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발달장애인 위해 평생 헌신 천노엘 신부 선종
아일랜드 출신으로 1958년 호남과 인연…광주시 명예시민
‘그룹홈’·장애인 이용시설 ‘엠마우스복지관’ 국내 최초 개관
쌍촌동 광주대교구청 성당에 분향소…담양 천주교묘원 안장
‘그룹홈’·장애인 이용시설 ‘엠마우스복지관’ 국내 최초 개관
쌍촌동 광주대교구청 성당에 분향소…담양 천주교묘원 안장
![]() 엠마우스복지관에 다니는 장애인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천노엘(맨 오른쪽) 신부.(2006년) <광주일보 자료사진> |
“나를 용서해주시렵니까, 사회를 용서해 주시렵니까, 교회를 용서해주시렵니까.”
지난 1981년 열아홉살 여성 장애인을 교회 묘지에 묻으며 직접 쓴 묘비문은 천노엘 신부의 삶의 좌표가 됐다. 사목활동을 하던 시절 무등갱생원에서 맞닥뜨린 소녀의 죽음은 그가 평생 장애인을 위한 삶을 살겠다고 마음 먹은 계기가 됐다. 당시 병원은 연고자가 없는 그녀의 장례식을 치러줄테니 해부용으로 시신을 기증해 달라고 했고, 천 신부는 그 제안을 단호히 거절한 후 직접 장례를 치렀다. 이후 명절이면 묘소에 찾아가 벌초하고 그를 위해 항상 기도했다. 소녀는 지금은 담양천주교묘원 납골당에 잠들어 있다.
광주의 발달장애인들을 위해 평생 헌신한 ‘장애인의 대부’ 천노엘(O’Neill Patrick Noel) 신부가 1일 오전(한국시간) 고국 아일랜드에서 선종했다. 향년 93세.
지난해 병 치료 차 아일랜드로 돌아갔던 그는 장애인들을 항상 ‘친구’라고 부르며 아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그는 “우리 친구들을 사랑해 달라”는 메시지를 전했고, 오랫동안 장애인과 함께 했던 광주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다.
아일랜드의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선교사가 나병 환자촌에서 봉사하는 모습을 담은 영화를 보고 사제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아일랜드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소속으로 신부 서품을 받은 이듬해인 1957년 한국에 들어온 그는 1958년 장성 성당보좌신부로 호남과 첫 인연을 맺었고 이후 북동본당 등에서 주임신부로 사목했다.
천 신부는 사회적 약자의 자립과 재활을 도우며 공동으로 생활하는 ‘그룹홈’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개설했다. 1981년 월산동 주택가에 집을 얻어 장애인, 봉사자와 함께 생활하며 그는 보호와 교육을 통해 ‘친구들’이 지역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애썼다. 이후 그룹홈 운영 모델은 전국적으로 확산됐고, 장애인들의 자립에 큰 역할을 했다. 1985년에는 지적장애인·자폐성장애인의 복지를 위한 한국 최초의 이용시설 엠마우스복지관을 개관했으며 이후 ‘무지개공동회’를 설립, 발달장애인을 위한 종합적 복지체계를 구축했다. 현재 무지개공동회는 엠마우스산업 · 엠마우스보호작업장, 엠마우스어린이집 등 9개 기관을 운영중이다.
천 신부는 1991년에 광주 명예시민증을, 2016년에는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으며 소외된 이들을 위해 헌신한 공로로 포스코 청암상(2014)과 만해 한용운상(2019)을 수상했다.
“지난해 치료차 아일랜드로 떠나실 때는 아마도 다시 오실 수 있다고 생각하셨을 겁니다. 신부님은 장애인들과 직원들에게 정말 아버지 같은 분이셨습니다. 모두 한 가족이었죠. 유머가 풍부하셨고 특히 친구들과 장난도 자주 치시고 많은 사랑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지난달 아일랜드에서 천 신부를 만난 이춘범 엠마우스보호작업장 원장은 “신부님께서 ‘우리 친구들은 참고 또 참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지켜봐야 한다. 잘 보살펴달라’고 유언하셨다”며 “엠마우스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도록 노력해달라는 말도 덧붙이셨다”고 말했다.
