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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평화 지수 올리려면 - 정근식 서울대 명예교수
2023년 09월 26일(화) 00:00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판문점에서 정전협정 조인식이 열렸다. 유엔 전폭기들이 공산군 진지를 폭격하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조인식에 걸린 시간은 단 12분. 이를 취재하던 유엔군측 기자는 100명, 일본인 기자는 10명 가량이었는데, 한국측 기자는 단 두명이었다. 이 조인식을 취재했던 최병우 기자는 “한국의 운명은 또 한번 한국인의 참여없이 결정되었으며 어떤 극적인 요소도 없고 화해의 정신도 엿볼 수 없었다”고 썼다.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이곳이 우리나라인가” 의아해하면서 그는 그래도 “우리가 살고 죽어야 할 땅은 이곳밖에 없다고 순간적으로 자답하였다”고 한다. 유감스럽게도 최병우 기자는 그로부터 약 5년이 지난 1958년 9월 11일, 금문도에서 벌어진 중국과 대만의 포격전을 취재하다가 순직했다.

정전협정은 최종적 결정이 이루어질 때까지 적대적 행위와 무장 행동의 정지를 보장하기 위한 것으로, 여기에는 3개월 내에 당사국 정치회의를 통해 모든 외국 군대가 철수하고,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협의하기로 한다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다. 분명히 정전협정은 평화협정으로 가기 위한 잠정적 조치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불과 2개월 후에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조인되었고, 1954년 4월말부터 두달간 열린 제네바 회담에서 미국은 한반도 평화협상 논의에 적극적이지 않았고, 정전은 잠정적 조치가 아니라 계속 연장되는 체제로 굳어지게 되었다.

이런 잠정적 체제에서 한국은 각고의 노력 끝에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이 되었고, 세계 20위권의 민주국가가 되었다.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부설 인텔리전스 유닛(EIU)은 ‘민주주의 지수 2022’를 발표하면서 한국을 전 세계 167개국 중에서 24위로 평가했다.

사실 이 순위는 2021년 16위에서 상당히 하락한 것으로 그 원인은 수년간의 대립적인 정당 정치 때문이었다. 이 보고서는 “정치인들은 합의를 모색하고 시민의 삶을 개선하는 것보다는 라이벌 정치인들을 쓰러뜨리는 데에 정치적 에너지를 쏟는다”고 썼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현상은 올해 더 심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평화는 어떤 수준인가. 호주의 민간 연구기관인 경제평화연구소(IEP)가 발표한 ‘2023년 세계평화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 163개국 중에서 43위였다. 이 평화지수는 ‘현재 진행 중인 국내외의 분쟁’, ‘사회 안전과 안보’, ‘군사화’라는 세 영역에서 추출한 23개 지표를 바탕으로 산정되는데, 한국은 분쟁과 사회안전 영역에서는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군사화 영역에서 낮은 평가를 받았다. 그만큼 한국의 군비 지출이 평화 국가로의 발전에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현주소를 설명하는데 더 심각한 지수는 세계 최저의 출산율 지표이지만 민주주의지수나 평화지수는 우리나라의 장기적 국정지표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잘 알려주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의 정치문화나 평화문제를 이런 계량적 수치만으로 객관화할 수 없고 이른바 동아시아 냉전 및 분단체제의 구조적 변화에 관한 심층적 분석 위에서 지표가 설정되어야 하지만 기본 방향은 대립과 보복이 반복되는 원한의 정치와 결별하고 평화를 증진하기 위한 실질적 방안들을 찾는데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며칠전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한 지난 정부의 주요 인사들이 2018년 9·19 평양공동선언과 그 부속합의서인 남북군사합의의 의미를 재확인하는 기념식을 가졌다. 우리는 지난 정부의 평화를 위한 진정성과 노력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런 노력들이 있었기에 정전이후 최초로 북미정상회담을 이끌어낼 수 있었고 70년동안 미루어진 최종적 협의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평화의 길을 잃고 방황하는 작금의 상황을 초래한 하노이 북미회담의 실패에 대한 성찰의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평화를 위한 이어달리기를 강조하려면 그때 우리가 무엇을 놓쳤는지, 무엇이 걸림돌이었는지를 언급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오늘날 직면하고 있는 평화의 위기가 미중 갈등을 축으로 하는 신냉전 상황과 현 정부의 힘에 의한 평화 노선, 그리고 남남 갈등에서 비롯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대화와 교류를 막고 있는 남북 불신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장애물이고 그것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반성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