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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권 300호, ‘예향’(藝鄕)의 역사를 만들다
2020년 09월 16일(수) 00:00
송 기 동 문화 2부장·편집부국장
“33년 만이네요. 전율이 옵니다!”

지난 2018년 여름, ‘나무 심는 출판인’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조상호 나남출판 회장을 인터뷰할 때 일이다. 장흥 태생인 조 회장은 경기도 파주 출판단지 내 사옥을 찾아간 기자를 반기며 33년 전 ‘인연’을 얘기했다. 알고 보니 당시 출판업에 뛰어든(1985년) 지 6년째였던 조 회장은 신생 잡지였던 월간 ‘예향’ 통권 4호(1985년 1월호)에 칼럼을 게재했었다. 제목은 ‘야누스의 두 얼굴… 출판문화’. 책을 펴내면서 겪는 ‘문화’와 ‘경영’이라는 양면성을 어떻게 상호 보완시켜 나갈 것인가 하는 고민을 다룬 내용이었다.

이후 3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인터넷 등장과 독서 문화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조 회장은 나남 브랜드를 확립하며 출판계에 굳건한 뿌리를 내렸다. 월간 ‘예향’ 역시 정글 같은 잡지 시장 속에서 제 색깔을 잃지 않고 살아남았다. 월간 ‘예향’이 오는 30일 통권 300호 발행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 1984년 9월 15일자로 창간호를 펴낸 지 36년 만이다. IMF 경제 한파로 인해 2002년 2월호(209호)를 끝으로 발행을 중단했다가 2013년 4월호(210호)로 복간하기까지 공백기 11년 2개월을 제외하면 꼭 25년 만의 일이다. 지역에서 만드는 문화 예술 잡지로서는 처음이다.



창간 이후 25년 만의 성과



“그동안 ‘예술의 고장’(藝鄕)임을 자처해 온 우리들에게 그러한 긍지를 가꾸고 또 일구어 나갈 마땅한 ‘자리’하나 없었음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여기서 광주일보는 우리 모두의 목마름을 씻어주고 또 우리의 다정한 인간정신을 더불어 살려 나가기 위한 갈망에 부응하고자 ‘전라도 사람의 잡지’를 마련하게 된 것입니다.”

창간호에 실린 ‘월간 예향을 펴내면서’라는 글은 잡지의 지향점을 잘 보여 준다.

민중사학자 이이화(1937~2020) 선생은 창간 특집(전라도·전라도사람들)에서 ‘칼과 거문고의 두 극단(極端)’이란 글을 통해 전라도 정신의 상징으로 ‘칼’과 ‘거문고’를 꼽기도 했다. 선생은 “칼과 거문고의 두 극단은 저항과 풍류, 그리고 내면의 승화로 서로 어우러져 새로운 역사를 개척해 나가는 것이다”라고 설파했다. 잡지 ‘예향’은 그러한 전라도 정신을 바탕으로 문학, 미술, 음악, 무용, 민속 등 다양한 분야의 정보를 발굴해 독자들에게 선보였다.

복간한 ‘예향’은 기존 콘셉트(concept)에서 한발 더 나아가 지역성과 국제성을 가미한 ‘글로컬’(Global+Local) 문화 예술 전문 잡지로 새롭게 출발했다. 가끔 취재를 하다 보면 부모님이 보시던 ‘예향’을 얘기하는 중견 예술인들을 만나게 된다. 수십 년의 시간을 훌쩍 건너뛴 인연으로 과거 ‘예향’과 현재 ‘예향’이 자연스레 연결되기도 한다. 패션 디자이너인 이광희 (사)희망의 망고나무 대표가 그러한 경우이다.

“제 어머니가 ‘예향’에 실린 것 아세요?”

이 대표는 2017년 여름, 기자의 인터뷰 요청에 바쁜 가운데서도 흔쾌히 시간을 내주었는데, 오래전 ‘예향’과의 인연 때문이라 했다. 그 인연이란, ‘예향’ 창간 10주년인 1994년 10월호 ‘전라도 여인들’ 시리즈에 첫 번째로 이 대표의 어머니이신 김수덕 여사가 소개된 것이었다. ‘해남의 성자’로 불린 부군 이준목 목사를 내조하며 많은 고아들을 돌보는 등 평생 사회 봉사 활동을 펼치신 분이다. 이 대표 역시 부모로부터 이 같은 ‘사랑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는지 아프리카 남수단의 기아와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망고나무를 심는 봉사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렇게 해서 어머니와 딸의 ‘나눔·봉사의 철학’이 24년의 시차를 두고 ‘예향’에 게재된 것이다.



독자와의 소통이 생명력



문화체육관광부의 ‘2019년 국민 독서 실태 조사’에 따르면 성인 한 사람의 연간 독서량은 6.1권이다. 반면 일상생활에서 인터넷과 스마트폰 사용시간은 계속 늘고 있는 추세이다. 이런 환경에서 매달 나오는 종이 잡지를 직접 구입해서 읽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많은 잡지들이 ‘문화’와 ‘경영’의 양면성에서 고전하며 존폐의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이다.

어느덧 300호 발간을 앞두고 있는 월간 ‘예향’의 생명력은 독자와의 소통과 교감에서 비롯됐다. ‘예향’은 광주·전남 나아가 한국의 새로운 문화 예술의 꽃을 피우는 자양분 역할을 할 것이다. 앞으로도 독자들에게 ‘설렘’과 ‘울림’을 줄 수 있는 콘텐츠를 갖춘 잡지가 될 수 있도록 분발할 것을 다짐한다. 아울러 독자들의 많은 성원과 질책을 바란다.

/song@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