천주교광주대교구는 2일부터 광주시 서구 쌍촌동 천주교광주대교구청 성당에서 미사를 진행하고 분향소를 운영중이다. 교구청은 아일랜드 현지에서 장례절차가 마무리 된 후 유족과 함께 유해 일부가 한국에 도착하면 장례미사 등 구체적인 장례 일정을 잡을 계획이다. 그의 유해는 담양천주교묘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지난 1981년 열아홉살 여성 장애인을 교회 묘지에 묻으며 직접 쓴 묘비문은 천노엘 신부의 삶의 좌표가 됐다. 사목활동을 하던 시절 무등갱생원에서 맞닥뜨린 소녀의 죽음은 그가 평생 장애인을 위한 삶을 살겠다고 마음 먹은 계기가 됐다. 당시 병원은 연고자가 없는 그녀의 장례식을 치러줄테니 해부용으로 시신을 기증해 달라고 했고, 천 신부는 그 제안을 단호히 거절한 후 직접 장례를 치렀다. 이후 명절이면 묘소에 찾아가 벌초하고 그를 위해 항상 기도했다. 소녀는 지금은 담양천주교묘원 납골당에 잠들어 있다.
지난해 병 치료 차 아일랜드로 돌아갔던 그는 장애인들을 항상 ‘친구’라고 부르며 아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그는 “우리 친구들을 사랑해 달라”는 메시지를 전했고, 오랫동안 장애인과 함께 했던 광주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다.
천 신부는 사회적 약자의 자립과 재활을 도우며 공동으로 생활하는 ‘그룹홈’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개설했다. 1981년 월산동 주택가에 집을 얻어 장애인, 봉사자와 함께 생활하며 그는 보호와 교육을 통해 ‘친구들’이 지역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애썼다. 이후 그룹홈 운영 모델은 전국적으로 확산됐고, 장애인들의 자립에 큰 역할을 했다. 1985년에는 지적장애인·자폐성장애인의 복지를 위한 한국 최초의 이용시설 엠마우스복지관을 개관했으며 이후 ‘무지개공동회’를 설립, 발달장애인을 위한 종합적 복지체계를 구축했다. 현재 무지개공동회는 엠마우스산업 · 엠마우스보호작업장, 엠마우스어린이집 등 9개 기관을 운영중이다.
천 신부는 1991년에 광주 명예시민증을, 2016년에는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으며 소외된 이들을 위해 헌신한 공로로 포스코 청암상(2014)과 만해 한용운상(2019)을 수상했다.
“지난해 치료차 아일랜드로 떠나실 때는 아마도 다시 오실 수 있다고 생각하셨을 겁니다. 신부님은 장애인들과 직원들에게 정말 아버지 같은 분이셨습니다. 모두 한 가족이었죠. 유머가 풍부하셨고 특히 친구들과 장난도 자주 치시고 많은 사랑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지난달 아일랜드에서 천 신부를 만난 이춘범 엠마우스보호작업장 원장은 “신부님께서 ‘우리 친구들은 참고 또 참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지켜봐야 한다. 잘 보살펴달라’고 유언하셨다”며 “엠마우스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도록 노력해달라는 말도 덧붙이셨다”고 말했다.
천주교광주대교구는 2일부터 광주시 서구 쌍촌동 천주교광주대교구청 성당에서 미사를 진행하고 분향소를 운영중이다. 교구청은 아일랜드 현지에서 장례절차가 마무리 된 후 유족과 함께 유해 일부가 한국에 도착하면 장례미사 등 구체적인 장례 일정을 잡을 계획이다. 그의 유해는 담양천주교묘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