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알래스카의 미래 가치를 예견한 탁월한 리더십-박종섭 전 목포대학교 강사·교사
2022년 07월 26일(화) 00:15
지난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개시 이후 민간인과 정규군 사망자가 수만 명에 이르고 내외신 기자도 30여 명이 희생됐다. 전쟁 장기화에 따른 에너지·식량 가격 상승은 세계 경제를 뒤흔들고 신냉전체제로 회귀하며 국제적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7월 8일 중앙일보에 실린 ‘155년 전 팔아놓고 “美, 알래스카 내놔라”…러의 찌질한 으름장’ 기사는 많은 시사점과 교훈을 주고 있다.

기사 일부를 옮기면 서방국가들 사이에 전쟁으로 폐허가 된 우크라이나 재건을 위해 러시아의 해외 자산을 몰수해 충당하자는 의견이 나오자 러시아는 155년 전 미국에 판 알래스카 영토를 돌려받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1867년 당시 러시아는 미국에 720만 달러(현재 가치 1억 6000만 달러, 한화 2100억 원)에 불과한 헐값에 알래스카를 넘겼다. 러시아 내 강경파 뱌체슬라프 볼로딘 하원 의장은 의회에서 “미국은 러시아 영토 일부인 알래스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면서 “미국 등 서방이 자꾸 우리 해외 자산을 압수하는데, 그전에 미국이 러시아에 돌려줄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표트르 톨스토이 의회 부의장도 알래스카 주민을 상대로 국민투표를 할 수도 있다는 맥락의 발언을 이어갔다.

알래스카에 대해 많은 이들은 전략적 가치와 자원의 보고인 그 넓은 땅을 러시아는 왜 헐값에 미국에 팔았을까 궁금해 한다. 러시아가 이 땅을 미국에 팔았던 시기는 국내외적 상황이 많이 달랐다. 1741년 베링이 이끄는 러시아 탐험대가 처음으로 도착했을 때 원주민들은 ‘알류슈카’ 즉 ‘위대한 땅’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로부터 한 세기가 지나도록 사냥과 모피 정도에 의존할 정도로 산업이 빈약한 땅이었다.

그런데 제정 러시아가 흑해 진출 목적으로 영국·프랑스 등의 지원을 받은 터키와 싸운 크림전쟁(1853~1856년)에서 패배하여 남진 정책이 좌절되면서 알렉산드르 2세는 배상금으로 인해 긴급 자금이 필요했다. 또 알래스카는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먼 거리여서 통치에 따른 고비용과 행정력도 효과적이지 못했다. 이외 영국이 알래스카를 언제 무력으로 침략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매각을 부추기는 원인이었다. 전적으로 오판이었다.

당시 미국의 상황도 캐나다 내의 영국 세력을 견제하는 강박감에 시달리면서도 1867년 미 국무장관 윌리엄 수어드(William Seward)가 ‘알래스카 매입 법안’을 의회에 제출하자 상원은 ‘수어드 바보짓’ ‘수어드 얼음 상자‘라는 조롱으로 반대 여론이 높았다. 이때 수어드는 의회에서 “현재 가치가 아닌 감춰진 보물을 봐야 한다” “후손들에게 소중한 자산을 물려주기 위해서”라며 설득에 나섰고 제출된 비준안은 단 한 표 차이로 통과되었다.

수어드는 링컨과 공화당 대통령 후보 지명전에서 치열하게 싸운 경쟁자였고 링컨보다 화려한 정치인이었지만 링컨에게 역전패를 당했다. 패배한 수어드는 미국 전역을 돌며 경쟁자였던 링컨의 지원 유세에 나섰고, 당선된 링컨은 국무장관에 임명한다. 링컨은 분열된 미국을 통합했고, 수어드는 미래를 내다보며 영토 외연을 넓혔다. 이런 포용과 화해의 리더십은 우리 역사에서 정조와 다산의 만남이 그러했다.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미래를 예측하는 최고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고 했다. 우리의 지도자들이 새겨들었으면 한다. 지금 알래스카에는 수어드 항구 도시와 수어드 고속도로가 있다.

미운 오리새끼가 화려한 백조로 변신하기까지는 30여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1897년 유콘 강 기슭에서 금광이 발견되면서 골드러시가 일어났고, 제2차 세계대전 후 미소 냉전체제가 시작되자 미국은 공격 방어용 미사일과 최첨단 무기들을 알래스카에 집중적으로 배치하였다. 소련에서 가장 가까운 인접 지역에서 미국의 대외적 방패 구실을 한 것이다. 1968년 푸르도만에서는 대형 유전이 발견되면서 대박이 터졌다. 1959년에는 미국의 49번째 주가 되면서 한반도 일곱 배 크기의 알래스카는 미합중국의 가장 큰 주가 되었고, 인구는 70만 명(2015년 현재)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