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와 반성의 계절
![]() 홍 행 기 정치부장·편집 부국장 |
요즘 정치인이나 기업인은 물론 유명 ‘셀럽’(연예계나 스포츠 분야 등에서 인지도가 높은 인사)들까지, 이른바 ‘오피니언 리더’로 불리는 이들의 사과와 반성이 이어지고 있다. 지지자와 팬들의 환호에 기대어 ‘속마음’을 슬쩍 드러냈다가 순식간에 언론의 십자포화를 맞고 처절한 반성문을 써내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러니 당·정·청의 핵심 인사들도 국가 주요 정책에 대한 여론의 지적에 그 어느 때보다 민감해진 듯하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최근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특히 정 총리는 “피해자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박 전 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전직 여비서를 ‘피해 호소인’이 아닌 ‘피해자’라고 호칭했다. 앞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피해 호소인이 겪는 고통에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다시 한 번 통렬한 사과를 드린다”고 밝혔다가 ‘호칭에 문제가 있다’는 여론의 질타를 받은 데 따른 것이다.
고개 숙인 유명 인사들
요즘 여권의 ‘대세’로 통하는 이낙연 의원의 경우 지난 5월 이천 물류창고 화재 현장에서 ‘도대체 대책이 무엇이냐’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는 유족들에게 “제가 현재 책임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고 말했다가 여론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그런 뒤 곧바로 “비판을 아프게 받아들인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지난 5월 경영권 승계와 노조 문제 등과 관련해 직접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허리를 굽혔다. 이 부회장은 “삼성이 글로벌 1위 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법과 윤리를 엄격하게 지키지 못했다”고 반성하고 “모든 것은 저의 잘못”이라고 사과했다. 한 발짝 더 나아가 “이젠 경영권 승계 문제로 더 이상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특히 자신의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예능계 역시 예외가 아니다. ‘예능 대세’ 이효리는 이달 초 ‘취중 노래방 라이브 방송’을 진행해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코로나19 재확산이 우려되는데도 노래방에서 술기운에 라이브 방송을 했다는 이유에서다. 일부 누리꾼의 지적으로 이슈가 되자 이효리는 이튿날 SNS에 “어젯밤 아직 조심해야 하는 시국에 맞지 않은 행동을 한 점 깊이 반성한다. 요새 내가 너무 들떠서 생각이 깊지 못했다”고 공개 사과했다.
잘못된 일이 있다면 인정하고 머리 숙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하지만 최근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사과와 반성은 과거에 비해 한층 빨라지고 구체적이며 세련된 느낌이다. 이제는 사과를 하는 데 있어서 ‘시기’와 ‘내용’이나 ‘수준’을 결정해 주는 ‘매뉴얼’이 존재한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사과와 반성의 대상이 거의 모든 사회적 현안과 의제에 걸쳐 있을 만큼 광범위해진 것도 새로운 특징이다.
사회적 합의의 중요한 과정
사과와 반성은 요구하는 측에도, 머리 숙여야 하는 측에도,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몸과 마음에 뜻밖의 상처를 입었기에 힘들고, 머리 숙여 반성하고 이해를 구하며 피해를 복구해야 하기에 어렵다. 용서하는 것 자체가 힘든 과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사과와 반성이 봇물을 이룬다는 것은, 사회적 소통이 그만큼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 사과를 요구하고 반성하며 이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통의 신념 체계와 가치관을 만들어 가는 ‘사회적 합의’의 중요한 과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사과와 반성의 상호작용을 통해 지금 우리 사회에서 무슨 생각이나 행동이 환영을 받는지 그리고 어떤 생각과 행동이 거부되는지가 결정되고 이를 우리 모두 알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다. 한 시대의 사회에 널리 퍼져 그 시대를 지배하거나 특징짓는 정신, 이른바 시대정신(Zeitgeist, 時代精神)이 형성되는 과정인 셈이다.
며칠 전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 개원 연설에서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규범이 필요하다’고 밝힌 것처럼, 코로나19 사태로 새로운 사회·경제·문화적 구조 형성이 요구되는 지금, 우리 사회가 새로운 가치관과 규범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지금 한국 사회에 다가온 ‘사과와 반성의 계절’이 우리의 미래를 풍요롭게 만드는 데 보다 긍정적인 역할을 해내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요즘 여권의 ‘대세’로 통하는 이낙연 의원의 경우 지난 5월 이천 물류창고 화재 현장에서 ‘도대체 대책이 무엇이냐’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는 유족들에게 “제가 현재 책임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고 말했다가 여론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그런 뒤 곧바로 “비판을 아프게 받아들인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지난 5월 경영권 승계와 노조 문제 등과 관련해 직접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허리를 굽혔다. 이 부회장은 “삼성이 글로벌 1위 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법과 윤리를 엄격하게 지키지 못했다”고 반성하고 “모든 것은 저의 잘못”이라고 사과했다. 한 발짝 더 나아가 “이젠 경영권 승계 문제로 더 이상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특히 자신의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예능계 역시 예외가 아니다. ‘예능 대세’ 이효리는 이달 초 ‘취중 노래방 라이브 방송’을 진행해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코로나19 재확산이 우려되는데도 노래방에서 술기운에 라이브 방송을 했다는 이유에서다. 일부 누리꾼의 지적으로 이슈가 되자 이효리는 이튿날 SNS에 “어젯밤 아직 조심해야 하는 시국에 맞지 않은 행동을 한 점 깊이 반성한다. 요새 내가 너무 들떠서 생각이 깊지 못했다”고 공개 사과했다.
잘못된 일이 있다면 인정하고 머리 숙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하지만 최근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사과와 반성은 과거에 비해 한층 빨라지고 구체적이며 세련된 느낌이다. 이제는 사과를 하는 데 있어서 ‘시기’와 ‘내용’이나 ‘수준’을 결정해 주는 ‘매뉴얼’이 존재한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사과와 반성의 대상이 거의 모든 사회적 현안과 의제에 걸쳐 있을 만큼 광범위해진 것도 새로운 특징이다.
사회적 합의의 중요한 과정
사과와 반성은 요구하는 측에도, 머리 숙여야 하는 측에도,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몸과 마음에 뜻밖의 상처를 입었기에 힘들고, 머리 숙여 반성하고 이해를 구하며 피해를 복구해야 하기에 어렵다. 용서하는 것 자체가 힘든 과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사과와 반성이 봇물을 이룬다는 것은, 사회적 소통이 그만큼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 사과를 요구하고 반성하며 이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통의 신념 체계와 가치관을 만들어 가는 ‘사회적 합의’의 중요한 과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사과와 반성의 상호작용을 통해 지금 우리 사회에서 무슨 생각이나 행동이 환영을 받는지 그리고 어떤 생각과 행동이 거부되는지가 결정되고 이를 우리 모두 알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다. 한 시대의 사회에 널리 퍼져 그 시대를 지배하거나 특징짓는 정신, 이른바 시대정신(Zeitgeist, 時代精神)이 형성되는 과정인 셈이다.
며칠 전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 개원 연설에서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규범이 필요하다’고 밝힌 것처럼, 코로나19 사태로 새로운 사회·경제·문화적 구조 형성이 요구되는 지금, 우리 사회가 새로운 가치관과 규범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지금 한국 사회에 다가온 ‘사과와 반성의 계절’이 우리의 미래를 풍요롭게 만드는 데 보다 긍정적인 역할을 해내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