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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에 달라진 풍속도…“벌초, 맡기는게 편해요”
[벌초 대행 서비스 따라가 보니]
고령화에 농촌 풍속 달라지고
코로나 여파 고향 방문도 자제
친척과도 서먹해져 부탁 어려워
농협·산림조합 대행 문의 급증
2021년 09월 12일(일) 21:00
추석명절을 앞둔 지난 11일 오전 장성군 남면 삼태리 한 야산에서 장성 황룡농협의 벌초대행단이 벌초작업을 하고있다.
추석을 앞둔 11일 오전 장성군 남면 삼태리 야산은 예초기 소리로 시끄러웠다.

장성군 황룡농협의 벌초대행단은 이날 잡초로 뒤덮인 야산 입구에 주차한 뒤 예초기·송풍기·갈퀴 등을 동원해 진입로부터 풀을 베며 앞으로 나아갔다.

묘 앞에 놓인 비석으로 확인해야 할 정도로, 사람 키 높이까지 웃자란 잡초로 뒤덮인 봉분이 대부분이었다.

묘 주변으로 가시가 돋아 있는 찔레나무가 무성한 경우도 많고 벌들도 자주 나와 쉽지 않다. 소음과 진동이 심한 예초기를 다루다가 자칫 쇳날에 돌이 닿는 경우 얼굴로 튀면 큰 부상을 입기도 한다. 이날도 작업 내내 자그마한 돌들이 튀어올랐다.

대행단 작업인부 8명은 두 팀으로 나눠 작업에 들어갔다. 장마와 무더위로 어른 허리 높이만큼 자란 풀을 깎은 지 20여분이 지나면서 봉분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벌초가 마무리됐다. 이날 이들 8명은 오전에만 12기의 벌초를 했다.

추석을 일주일여 앞두고 조상 묘 벌초를 농협·산림조합 등 대행업체에 맡기는 ‘벌초대행’이 크게 늘었다. 고령화와 젊은층의 탈 농촌화, 인구감소, 코로나 등이 맞물리면서 급증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어린 시절 기억을 공유했던 사람들이 농촌을 떠나면서 만날 사람이 없다보니 고향을 찾는 대신 조상 묘 벌초를 맡기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나마 평소 벌초를 맡기곤 했던 친척들도 더이상 농촌에 살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고 젊은층은 더더욱 찾기 힘들다보니 벌초 대행 문의도 급증하고 있다는 게 농협·산림조합측 설명이다. 코로나로 고향 방문이 쉽지 않고 방역 지침상 네 사람 이상이 모이기 어려운 점도 영향을 미쳤다.

12일 산림조합중앙회 광주전남지역본부에 따르면 광주·전남지역 벌초대행 건수는 2019년 6062건→2020년 7938건→2021년 8월까지 8377건으로 증가하고 있다. 올 추석을 앞두고 조합(광주 1곳·전남 21곳) 1곳 당 대행한 벌초 건수는 평균 380건이 넘는다.

벌초대행단 작업단원들은 “맡길 사람이 없는 게 벌초대행이 늘어난 가장 큰 이유”라고 한 목소리를 냈다.

명절 앞두고 부모님이나 조상 묘 벌초를 하지 못할 경우 고향에 사는 친척들, 또래 고향 친구들한테 부탁해 처리했던 게 더이상 불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전남의 경우 지난 1970년 393만명에 달했던 인구는 지난달 기준 183만명으로 급감했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전남 인구의 24.0%(44만1000여명)로 전국에서 가장 높다. 고흥의 경우 전체 인구 6만3124명 중 41.9%(2만6421명)가 65세 이상 노인이다.

고령화로 노인들만 있는 고향에 조상 묘 벌초를 맡길 수 있겠냐는 얘기다. 이날 벌초대행단이 돌아다닌 장성군도 전체 인구 4만3715명 중 30.9%인 1만3503명이 65세 이상 노인이다.

한 작업단원은 “고향에 살던 친척들은 나이가 들어 벌초를 부탁하기 어렵고 또래 친구들은 농촌을 떠나 살다보니 맡길 사람이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땅·집을 모두 처분해 버린 도시인들이 많아 고향 땅을 빌려준 임대인에게 벌초를 맡기는 일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고향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해진 것도 한 원인으로 꼽힌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는 고향에 아는 사람도 많지 않아 찾는 게 서먹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벌초대행 작업단원은 “요즘 젊은 세대들은 대부분 도시에서 태어나 농촌에 살아본 경험이 없다보니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사실상 부모님과 함께 찾았던 고향에 대한 의미가 퇴색될 수 밖에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코로나도 영향을 미쳤다. 예전엔 명절을 앞두고 가족들끼리 날짜를 정해 벌초를 했지만 요즘엔 코로나로 4명 이상 벌초를 위해 모이는 일이 힘들어졌다.

농협은 이같은 명절 분위기를 반영, 지난 1994년부터 고향을 찾을 수 없는 출향민들을 대상으로 했던 벌초 대행 서비스를 올해부터 ‘NH농협 벌초대행’ 어플로 만들어 제공하고 있다. 벌초대행 비용은 1기당 8만원이 기본 요금. 하지만 차가 들어갈 수 없는 산 속인 경우 묘지 위치, 면적, 작업내용 등에 따라 추가로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이날 벌초대행을 한 김재신씨는 “고령화, 인구 감소 등으로 벌초에 대한 생각도 많이 달라졌지만 조상 묘를 돌봐야 한다는 생각이 중요한 것”이라며 “같은 고향 사람, 내 조상 묘를 돌본다는 생각으로 벌초대행을 맡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