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통 보고서 - 중현 광주 증심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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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익숙한 통증이다. 아랫배가 뻐근한 것이 마치 크기는 한 주먹 정도 되지만 수백킬로는 됨직한 돌덩이가 왼쪽 아랫배에 올려진 듯했다. 통증의 느낌으로 보아 이건 요도로 빠져 나가지 못할 정도로 큰놈일 확률이 크다. 아니나 다를까 아침까지 고생하다가 병원에 가서 검사하니 큼지막한 돌이 나왔다. 세로 약 1센티, 가로 0.7센티 정도. 위치는 콩팥 입구. 이 정도면 요로결석 중에서도 상당히 큰 편이다.
대개 이런 경우, 체외충격파쇄석술로 돌을 깨지만 나처럼 혈전용해제를 상시 복용하는 경우 직접 내시경을 요관으로 넣어서 돌을 제거하는 요관경하배석술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우선 20일에 관을 요관에 삽입하고 27일 시술을 하기로 일정을 잡았다. 시술을 위해서 26일부터 2박3일간 입원해야 한단다. 예전처럼 간단하지 않다. 뭔가 복잡하다.
20일,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요관에 관을 삽입하였다. 관 삽입 시술을 마친 후 절로 돌아온 시각은 대략 6시 정도. 이때부터 악몽같은 첫날 밤이 시작되었다. 거의 자지 못했다. 돌 때문에 아플 때와 같은 강도의 아픔과 소변 볼 때의 끔찍한 통증이 밤새 계속되었다. 어찌된 셈인지 조금의 소변도 참지 못해서 거의 한 시간마다 소변을 봐야만 했다. 소변을 볼 때면 그냥 피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너무 아프니까 피가 쏟아져 나와도 걱정할 겨를이 없었다. 그냥 있어도 아프고 소변을 보면 더 아팠다. 진통제를 먹어도 별 소용없었다. 둘째 날도 종일 통증과 시름하느라 밤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셋째 날, 피오줌은 여전하다. 하지만 통증은 덜하다. 둘째 날까지는 소변 보는 것이 고통스러워서 가능하면 수분 섭취를 최소화했다. 그러나 통증이 조금 가라앉는 듯하여 콩팥 속의 피를 씻어내자는 생각에 차를 많이 마시기 시작했다. 느낌인지 몰라도 피오줌의 검붉은 색도 조금은 옅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넷째 날, 오후부터 심심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유튜브를 찾아 보기 시작했다. 그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지난 며칠동안 유튜브를 일체 보지 않았다. 커피도 마시지 않았다. 나흘동안 방구석에만 있었는데 답답하거나 심심하다는 느낌은 전혀 없다. 참 신기하다. 오후 무렵, 지현이 찾아왔다. 몇 마디 말을 하긴 했지만 말하는 나의 시선은 혼자 독백이라도 하듯 시종 창밖을 향해 있었다. 말하고 나니 지친다. 이내 지현이를 돌려보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은 세상일에 관심이 없고 잠을 많이 잔다고 한다. 아픈 환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모든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를 고통과 싸우는데 쓰다 보면 달리 여유가 없다. 그래서 깨어 있는 동안은 고통과 싸우는데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고, 남는 시간은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 수면을 취하는 것이다.
관 삽입을 한 며칠동안 나의 일상은 잠시 정지되었다. 일에 대한 걱정도, 다른 이들과의 갈등도, 한여름의 뭉개구름을 감상하는 즐거움도, 일없이 유튜브를 쳐다보는 것도, 뭘 먹을까 하는 고민도 없었다. 매순간 나의 몸과 마음은 본능적으로 나를 짓누르는 고통을 향하고 있었다. 그 외 모든 것들은 나의 관심 밖이었다.
다시 돌아오기 시작하는 일상을 우두커니 바라본다. 부질없고 하잘 것 없는 일상을 지탱하기위해 허비하는 엄청난 나의 에너지를 생각한다. 짜증내고 심심해하고 기뻐하고 고민하고 걱정하고 사랑하고 미워하는데 쏟아붓은 그 많은 에너지들을 생각한다.
어리석게도 지금껏 나는 그렇게 살아온 일상에 너무나 익숙했다. 익숙한 나머지 일상의 세세한 면면을 직시하지 못했다. 다른 삶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수행조차 그런 일상의 일부였을 뿐이었다. 부처님은 일상에 쏟아붓는 이 에너지를 오롯하게 수행으로 돌렸다. 그리고 아픈 환자가 병마를 이기기 위해 고군분투하듯 번뇌를 뿌리뽑기 위해 목숨을 건 수행을 했다.
