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代가 함께…광주서 부다페스트까지 전기차로 2만7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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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代가 함께…광주서 부다페스트까지 전기차로 2만7천㎞
헝가리서 근무하는 엄마 찾아 두 아들·아빠·할아버지 80일간 여행
‘송송송 가족여행:전기차 지구횡단’ 영화 제작 상영…영화제 러브콜
“여행하다보면 갈등 있기 마련이지만 가족은 늘 사랑 나누는 존재”
2025년 09월 15일(월) 20:10
할아버지 송주동, 아빠 송진욱, 손자 송다니엘과 송하진 등 3대(代)가 함께 한 80일간의 여행 기록을 담은 ‘송송송 가족여행:전기차 지구횡단’ 스틸 컷. <어쩌다 필름 제공>
‘엄마 만나러 가는 길, 전기차 타고 광주에서 부다페스트까지.’

개인택시를 운행하는 할아버지 송주동(75), 영화사 대표 아빠 송진욱(45), 손자 송다니엘(10)과 송하진(8). 3대(代)가 함께 친환경 전기차를 타고 80일간 유라시아 2만 7363km를 횡단했다. 기나긴 여정의 목적은 부다페스트 한국 기업 현지 지사에서 일하는 엄마를 찾아가는 것.

이들은 지난해 5월 광주시 북구 자택에서 출발해 러시아, 카자흐스탄, 핀란드 산타클로스 마을 등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아우르는 길 위에 섰고 긴 여정은 다큐멘터리 ‘송송송 가족여행:전기차 지구횡단’으로 완성돼 영화관에서 상영 중이다. 작품은 바르셀로나 국제영화제 세미 파이널리스트 등 영화제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할아버지 송주동, 아빠 송진욱, 손자 송다니엘과 송하진 등 3대(代)가 함께 한 80일간의 여행 기록을 담은 ‘송송송 가족여행:전기차 지구횡단’ 스틸 컷. <어쩌다 필름 제공>
지난 2020년 어쩌다 필름을 창업해 영화 수입, 투자 등을 진행했던 송진욱 영화사의 첫 작품으로 이번 영화를 기획, 감독으로 참여했다. 마침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의 투자를 받을 수 있었고 일반 투자금과 개인 돈을 투입해 여행 기록을 영화로 남길 수 있었다.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이 많고 늘 도전적인 삶을 살았던 그가 ‘무모한 여행’을 감행한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다.

“저희 집안이 장수 집안이라 늘 아버지와의 시간도 길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아버지가 간암 수술을 받으시면서 함께 할 수 있는 날이 그리 많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죠. 건강하실 때 같이 여행하는 걸 늘 생각했는데 손자들도 예뻐하시니 함께 여행하며 추억을 만들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여행을 제안할 때 아버지가 너무 좋아하셨어요. 또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치 있는 재산은 ‘경험’이라는 생각에 과감히 도전했습니다.”

여행에 사용한 차량은 아버지가 운행하던 현대 아이오닉 5. 첫 계획은 1만 7198km였지만 우즈베키스탄과 이란 통과가 좌절되면서 코스가 바뀌었고, 노르웨이 피요르드 해안을 보고 싶다는 아버지의 소원을 위해 북유럽 끝까지 달려 여정은 2만 7363km로 늘어났다.

촬영감독 등 3명이 동행하며 드론 등 9대의 카메라로 잡아낸 4K 영상은 장엄한 자연 풍광을 보여주고 네 가족의 일상을 생생히 포착했다. 출발 당시 “왜 비행기를 타고 가지 않는 거냐”고 말했던 다니엘은 동생과 투닥거리면서도 알뜰히 챙기며 의젓하게 형 노릇을 했고, 두 살 터울의 하진은 ‘아빠 심심해’를 입에 달고 살며 투정을 부리기도 했지만, 자연 속에서 환하게 웃으며 뛰어놀았다.

전기차 충전소를 찾는 건 여행중 가장 힘든 일이었다. 국내에서는 충전소를 쉽게 발견할 수 있고 완충하는 데 드는 시간도 40분이면 충분했지만 시설이 열악한 중앙아시아 등에서는 8시간 정도가 걸렸고 때론 24시간이 소요되기도 했다. 식당에서는 양해를 구하고 전기차를 충전하다 건물이 정전될뻔한 돌발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여행은 아름다운 ‘만남’을 가능하게 해준다. 러시아에서 만난 태권도 유단자 이반은 가족들이 곤경에 빠졌을 때 집으로 초대해 주었고, 아이들까지 친구가 되었다. 자동차 수리비용을 지불하려던 송 감독에게 그들은 “앞으로 만날 누군가에게 선의를 베풀면 된다”는 말을 하며 돈을 받지 않는다.

영화를 제작하면서 송 감독은 두편의 영화를 마음에 뒀다. 같은 사안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본영화 ‘라쇼몽’처럼 아버지, 나, 아이의 시선으로 각각의 이야기를 촬영하려 했고, ‘이웃집 토토로’처럼 엄마를 찾아가는 아이들의 모습과 표정을 담담히 담으려 했다.

무사히 엄마를 만나고 촬영이 마무리되려던 순간, 정말 영화 같은 일이 벌어지고 만다. 아버지의 죽음. 출발 전 인터뷰에서 “이번이 마지막 여행일지도 모르겠다. 즐겁게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긴 아버지에게서 ‘조금이라도 아프면 귀국한다’는 다짐을 받고 떠난 여행이었다. 여행 중 몇차례 귀국을 권할 때마다 줄곧 “괜찮다. 마지막까지 함께 하고 싶다”고 말하던 아버지는 헝가리 도착 후 며칠만에 급성간부전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초등학교 5학년이던 큰 아들을 교통사고로 먼저 떠나보냈던 아버지는 어쩌면 사랑하는 아들, 손자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알고 여행을 고집했는지도 모르겠다.

“편집할 때 너무 힘들었죠. 참 많이 울었습니다. 영화에 보면 아버지와 다투는 장면도 나오는데, 더 잘해드리지 못한 게 마음에 남아요. 아이들이 할아버지와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었던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가장 내밀하고 치부까지 드러내는 게 가족이죠. 장거리 여행을 하다보면 부대끼고 갈등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은 늘 함께 하며 사랑을 나누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헝가리에서 학교를 다니는 다니엘과 하진은 개봉에 맞춰 GV 참석 등을 위해 귀국, 광주 할머니집에 머물고 있다. 세 부자는 첫 영화와는 반대로 부다페스트에서 할머니를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두번 째 영화를 만들 꿈을 꾸고 있다.

영화 마지막에는 캠코더로 촬영한 송 감독과 아버지의 35년 전 이집트 여행 영상이 흐른다. 송 감독은 아버지가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과 계속 여행을 이어갈 거라고 말했다.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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