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평가를 폐지하라 - 김진균 성균관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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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시간 한참 지나 교수 대신 조교가 들어와 휴강이라고 알려주기 일쑤이던 강좌라든가, 기껏 들어와서 편견과 혐오의 잡담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교수라든가, 심지어 가르쳐야 할 분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 이리저리 돌리는 엉뚱한 소리들을 겪어 보면 대학 교육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다. 대학생들이 강의를 평가하는 일도 필요한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강의평가는 1980년대 말 학원민주화 투쟁의 일환으로 일부 대학 총학생회가 주도하여 처음 시도되었다. 수집한 수업계획서들을 공유하고 자체적으로 강의평가를 시행하여 강의 수준 향상을 꾀하는 것을 대학생 학술 운동의 하나로 여겼던 것이다. 대학 본부가 수업계획서와 강의평가를 제도적으로 수용한 것은 1990년대 중반이었다.
일부 대학에서 미국의 제도(SETs)를 참조하여 제도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하였고 2000년대 이후엔 대부분의 대학으로 확산되었다. 평가 결과를 교수방법 제고에 참고하라는 취지에서 교수 당사자에게만 제공하거나 수강신청에 활용하라고 학생들에게 제공하기도 했는데 강의평가는 거기에서 멈췄어야 했다.
강의평가의 극적인 폐단은 대학 운영진이 평가 결과를 인사 관리에 활용하면서 드러났다. 양질의 서비스 제공이나 소비자 만족도 제고 따위의 시장 언어가 대학에 침투하던 2010년대였다. 대학은 학생 의견을 반드시 자본주의적 미소로 수용해야 하는 고객 요청 사항으로 접수한 것이다. 비정규교수의 재임용 심사나 전임교원의 연구년 배정과 승진 등에 강의평가 점수를 반영하면서 평가점수 하위에 들지 않기 위한 교강사들의 의자놀이가 시작되었다. 평가점수 하위 일정 비율에게 강의를 배정하지 않으면 강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상승하는 효과가 있으리라 믿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상대적 순위로서 평가점수 하위가 언제나 발생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만들어두고 이러한 무한경쟁의 도가니를 설치하면 실상 교육의 본원적 기능이 녹아나기 마련이다.
물론 저질 수업을 듣고 싶지 않은 학생들의 요구가 수용되어 수준 이하의 강의가 퇴출되는 효과도 없지는 않았지만, 학점을 쉽게 얻으려는 학생들의 요구도 걸러지지 않아 수업의 교육적 효과를 외면하게 만드는 부작용까지 수반했다. 의자를 뺏기면 안 되는 ‘교강사(교수와 강사)’들에게는 어느 방향의 요구도 무시할 수 없는 일이다. 학습량 많은 수업은 강의평가 점수가 낮아진다. 과제와 토론이 많으면 거의 퇴출권에 들게 된다. 성취도 평가를 자주 하는 수업도 점수가 낮다. 출결이 엄격해도, 챗gpt를 복사해서 발표문을 만들어오거나 수업중 유튜브를 보는 행위를 지적해도 퇴출권이다.
음식점에 대한 별점 평가에 익숙해 있는 학생들은 대학의 소비자 대접에 이미 적응할 자세가 갖춰져 있었다. 강의평가가 온라인으로 전환되면서 익명성이 더욱 완벽하게 보장되자 쾌적하고 수월하게 높은 학점을 따고 싶은 열망을 가감 없이 노출하고 심지어 사적인 감정을 담아 인신공격을 끼워넣기도 한다. 어떤 소리를 적어도 효능감이 제법 있다. 은퇴를 각오하지 않는다면 교강사들이 강의평가에 낮은 점수를 부여하는 학생들의 요구를 무시할 수가 없다.
강의평가만으로는 교육 소비자의 심기 파악에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일부 대학의 교무 관련 부서에서는 ‘에브리타임’의 교수평가 동향을 분석해서 교강사들에게 제공하기까지 했다.
