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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날레 옆 미술관 - 박진현 문화·예향국장, 선임기자
2023년 05월 16일(화) 22:00
‘에드워드 호퍼’ ‘조선의 백자…’ 그리고 ‘무라카미 다카시’. 얼핏 보면 이질적인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요즘 국내 미술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블록버스터전이라는 것이다. 주로 백화점에서만 볼 수 있는 ‘오픈 런’이 등장할 만큼 ‘핫’하다.

시발지는 부산시립미술관이었다. 지난 1월 개막한 일본 팝 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전은 전국에서 밀려드는 관람객들로 3월 7일까지였던 전시 기간을 한 달 더 연장했다. 서울도 아닌 부산에서 열리는 전시이지만 3개월간 누적 관람객 14만 6180명을 동원했다. ‘무라카미 다카시’전이 끝나자 이번에는 서울시립미술관으로 미술 애호가들이 몰려들었다. 지난달 20일 국내 최초로 선보인 미국 화가 ‘에드워드 호퍼-길 위에서’전(4월 20~8월 20일)이었다.



올 봄 미술계 달군 ‘에드워드 호퍼’

사실, 이번 호퍼전은 과거 전시 대행사와 연계해 ‘장소’(미술관)만 빌려주던 서울시립미술관과는 다른 모습이다. 지난 2019년부터 미국에서 가장 많은 호퍼 작품과 아카이브를 소장하고 있는 휘트니미술관과 기획 단계부터 협의를 거쳐 완성도 높은 전시를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지난달 7일 막이 오른 광주비엔날레가 ‘묻힐’ 만큼 트위터에는 #에드워드 호퍼 #서울시립미술관 #사전 예약 등의 해시태그가 점령하고 있다. 1만 7000원(성인 기준)의 유료 관람에도 사전 예매 티켓만 13만 매가 판매되고 지난 14일까지 8만여 명이 다녀갔다.

이달 초 취재차 방문한 미술관 앞은 길게 늘어선 입장 행렬로 인기몰이를 체감할 수 있었다. 전시장의 혼잡을 피하기 위해 30분 단위로 나눠 매회 300명(사전 예매 250명, 현장 판매 50명)으로 제한하고 있지만 미술관 앞은 인증 샷을 찍는 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삭막한 도시와 현대인들의 고독을 그린 호퍼의 작품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좀처럼 국내에서 보기 힘든 기회이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19로 꽉 막혀 있던 문화 향유에 대한 갈망이 터진 탓인지 전시장은 다양한 계층의 관람객들로 뜨거웠다. 인상적인 건, 입장객 가운데 캐리어를 끌고 온 원정 관람객이 눈에 많이 띈다는 점이다. 이들은 에드워드 호퍼전 뿐만 아니라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열리고 있는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 ’, 이탈리아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라’전도 둘러보기 위해 1박 2일 코스로 서울을 찾은 것이다.

며칠 전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라는 주제로 열리고 있는 광주비엔날레(4월7~7월9일)를 찾았다. 개막한 지 한 달이 넘은 비엔날레 전시관은 평일이어서인지 일반 관람객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나마 전시장의 적막을 깨우는 건 유치원과 중·고등학생 단체 관람객들이었다. 순간, 관람객들로 넘쳐나는 ‘서울의 풍경’이 떠올라 씁쓸했다.

전시장을 빠져 나와 비엔날레와 이웃해 있는 광주시립미술관이 자리한 중외공원쪽으로 향했다. 신록이 우거진 공원 곳곳에는 비엔날레 관람을 마친 듯한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숨을 고르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립미술관으로 들어가는 이들이 많지 않아 비엔날레 축제를 느끼기 힘들 만큼 한산했다.



‘비엔날레’ 겨냥한 블록버스터전 없나

물론 시립미술관은 광주비엔날레를 기념해 네덜란드 파빌리온 프로젝트인 ‘세대간 기후 범죄 재판소: 멸종 전쟁’과 5월 항쟁을 조명한 ‘김호석: 검은 먹, 한 점’이 열리고 있다. 하지만 지역민은 물론 타 지역이나 외국 관람객들의 발길을 끌어들이는 데 한계를 보이고 있다. 특히 파빌리온 프로젝트는 비엔날레의 출품작들과 ‘결’이 비슷해 다양한 볼거리를 기대하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시립미술관이 비엔날레 관람객을 겨냥해 광주에서만 볼 수 있는 블록버스터전을 기획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부분이다. 비엔날레의 난해한 현대 미술과 시립미술관의 대중성 높은 작품이 동시에 열린 다면 관람객들을 축제의 열기 속으로 불러들이는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외 유명 미술관들이 도시의 메카 축제에 맞춰 흡인력 있는 대규모 기획전을 개최하는 건 바로 그런 이유다.

17일로 광주비엔날레가 개막한 지 40일을 맞았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좀처럼 축제 열기가 살아나지 않아 ‘집안 잔치’로 끝나는 건 아닌지 하는 섣부른 예상도 나오고 있다. 문제는 비엔날레의 흥행이 단지 비엔날레만의 몫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술 여행 도시’를 지향하는 광주가 비엔날레를 축으로 도시의 미래를 바꾸기 위해서는 ‘비엔날레 옆 시립미술관’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내년은 광주비엔날레가 창설된 지 30주년이 되는 해다. 이제는 비엔날레와 연계한 예술관광의 큰 틀에서 서로가 윈윈할 수 있는 전략을 짜야 할 때다. 신생 미술관인 전남도립미술관은 지난해 ‘2022년 전남 방문의 해’를 기념해 루오재단, 파리 퐁피두센터와 공동 기획한 ‘조르주 루오’전으로 전국구 미술관으로 부상했다. 개관 31주년을 맞은 시립미술관이 분발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년에는 창설 30주년 기념 비엔날레에 걸맞은 경쟁력 있는 기획전으로 시립미술관의 존재감을 보여 줘야 한다. 비엔날레 기간에 되레 ‘개점 휴업’인 미술관은 민망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