문’이라고 명명할 만큼 우리의 고유 언어에 대한 정치한 미의식을 소설 ‘혼불’에 투영했다. 한옥 구조의 문학관은 그러한 작가의 장인정신이 집약된 곳으로 매년 지역 특성에 기반한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18년 지난한 과정 되풀이 안돼

지난 2006년 건립 논의를 시작해 18여년 만에 개관한 광주문학관은 여러모로 의미가 크다. 지역문학인들의 숙원사업이 십 수년만에 결실을 맺었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5대 광역시 가운데 문학관 하나 없는 불명예를 더 이상 듣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일말의 성과다. 지상 4층 규모인 이곳은 상설, 기획 전시실 외에도 영상자료실, 창작실, 세미나실, 다목적 홀, 카페, 도서관 등으로 구성돼 있다. 주변에 미술관을 비롯해 청소년문화의집, 각화저수지 수변공원 등이 있어 시너지 효과도 기대된다.

그러나 외곽에 자리한 이상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교통망 확충이 시급하다. 작고한 문인들의 유품, 육필 원고 같은 1차적 자료 확보 외에도 광주문학관에서만 볼 수 있는 양질의 콘텐츠, 무엇보다 광주를 대표하는 브랜드 프로그램 개발이 중요하다. 사람과 문화, 예술이 교류하는 복합 플랫폼을 지향하는 것은 물론 지친 현대인들에게 쉼과 힐링의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그러나 우려스러운 면들도 없지 않다. ‘염불에는 관심이 없고 잿밥에만 관심이 있는’ 이들이 있을까 싶어서다. 문학관 건립에 18년이나 소요된 데는 문학단체들 간의 알력, ‘함량 미달’ 문학인들의 볼썽사나운 행태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개관 이후에도 그런 일들이 반복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불현듯 신동엽 시인의 시 한 구절을 인용해 한마디 고언을 하고 싶다. ‘광주문학관의 그 정신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