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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광주 장동 ‘타인의 책-지음책방’
요리·번역하는 책방…별걸 다하는 책방
2020년 08월 26일(수) 05:00
50년 된 주택을 개조한 ‘지음책방’.
책방에서 만날 수 있는 책들은 대부분 판매하지 않는 소장용이다.
책만 파는 서점은 잊어라, 지역 곳곳에서 책을 매개로 문화공간의 역할을 톡톡히 하는 서점이 늘어나고 있다. 그중 한 곳이 광주시 동구 장동에 위치해 있다. 작은 공방과 카페가 눈에 띄는 한적한 거리에 외관부터 독특한 분위기를 내는 작은 건물이 눈에 띈다. 가게로 들어가려고 하니 문고리에 성소수자를 뜻하는 무지개색 끈이 매달아져 있다. 어떤 공간일지 입구에서부터 궁금해지는 곳, ‘타인의 책-지음책방’이다.

‘지음책방’은 주인장이 직접 요리하는 음식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지음책방은 부부(남편은 ‘사나긴’, 아내는 ‘별공’으로 불린다)가 함께 운영하고 있다. 책과 함께 음식과 빈티지 그릇을 판매하고 다양한 문화프로그램들도 진행되고 있다. 책방지기인 나도 서점을 운영하기 전에 핸드드립 커피 한 잔을 하기 위해 왔었고, 지금은 지인들과 종종 별공의 음식을 먹기 위해 온다. (광주의 명소, 맛집을 소개해달라는 지인들에게 추천하는 곳이다.)

지음책방은 입구에서부터 공간의 재미가 크다. 책방에 들어서면 다른 세상에 발을 들여놓은 듯한 기분이 든다. 50년의 역사를 가진 주택 구조도 한 몫 할 텐데, 조금씩 손을 봐서인지 어디 가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구조가 흥미를 끈다. 부부는 책, 빈티지 그릇, 가구 등의 작은 것들의 집합으로 공간을 재미나게 풀어가고 있다.

가장 넒은 ‘타인의 취향 홀’, 별공이 모은 빈티지 제품이 모여 있는 별공방, 창가에 좌식 테이블이 놓여 소수 인원이 토론에 집중할 수 있는 사나긴방, 계단을 내려가면 언더그린방이 있다. 특히 곳곳에 서가가 있는데 부부의 관심도를 알 수 있는 7000여권의 책이 꽂혀있다. 이 집은 직선이 하나도 없이 곡선으로 되어 있다. 책방을 벗어나기만 하면 경쟁 사회, 빨리빨리 사회인데 이 책방에서만은 천천히 공존하는 별세계가 펼쳐지면 좋겠다고 한다.

지음책방은 2018년 7월에 오픈해서 ‘요리하는 책방’ , ‘번역하는 책방’, ‘별걸 다 하는 책방’ 이라는 콘셉트로 운영하고 있다. 먼저는 책이다. 다양한 요소로 문화공간의 역할을 하는 이곳에서 지향점은 책방으로서의 기능을 놓지 않는 것이다. 종이책이 가지고 있는 따뜻함을 유지하고 싶은 지음에서는 다른 책방과 달리 많은 책을 판매하지는 않는다. 서가에 꽂혀있는 책은 개인 소장으로 누구나 이곳에서 차와 음식과 함께 읽을 수 있다.

판매하는 책은 그 해의 사회 이슈 주제로 함께 읽고 사유의 성장을 돕고자 하는 책들이다. 한 해의 주제를 정하고 그 주제에 맞는 책을 골라 10권 이내로만 소개한다. 2018년은 ‘페미니즘’, 2019년은 ‘동물권’, 2020년은 ‘혐오와 차별’이다. 주인장에게 사회 이슈를 공부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책이었고, 장기적으로 공부를 하면 좋겠기에 주인장이 공부하고 싶은 주제로 정했다. 주제를 두고 책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건, 여기 오시는 분들에게 드리는 제안이기도 한데, 책으로 “이런 견해도, 이런 의견도 있어요” 알리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한다. 많은 책들을 들이고 싶기도 하지만, 색깔을 잃지 않고, 작은 출판사라 알려지지 않은 책들, 정말 좋은 책이지만 홍보가 잘 안되는 책들을 소개하고 있다. 책방을 찾아오시는 분들도 같이 성장하고 싶다고 한다.