다시 돌아가는 일상은 아직 낯설다. 하지만 예전에도 그랬듯 일상에 완벽하게 적응할 것이다. 그리고 아팠던 시절의 그 고군분투와 치열했던 집중을 잊을 것이다. 대신 일상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며 괴로워하고 기뻐할 것이다.
이틀 뒤면 시술을 한다. 전신마취까지 한다고 하니 말만 시술이지 수술이나 진배없다. 회복하는 기간동안 통증이 만만찮을 것 같다. 다시 또 그 시간들을 견딜 것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답답하고 무겁다. 그러나 투병 기간 동안의 고군분투와 치열했던 집중을 이제는 잊지 않으려 한다. 시술이 잘 끝나면 예전과는 조금은 다른 삶을 살아야겠다.
20일,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요관에 관을 삽입하였다. 관 삽입 시술을 마친 후 절로 돌아온 시각은 대략 6시 정도. 이때부터 악몽같은 첫날 밤이 시작되었다. 거의 자지 못했다. 돌 때문에 아플 때와 같은 강도의 아픔과 소변 볼 때의 끔찍한 통증이 밤새 계속되었다. 어찌된 셈인지 조금의 소변도 참지 못해서 거의 한 시간마다 소변을 봐야만 했다. 소변을 볼 때면 그냥 피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너무 아프니까 피가 쏟아져 나와도 걱정할 겨를이 없었다. 그냥 있어도 아프고 소변을 보면 더 아팠다. 진통제를 먹어도 별 소용없었다. 둘째 날도 종일 통증과 시름하느라 밤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넷째 날, 오후부터 심심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유튜브를 찾아 보기 시작했다. 그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지난 며칠동안 유튜브를 일체 보지 않았다. 커피도 마시지 않았다. 나흘동안 방구석에만 있었는데 답답하거나 심심하다는 느낌은 전혀 없다. 참 신기하다. 오후 무렵, 지현이 찾아왔다. 몇 마디 말을 하긴 했지만 말하는 나의 시선은 혼자 독백이라도 하듯 시종 창밖을 향해 있었다. 말하고 나니 지친다. 이내 지현이를 돌려보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은 세상일에 관심이 없고 잠을 많이 잔다고 한다. 아픈 환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모든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를 고통과 싸우는데 쓰다 보면 달리 여유가 없다. 그래서 깨어 있는 동안은 고통과 싸우는데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고, 남는 시간은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 수면을 취하는 것이다.
관 삽입을 한 며칠동안 나의 일상은 잠시 정지되었다. 일에 대한 걱정도, 다른 이들과의 갈등도, 한여름의 뭉개구름을 감상하는 즐거움도, 일없이 유튜브를 쳐다보는 것도, 뭘 먹을까 하는 고민도 없었다. 매순간 나의 몸과 마음은 본능적으로 나를 짓누르는 고통을 향하고 있었다. 그 외 모든 것들은 나의 관심 밖이었다.
다시 돌아오기 시작하는 일상을 우두커니 바라본다. 부질없고 하잘 것 없는 일상을 지탱하기위해 허비하는 엄청난 나의 에너지를 생각한다. 짜증내고 심심해하고 기뻐하고 고민하고 걱정하고 사랑하고 미워하는데 쏟아붓은 그 많은 에너지들을 생각한다.
어리석게도 지금껏 나는 그렇게 살아온 일상에 너무나 익숙했다. 익숙한 나머지 일상의 세세한 면면을 직시하지 못했다. 다른 삶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수행조차 그런 일상의 일부였을 뿐이었다. 부처님은 일상에 쏟아붓는 이 에너지를 오롯하게 수행으로 돌렸다. 그리고 아픈 환자가 병마를 이기기 위해 고군분투하듯 번뇌를 뿌리뽑기 위해 목숨을 건 수행을 했다.
다시 돌아가는 일상은 아직 낯설다. 하지만 예전에도 그랬듯 일상에 완벽하게 적응할 것이다. 그리고 아팠던 시절의 그 고군분투와 치열했던 집중을 잊을 것이다. 대신 일상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며 괴로워하고 기뻐할 것이다.
이틀 뒤면 시술을 한다. 전신마취까지 한다고 하니 말만 시술이지 수술이나 진배없다. 회복하는 기간동안 통증이 만만찮을 것 같다. 다시 또 그 시간들을 견딜 것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답답하고 무겁다. 그러나 투병 기간 동안의 고군분투와 치열했던 집중을 이제는 잊지 않으려 한다. 시술이 잘 끝나면 예전과는 조금은 다른 삶을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