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그리고 광주 - 김미은 여론매체부장·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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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반소매 아래 호리호리한 팔뚝이, 영락없이 너였단게. 네가 나한테 한번 와준 것인디, 지나가는 모습이라도 한번 보여 줄라고 온 것인디, 늙은 내가 너를 놓쳐버렸어야(중략) 네 중학교 학생증에서 사진만 오려갖고 지갑 속에 넣어놨다이. 하얀 습자지로 여러번 접어 싸놓은 네 얼굴을 펼쳐 본다이. 아무도 엿들을 사람이 없지마는 가만가만 부른다이…… 동호야.”
‘소리 없는 목소리’전(6월 22일까지)이 열리고 있는 5·18기념문화센터 전시실. 입구에 들어서자 나지막이 들려오는 독백이 전시장을 감쌌다. 스크린을 응시하며 앉아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정기현 작가의 ‘꽃 핀 쪽으로’는 한강의 ‘소년이 온다’ 중 ‘동호’ 어머니의 독백이 담긴 제 6장 ‘꽃 핀 쪽으로’를 낭독한 작품이다. ‘오징어 게임 2’의 강애심 배우와 ‘오월 어머니들’이 번갈아 책을 읽고, 영상에는 어머니들의 모습과 광주의 장소들이 등장한다.
아들 곁으로 떠난 ‘엄마’
2023년 첫선을 보인 전시는 이번에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특별전’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다시 관람객들을 만나는 중이다. 전시는 크게 변한 게 없었다. 여러 언어로 번역된 ‘소년이 온다’를 비롯해 한강의 작품들이 놓인 서가가 만들어졌고, ‘소년이 온다’ 낭독 부스를 설치해 책을 읽은 후 녹음할 수 있게 했다. 첫 전시에서 책 51페이지의, 자신의 시신을 바로보는 ‘정대’의 독백을 녹음했던 나는 이번엔 174페이지를 천천히 읽어 보았다.
“엄마 저쪽으로 가아, 이왕이면 햇빛 있는데로.(중략) 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
영상 작품의 마지막 장면인 광주천변을 걷는 엄마의 뒷모습 위로 흐르는 동호의 내레이션과 출연자 자막을 보다 멈칫했다. 박순금·김순심 두 어머니의 이름 앞에 ‘고(故)’라는 글자가 하나 더 붙어 있었다. 작품에서 처음 등장하는 박순금 어머니는 아들을 가슴에 묻었다. 1980년 살레시오고교에 다니던 아들 두선이는 금남로에서 계엄군의 총에 맞았고 후유증으로 고생하다 1995년 세상을 떴다. 김순심 어머니는 남편을 잃었다.
다시 보니 전시 리플릿에도, 벽에 부착된 작품 소개란에도 고(故)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두 엄마는 지난해 여름 한 달 사이 ‘하늘나라 아들과 남편 곁으로’ 떠났다고 한다. 그 곳에서 꿈에서도 잊지 못하던 이들을 만났을까. 전시는 변한 게 없는 게 아니었다. 이제 우리는 어머니의 몫까지 기억하고, 어머니의 삶도 마음에 담야야한다.
‘소년이 온다’를 만나는 전시는 광주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도 열리고 있다. ‘소년이 온다’ 특별전(10월 19일까지)이다. 소설 속 내용을 중심으로 1980년 5월 광주를 조명한 전시장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행방불명자 명단, 수습학생시민 어깨띠, 취재 수첩과 당시를 기록한 시민들의 일기장 등의 자료를 꼼꼼히 읽는 모습, 질문하는 아이에게 차분히 설명해주는 엄마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2014년 출간 후 57만부가 팔렸던 ‘소년이 온다’는 노벨상 수상 이후 120만부가 더 판매됐다. 비상계엄이 선포되면서 많은 이들이 다시 ‘소년이 온다’를 찾았고 소설은 최근 10년(2016~2025)간 가장 많이 팔린 책으로도 선정됐다.
“덕분에 잘 살고 있어요”
‘소년이 온다’가 사람들을 광주로 이끌고 있다. 이날도 잠시 들른 카페에서 ‘소년이 온다’를 읽고 있는 한 커플을 만났다. 광주시는 ‘소년의 길’ 특화 관광상품을 운영중이며 5·18 당시 부상자 치료와 자발적 헌혈이 이뤄진 상징적 장소로 2014년 폐쇄됐던 적십자병원을 5월 한달간 문을 연다. 5·18행사위원회는 17일 밤 중앙초등학교에 500동 규모의 무료 ‘오월 텐트촌’을 운영한다고 한다. 텐트 안 불빛 아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소년이 온다’를 읽는 아름다운 장면을 떠올려 본다.
