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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광주 수완지구 ‘숨’
커피보다 책 한권… ‘극책파’ 여기 계시네
2020년 08월 12일(수) 00:00
“자고로 서점은 책으로 승부해야지”

한때는 그랬다, 오로지 책만 팔아서 서점을 유지하겠다고. 책과생활을 처음 문 열었을 때, 서점과 카페를 겸해야 버틸 수 있을 거라는 주변의 권유가 있기는 했다. 수긍이 가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8평 남짓한 공간에서 일정량의 도서 종수(1000~2000종)를 유지하면서 카페까지 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카페를 포기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 이후로 나는 책 판매로만 승부하는‘극책파’가 되었고, 서점은 책으로만 경제성을 획득해야 한다는 서점 근본주의자를 자처했다.

극책파의 정신 승리는 3년이면 충분했다. ‘3년간 그렇게 했으면 할 만큼 한 거야….’ 나의 사상 전향은 3년이라는 단단한 수학적 논리(뭐라고?)를 근거로 손쉽게 이뤄졌다. 책과생활은 이제 커피도 파는 서점이 되려는 중이고, 광주에서 내게 가장 의지가 되어주는 서점이자 카페를 겸업하는 ‘동네책방 숨’을 찾아갔다.

동네책방 숨은 광주 수완지구에서도 대표적인 먹자골목에 있다. 2010년, ‘북카페 숨’으로 시작했을 때만 해도 주변에 상권이 형성되지 않아 동네가 조용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번화하다. 12번 버스를 타고 은빛마을 정류장에 내려서 번듯번듯한 빌딩에 입점한 수많은 음식점과 주점을 지날 때만 하더라도 서점이 여느 신도시의 상가에 네모지게 들어서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차량정비소가 있는 모퉁이를 돌면 교외의 전원주택을 떠올리게 하는 이층집이 나타나는데, 이곳이 동네책방 숨이다.

도심 속에 숨어 있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곳. 서점으로 들어서면 카페 바가 맞이하고 양옆으로 서가가 펼쳐져 있다. 바를 마주 보고 왼쪽에는 그림책 서가가 있다. 성인을 위한 그림책을 별도의 코너로 두었는데, 로맹 베르나르의 ‘우리의 모든 날들’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이 그림책에 그려진 집이 꼭 이 서점을 닮았는데, 집과 동네가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이 섬세하고 따뜻하게 표현되어 있다.

바 오른쪽에는 9단 목재 서가에 주제별로 책이 진열돼 있다. ‘예술+놀이+배움+삶-교육’, ‘마을+공동체’, ‘전국 방방곡곡 지역 이야기’, ‘협동조합·경영’,‘ 다르게 보기-소비·자본·경제’, ‘한국사회 들여다보기’, ‘여성’, ‘초록별 지구를 위해’…. 칸마다 붙어 있는 꼬리표 위에 놓인 책들은 주제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누군가 서점이 무어냐 묻는다면, 무수한 생각들을 시각화하는 곳이라고 답해도 멋지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9단 목재 서가 앞에는 탁자, 책상, 의자, 소형 피아노 들이 있다. 벽에는 작은 선반들이 군데군데 붙어 있다. 거의 모든 집물들 위에 책들이 놓여 있다. 서점 주인의 마음을 건드린 책들이 주제별로 각자의 자리에 뭉쳐 있다. 대체로 이 집물들 위에는 꼬리표가 달려 있지 않은데 책들이 ‘뭉친 힘’이란 게 있다. 남의 서점에 와서 서점과 서가 배치의 의미 따위를 떠올리던 중, 문득 갸우뚱해져 서점 안을 다시 훑어본다. 저 탁자와 의자는 분명 카페용으로 쓰여야 이 서점의 경제생활을 떠받칠 수 있을 것인데…. 그러고 보니 카페용 테이블은 그림책 서가 쪽에 6인용 하나뿐이다. 카페를 시작하기로 마음먹고 난 뒤, 테이블당 예상 매출이 어떻고 기대수익이 저떻고 하면서 산수 놀이를 하고 있던 나는, 카페 컨설턴트인양 따져 물었다.

“카페 공간보다 서점 공간이 더 넓은 거 같아요. 아니, 이건 다 서점이잖아요. 저는 서가를 줄이고 카페를 넓히려고 하고 있는데, 대체 어찌 된 영문인가요?”

동네책방 숨의 대표이자 서점인으로서 나의 롤모델, 이진숙씨의 대답은 간명했다. 북카페에서 서점으로 업종을 바꾸면서 카페의 기능을 점차 줄여나갔다는 것이다. 커피 한 잔을 더 파는 것보다는 책을 매개로 한 경험을 공유하는 장소로 탈바꿈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는 것이다. 과거엔 카페의 테이블들이 놓여 있던 바의 오른쪽 공간은 그동안 동네책방 숨이 동네 사람들과 책을 매개로 ‘경험을 공유’했던 시간이 쌓이면서 점차 책이 놓이는 자리로 바뀌었다. 그 자리의 이런저런 주제가 적힌 꼬리표들이, 세월호를, 오월을, 공동체를 이야기하는 서가들이 조용히 그 시간을 말해준다.

카페를 겸한 서점을 하고자 카페 ‘경영’에 대해 상세히 묻고 싶었던 나의 방문 목적은 실패했다. 묻고 싶었던 질문들을 모두 삼키고 책과 서점과 우리의 앞날에 대해 대화하는 시간이 장시간 이어졌다. 위기에 빠진 도서정가제, 도시 서점의 지속 가능성, 그리고 종이책이라는 미디어와 이를 둘러싼 경제 공동체의 운명….

결론을 내지는 못했으나 무엇을 겸해서 하든 서점이라면, 책을 중심에 두어야만 한다는 것. 극책파까지는 아니지만, 서점인으로서 품위를 몸소 보여주는 이진숙 님을 뵙고 나는 사상의 완전한 전향을 잠시 보류해두기로 했다.

그러고 나서 돌아오는 길. 다음 카카오 지도를 보면, 동네책방 숨이 아직도 ‘북카페 숨’으로 나온다. 나는 카카오 지도에 제보를 했다. “북카페 숨은 동네책방 숨으로 바뀌었습니다. 고쳐주세요!”

<신헌창 책과생활 주인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숨'이 추천합니다>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거창한 사명 혹은 당위에 휘둘리지 않고 태어난 대로 본래의 내가 살고자 하는 대로 살고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서점 주인에게 일종의 길잡이 역할을 해주는 책으로 언제나 추천 1순위라고 한다. <파커 J. 파머 지음>

▲야생의 위로

최근 환경과 생태에 관심을 더 가지게 되면서 눈에 들어온 책이다. 저자는 박물학자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이다. 반평생 우울증에 시달린 저자가 자연에서 위안을 얻은 1년간의 기록을 담은 책인데, 서점 주인은 일반적인 자연 예찬론을 펼치지 않는다는 점을 이 책의 매력으로 꼽는다. <에마 미첼 지음>

▲이토록 고고한 연예

연암 박지원의 ‘광문자전’의 주인공 ‘광문’의 다른 이름인 ‘달문’을 통해 휴머니즘을 이야기하는 소설. 조선 최고의 연예인 달문은 자신의 재주로 재물을 탐하지 않고 오로지 어려운 이들 곁에서 함께 살았다. 이진숙 대표는 인물을 통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지향점을 발견했다고 한다.<김탁환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