동물권, 페미니즘, 혐오와 차별을 공부하면서 이 공간에서는 누구도 차별받지 않았으면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끈을 입구에 걸었다. 못 보시는 분들은 지나치지만 아시는 분들은 안다. 동물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한 아이가 큰 동물을 데리고 들어왔다가 다른 테이블에 있는 어른 손님에게 혼이 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주인이 그 자리에 없을 때였다. 아이한테 너무 미안했다. 이 공간은 동물하고도 같이 있을 수 공간이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마당이 있는 식당에서 마당에 반려동물을 두고 간식도 주면서 놓을 수 있는 공간을 꿈꾼다.

지음책방의 또 하나의 특색은 ‘요리하는 책방’이다. 음식을 만드는 이는 별공이다. 누가 먹어도 탈 나지 않는 음식, 배가 아프지 않은 음식을 만드는 것, 별공의 철학이다. 한식으로도 서양식으로도 먹을 수 있는 메뉴들은 건강과 맛을 보장한다. 특히나 공장식 축산업의 충격에 채식을 하던 때, 밖에서 육식이 아닌 음식을 먹기 힘든 걸 알기에 그때의 경험으로 비건 지향인 손님들도 편히 메뉴를 이야기하며 먹을 수 있다. 직장인이었다고 하는 별공은 어떻게 요리를 시작하게 되었을까? 6년을 넘게 참여한 독서모임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지음책방 초기에 집에서 모임을 하지 않고 책방에서 하다 보니 음식을 차리게 되면서 함께한 이들의 비용을 받아서 한 게 시작이 됐다. 그리고 별공은 이후 이탈리아에서 요리 공부를 하고 현지에서 음식을 팔아보고 싶은 목표를 가지고 있다.

책방에서 음식을 파는 건 어떤 걸까? 지음책방은 요리하는 책방을 꿈꾼다. 문학작품 속의 요리를 같이 만들고 먹으면서 그 문학작품을 이야기해볼 수 있는 책방이다. 어떤 문학작품이든 요리 한두 가지는 나온다. 고전 문학인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에서도 월별로 요리가 나오는데 음식이라는 것이 그 나라의 문화를 총체적으로 함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문화를 제대로 이야기하기 위한 도구 중에 하나가 요리라고 할 수 있다. 광주의 오월에 주먹밥을 만드는 것을 시도해봤고 앞으로도 낯선 요리들을 점차적으로 해보고 싶다.

인터뷰를 하는 시간 동안 별공과 사나긴의 주고 받는 말들이 듣는 이를 기분 좋게 한다. 장난스레 던지는 말들도 있고, 함께 미래를 꿈꾸는 말들도 있다. 직선이 없고 곡선만 있는 곳, 천천히 둘러볼 수밖에 없는 주인들의 공간들은 그들의 삶과 닮아 있는 것 같다. 사나긴은 책방을 운영하면서 책이 사회에 주는 선한 영향력을 알게 된다고 한다. 사나긴 역시 직장에서 퇴사를 하고 내가 제일 잘 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찾은 것이 책이었다. 책방 운영으로 지속성을 갖는 미래가 답답하기도 하지만. 책을 매개로 지음에서는 많은 시도를 해왔고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고민 속에서 답을 찾을 거라는 확신이 있다는 사나긴의 말이 뭉클하다.

이런 멋진 책방 주인장들을 만나러 장동의 지음책방으로 가자. 무지개 끈이 달려 있는 유리 문을 밀고 들어가면 바깥과는 다른 풍경을 만나게 된다. 그곳에서 천천히 시간을 보내보자. 물론 나오는 길에는 지음책방의 올해의 주제인 ‘혐오와 차별’로 선정한 책 한 권 사서 나오는 건 잊지 말고.

/윤샛별 러브앤프리 주인장



▲나의 가해자들에게<씨리얼 지음>

왕따였던 어른들이 모여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며 우리사회의 현재 모습을 진단한다.



▲말이 칼이 될 때<홍성수 지음>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하고 자행되는 혐오표현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가능한 책.



▲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지음>

표현의 자유와 혐오차별 표현의 접점을 우리사회가 고민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책.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