비상계엄 후 대통령 탄핵을 통해 다시 째깍거리던 민주와 정의의 시계가 또 한번 멈추려 한다. 대법원이 저지른 ‘사법 쿠데타’에 맞서 사람들은 다시 광장으로 모이는 중이다. ‘소년이 온다’가, ‘5·18’이 지켜온 가치를 이어가기 위함이다.
5·18기록관에는 관람객들이 따라 쓴 소설의 한 대목, 전시 감상들이 빼곡하게 붙어 있다. ‘광주를 기억하며 다시 역사를 생각한다’, ‘감사하고 고맙다’ 등 인천, 포항, 서울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써 놓은 글이다. 영어와 일어도 눈에 띈다.
“덕분에 잘 살고 있어요” 나는 이 글귀가 유독 마음에 남았다. 이 글을 읽은 수많은 ‘소년들’은 웃으며 이렇게 답하지 않았을까. “그거면 됐습니다.”
아들 곁으로 떠난 ‘엄마’
“엄마 저쪽으로 가아, 이왕이면 햇빛 있는데로.(중략) 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
영상 작품의 마지막 장면인 광주천변을 걷는 엄마의 뒷모습 위로 흐르는 동호의 내레이션과 출연자 자막을 보다 멈칫했다. 박순금·김순심 두 어머니의 이름 앞에 ‘고(故)’라는 글자가 하나 더 붙어 있었다. 작품에서 처음 등장하는 박순금 어머니는 아들을 가슴에 묻었다. 1980년 살레시오고교에 다니던 아들 두선이는 금남로에서 계엄군의 총에 맞았고 후유증으로 고생하다 1995년 세상을 떴다. 김순심 어머니는 남편을 잃었다.
다시 보니 전시 리플릿에도, 벽에 부착된 작품 소개란에도 고(故)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두 엄마는 지난해 여름 한 달 사이 ‘하늘나라 아들과 남편 곁으로’ 떠났다고 한다. 그 곳에서 꿈에서도 잊지 못하던 이들을 만났을까. 전시는 변한 게 없는 게 아니었다. 이제 우리는 어머니의 몫까지 기억하고, 어머니의 삶도 마음에 담야야한다.
‘소년이 온다’를 만나는 전시는 광주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도 열리고 있다. ‘소년이 온다’ 특별전(10월 19일까지)이다. 소설 속 내용을 중심으로 1980년 5월 광주를 조명한 전시장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행방불명자 명단, 수습학생시민 어깨띠, 취재 수첩과 당시를 기록한 시민들의 일기장 등의 자료를 꼼꼼히 읽는 모습, 질문하는 아이에게 차분히 설명해주는 엄마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2014년 출간 후 57만부가 팔렸던 ‘소년이 온다’는 노벨상 수상 이후 120만부가 더 판매됐다. 비상계엄이 선포되면서 많은 이들이 다시 ‘소년이 온다’를 찾았고 소설은 최근 10년(2016~2025)간 가장 많이 팔린 책으로도 선정됐다.
“덕분에 잘 살고 있어요”
‘소년이 온다’가 사람들을 광주로 이끌고 있다. 이날도 잠시 들른 카페에서 ‘소년이 온다’를 읽고 있는 한 커플을 만났다. 광주시는 ‘소년의 길’ 특화 관광상품을 운영중이며 5·18 당시 부상자 치료와 자발적 헌혈이 이뤄진 상징적 장소로 2014년 폐쇄됐던 적십자병원을 5월 한달간 문을 연다. 5·18행사위원회는 17일 밤 중앙초등학교에 500동 규모의 무료 ‘오월 텐트촌’을 운영한다고 한다. 텐트 안 불빛 아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소년이 온다’를 읽는 아름다운 장면을 떠올려 본다.
비상계엄 후 대통령 탄핵을 통해 다시 째깍거리던 민주와 정의의 시계가 또 한번 멈추려 한다. 대법원이 저지른 ‘사법 쿠데타’에 맞서 사람들은 다시 광장으로 모이는 중이다. ‘소년이 온다’가, ‘5·18’이 지켜온 가치를 이어가기 위함이다.
5·18기록관에는 관람객들이 따라 쓴 소설의 한 대목, 전시 감상들이 빼곡하게 붙어 있다. ‘광주를 기억하며 다시 역사를 생각한다’, ