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향기] 세상을 향하는 작은 발걸음 - 정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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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의 향기] 세상을 향하는 작은 발걸음 - 정선 시인
2026년 01월 19일(월) 00:20
잡곡밥 반 공기, 두부 된장국, 들기름에 무친 시금치와 콩나물, 맨 파래김, 브로콜리와 파프리카 몇 조각, 호두와 블루베리와 방울토마토 몇 알, 두유 반 컵.

새해 들어 비건을 시도한 첫 식사다. 문우가 펴낸 ‘오늘부터 채식주의’의 영향이 컸다. “내가 먹는 한 끼가 세상을 바꾼다!” 저자는 간절하게 외쳤고, ‘피타고라스부터 호아킨 피닉스, 폴 메카트니까지 한 목소리로 말하는 공존과 생명에 관한 메시지’라고 덧붙였다. 요기이자 15년 넘게 비건으로 살아온 그녀의 식탁 철학에 박수를 보냈다.

저자는 육식의 폐해와 비판보다는 비건으로 사는 즐거움과 한 끼라도 비건을 실천한다면 선한 영향력이 있음을 말했다. 불안과 부정적인 마음이 줄어들고 감사하는 마음이 자리한다는, 강요가 아닌 ‘다정한 권유’여서 나는 마음의 부담을 덜었다. 원래 육류 양이 적고 채소와 과일을 좋아하니까 나 하나만이라도 보탬이 된다면야 하는 심정이었다. 첫 식단 사진을 가족 단체방에 올렸더니 엄마는 저혈압에 허약 체질인 데다 고기까지 안 먹으면 쓰러진다 피골이 상접하겠다며 딸과 남편이 걱정했다.

아차차! 영화를 한 편 보려다가 무심결에 먹다 남은 카페라떼를 한 모금 마시고 말았다. 습관이란 이렇게 무섭다. 그렇다고 예서 말 수는 없다. 점심은 양지 대신 표고버섯 가루와 들깨가루를 넣은 떡국, 저녁은 나물과 국으로 간단히 때웠다. 두 살짜리 손녀를 돌봐야 하는 이틀째 아침도 들깨 떡국, 점심은 남은 나물로 비빔밥, 점점 물렸다. 급기야 저녁때는 손녀 먹을 소고기를 굽다가 기름 부분을 도려내고 낼름 집어먹었다. 한순간에 비건 첫 도전이 다섯 끼에 그쳤다.

책 속에서 알게 된 피타고라스, 그는 “살아 있는 생물이 다른 살아 있는 생물의 죽음으로 인해 살아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기괴한 죄악인가”라며 인간의 탐욕스러움을 언급했다. 이미 기원전 6세기경에 피타고라스는 제단에 바치는 소 대신 밀가루와 꿀로 만든 소 모양의 케이크를 만들어 채식을 실천했다니 생명을 귀히 여기는 그에게 경외감이 생겼다.

자연의 질서라지만 최상위 포식자들의 사냥 광경은 잔인하다. 나도 도축의 다큐멘터리를 보면 고흐처럼 육식을 피하게 될 것 같다. 최근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스물다섯, 스물하나’ 노래로 한우 광고에 출연한 것을 보고 눈살이 찌푸려졌다. 왼손에 든 한우 살코기 팩을 클로즈업시키고 “한우~ 너의 향기가 바람에 실려 오네”라고 노래하면 소가 음매~ 얼굴을 크게 내밀었다. 이 좋은 음악이 영상과 어울리지 않아 다소 실망스럽고 아쉬웠다. 나는 소고기를 좋아하지만 소의 우는 모습이 계속 떠올라 마음이 불편했다.

비건이 되려면 용기와 인내가 필요하다. 식탐이 많지 않은 나도 고기보다는 해산물을 못 먹는다는 것이 더 고통스럽다. 물치항의 쫄깃쫄깃한 자연산 회와 궁평항에서 먹은 주꾸미 샤브샤브와 소래포구 새조개의 들큰한 맛을 내 혀가 기억하는데 포기할 수 있을까.

다시 비건 식탁을 흉내 냈다. 젓갈을 넣은 김장 김치를 못 먹으니 다시마 육수와 간 양파로 깍두기를 담갔다. 야외 나갈 땐 달걀 대신 두부부침을 넣은 김밥을 챙겼다. 삼 일을 나물과 해초, 들깨통밀수제비, 샐러드와 과일, 두유, 견과류 등을 번갈아 가며 먹었다. 육식파에게는 빈한한 식탁이다.

저녁때 소고기에 와인을 마신 다음 날 아침에는 몸이 무겁다. 과식으로 입 안이 텁텁하고 고린내가 난다. 최애 기호식품인 와인은 포도로 만들지만 정제과정에서 생선 부레나 우유 단백질 등을 사용한다. 그래도 간간이 비건을 실천하면 몸에 불순물이 덜 쌓여서 뇌가 맑아지고, 쓸데없는 생각들이 사라져 숙면할 수 있을 듯하다.

비건의 한 끼가 지구 환경을 살린다고 한다. “축산업이 방출하는 온실가스가 전 세계 온실가스의 51%에 육박” 한다니. 또한 소고기 1kg 생산에 1만5000리터의 물이 필요하지만 채소는 300리터로 물 절약 효과가 크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비건 한 끼는 개인의 탄소 발자국을 줄이는 가장 쉬운 방법이며 실천이 완벽하지 않아도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하늘도 숲도 바다도 노력 없이 무한히 내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생명과 공존의 메시지’가 가슴에 와 닿아 변화하려고 발버둥 치는 이 작은 날갯짓이 헛되지 않고 이어지기를……. 참 좋은 식단이란? 오늘 하루 당신의 식탁은 어떠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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