‘에브리타임’은 대학별 정보교환을 목적으로 거의 모든 대학생들이 가입하는 사이트인데, 학생들은 이곳에서 과제 적고 시험 쉽고 학점 잘 주는 소위 ‘꿀강좌’,‘갓교수’의 정보를 교환한다. 정보가 없으면 아예 수강을 안 하는 분위기까지 형성되어 신규 강좌나 신임 교강사가 의문의 폐강을 맛보기도 한다. 수강권과 기출문제를 거래하는 불법적 행위까지 거리낌 없이 행하고 있는 이 비교육적 사이트에서 학생들을 격리시킬 생각보다 그것을 활용해 소비자들의 비위를 맞출 방법을 찾는 것은 공교육기관인 대학이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교육이란 피교육자의 미래를 위한 윤리적 행위이다. 학생에게는 현재의 고통을 감수하며 스스로 변화하도록 요구해야 하는 일이므로, 현재의 관성에서 나오는 학생의 요구를 여과 없이 전달하여 교강사에게 수용하게 만드는 일은 어떠한 교육철학으로도 합리화될 수 없다. 교육을 소비자들이 불만 없이 소비할 자본주의 시장의 상품으로 가공하여 소비자의 즉자적 욕구에 복무하게 만들면 교육은 실패한다.
일부 대학에서 미국의 제도(SETs)를 참조하여 제도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하였고 2000년대 이후엔 대부분의 대학으로 확산되었다. 평가 결과를 교수방법 제고에 참고하라는 취지에서 교수 당사자에게만 제공하거나 수강신청에 활용하라고 학생들에게 제공하기도 했는데 강의평가는 거기에서 멈췄어야 했다.
물론 저질 수업을 듣고 싶지 않은 학생들의 요구가 수용되어 수준 이하의 강의가 퇴출되는 효과도 없지는 않았지만, 학점을 쉽게 얻으려는 학생들의 요구도 걸러지지 않아 수업의 교육적 효과를 외면하게 만드는 부작용까지 수반했다. 의자를 뺏기면 안 되는 ‘교강사(교수와 강사)’들에게는 어느 방향의 요구도 무시할 수 없는 일이다. 학습량 많은 수업은 강의평가 점수가 낮아진다. 과제와 토론이 많으면 거의 퇴출권에 들게 된다. 성취도 평가를 자주 하는 수업도 점수가 낮다. 출결이 엄격해도, 챗gpt를 복사해서 발표문을 만들어오거나 수업중 유튜브를 보는 행위를 지적해도 퇴출권이다.
음식점에 대한 별점 평가에 익숙해 있는 학생들은 대학의 소비자 대접에 이미 적응할 자세가 갖춰져 있었다. 강의평가가 온라인으로 전환되면서 익명성이 더욱 완벽하게 보장되자 쾌적하고 수월하게 높은 학점을 따고 싶은 열망을 가감 없이 노출하고 심지어 사적인 감정을 담아 인신공격을 끼워넣기도 한다. 어떤 소리를 적어도 효능감이 제법 있다. 은퇴를 각오하지 않는다면 교강사들이 강의평가에 낮은 점수를 부여하는 학생들의 요구를 무시할 수가 없다.
강의평가만으로는 교육 소비자의 심기 파악에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일부 대학의 교무 관련 부서에서는 ‘에브리타임’의 교수평가 동향을 분석해서 교강사들에게 제공하기까지 했다.
‘에브리타임’은 대학별 정보교환을 목적으로 거의 모든 대학생들이 가입하는 사이트인데, 학생들은 이곳에서 과제 적고 시험 쉽고 학점 잘 주는 소위 ‘꿀강좌’,‘갓교수’의 정보를 교환한다. 정보가 없으면 아예 수강을 안 하는 분위기까지 형성되어 신규 강좌나 신임 교강사가 의문의 폐강을 맛보기도 한다. 수강권과 기출문제를 거래하는 불법적 행위까지 거리낌 없이 행하고 있는 이 비교육적 사이트에서 학생들을 격리시킬 생각보다 그것을 활용해 소비자들의 비위를 맞출 방법을 찾는 것은 공교육기관인 대학이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교육이란 피교육자의 미래를 위한 윤리적 행위이다. 학생에게는 현재의 고통을 감수하며 스스로 변화하도록 요구해야 하는 일이므로, 현재의 관성에서 나오는 학생의 요구를 여과 없이 전달하여 교강사에게 수용하게 만드는 일은 어떠한 교육철학으로도 합리화될 수 없다. 교육을 소비자들이 불만 없이 소비할 자본주의 시장의 상품으로 가공하여 소비자의 즉자적 욕구에 복무하게 만들면 교육은 실패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