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인생 스토리] 소년공 → 변방의 장수 → 대통령까지 ‘영화같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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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인생 스토리] 소년공 → 변방의 장수 → 대통령까지 ‘영화같은 삶’
1964년 안동 산골서 태어나 초등학교 졸업 후 성남서 소년공 생활
검정고시로 법대 장학생 입학 후 5·18 진실 마주하고 인생 대전환
성남시장 시절 행정 성과 대권 밑거름…대선 3번째 도전 끝에 당선
법으로 흉기로 계엄으로…수많은 생사의 고비 넘고 대통령에 당선
2025년 06월 04일(수) 06:30
1978년 경기도 성남시 대양실업에서 소년공으로 일했던 이재명 대통령.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통령의 ‘영화같은 인생’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정치 입문 과정에 5·18민주화운동의 영향이 컸고, 광주는 ‘사회적 어머니’라고 표현하는 이 대통령의 인생사를 바라보며 ‘고 김대중 대통령의 인생 역경’을 떠올리는 호남민도 많다.

이 대통령은 1964년 경북 안동군 예안면 두메산골에서 5남2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가난 탓에 한 지붕에 두 가족이 모여 살았고, 집안에는 변변한 화장실도 없어 동갑내기 친구와 들판에서 볼 일을 봐야 했다. 최근 펴낸 책에서 어린 시절을 기록한 대목의 첫 문장을 ‘나의 어린 시절은 참혹했다’고 쓸 정도로 이 대통령은 가난과 불우한 가정환경을 견뎌야 했다.

시계공장에서는 독한 약품을 다루다 후각을 잃었다. 2017년 대선 출마를 선언한 곳이 성남에 있는 그 시계공장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경기도 성남시 상대원동에 있던 동마고무 공장에서 소년공 생활을 시작한 이 대통령은 프레스에 왼쪽 팔을 다친다. 이 사고로 장해 등급 판정을 받고 군대를 면제받았다.

학업에 대한 열망을 놓지 않았던 그는 검정고시를 통해 고졸 자격을 얻었고, 1982년 학비 지원과 생활비 20만원까지 받고 중앙대 법학과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대학 시절 그는 자신의 삶을 바꿔놓은 ‘광주’를 경험하게 됐다.

이 대통령은 과거 광주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대학교에서 우연찮게 5·18 민주화운동의 실상이 담긴 영상과 책자를 봤고, 삶이 통째로 바뀌게 됐다”면서 “당시 언론 등을 통해 폭동으로 알려져 그렇게 믿었던 제 자신이 한 없이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또 “광주는 사회적으로 나를 낳고 키워낸 어머니”라고 강조했다.

1986년 중앙대 졸업식.
이번 대선 기간 광주·전남을 찾았던 이 대통령은 호남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특히 이 대통령은 호남의 신재생에너지가 생산지인 호남에서 저렴하게 쓰일 수 있는 방안 등을 강조했다. 호남이 단순한 재생에너지 생산지에서 벗어나 재생에너지 기반 산업단지를 활성화하는 등의 구체적인 공약도 제시했다.

그는 1986년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1988년 사법연수원(18기)을 수료한 뒤 변호사가 됐다. 연수원 시절 들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강의는 그를 노동 인권 변호사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고 회고한다.

‘성남시민모임’을 창립해 분당 백궁·정자지구 용도변경 특혜 의혹을 제기하는 등 시민운동을 이끌다 2005년 열린우리당에 입당해 본격적인 정치를 시작했다.

성남시민모임을 만들어 성남 공공의료원 설립 주민 발의 조례 등 지역 현안을 주로 다뤘다. 당시 성남시 인구 4분의 1에 달하는 20만명의 서명을 받아 주민 발의로 내놓은 성남의료원 설립 조례안이 당시 시의회에서 47초 만에 휴지 조각이 되는 걸 본 뒤 정치 참여를 결심했다.

이후 2006년 열린우리당에 입당해 성남시장 선거에 나섰지만 고배를 마셨고, 2007년 대선에서는 정동영 후보의 비서실 수석부실장을 맡았다. 2008년 18대 총선에선 성남 분당갑에 출마했지만 역시 떨어졌다. 2010년 성남시장 재도전에 서 처음으로 정치적 승리를 맛봤고, ‘성남시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며 주목받았다.

성남시장 이재명은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에 도전해 경선에서 21.2%를 득표하며 3위에 올랐다. 2018년 경기도지사에 당선된 뒤에는 계곡 불법 건축물 철거, 코로나19 당시 종교집회 전면금지 긴급명령 검토, 전국 최초의 재난기본소득 등 주목 받는 정책을 폈다.

이후 그는 2021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이낙연 전 총리를 누르고 본선에 진출하면서 두 번째 대권에 도전했다. ‘기본소득’ ‘기본주택’ ‘기본금융’ 등 이른바 ‘기본 시리즈’를 앞세워 정책 선명성을 강조했지만 윤석열 후보에게 역대 대선 최소 격차인 0.73%포인트 차이로 석패했다.

이 과정에 불거진 ‘이낙연과의 악연’은 21대 대선까지 이어졌다. 당시 이낙연 새미래민주당 상임고문의 최측근이 대장동특혜 의혹을 언론에 제보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사실상 ‘내부 총질’이 대선 본선에서도 악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왔다. 20대 대선에서도 대장동특혜 의혹은 이 대통령의 발목을 잡았고, 윤석열 전 대통령도 이 부분을 끈질기게 물고 넘어졌다.

2017년 이재명 성남시장이 1913 광주 송정역시장을 찾아 광주시민을 만나고 있다. <광주일보 자료사진>
이번 대선에서도 대장동특혜 의혹 관련 재판이 이 대통령을 가로막았던 가장 큰 걸림돌이 됐고, 대선 이후에도 여전히 불씨가 살아 있다는 점에서 이 대통령과 이 고문의 악연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도 이낙연 상임고문은 이 대통령의 앞길을 가로막고 나섰다. 대선 막판, 이 상임고문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 지지 선언을 하면서 호남과도 이 대통령에게서 등을 돌렸다.

대선 패배 이후 2022년 6·1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러진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원내 입성에 성공했고, 당대표 선거에서도 77.77%를 득표해 승리했다.

목숨을 위협받던 위기도 있었다. 지난해 1월 2일에는 부산 가덕도신공항 부지 방문 도중 목을 흉기에 찔리는 습격을 당했다. 동맥 손상을 피해 목숨을 건진 뒤 이끈 총선에서 야권의 압승을 견인하며 대권주자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다졌다.

정치 테러 속에서 같은 해 4월 치른 22대 총선에서는 172석을 확보했다. 이어 8월에 진행된 당대표 선거에서는 85.4%라는 압도적 지지로 재선되며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24년 만의 당대표 연임이었다.

이 대통령은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고 있다. 앞서 공직선거법 1심에서 징역 1년·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으나 이후 전부 무죄를 받으며 대선 전 사법리스크도 일부 털어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변호사 시절이던 1990년 셋째 형수의 소개로 숙명여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부인 김혜경 여사를 만나 결혼해 슬하에 두 아들을 뒀다.

/특별취재단=오광록 기자 kroh@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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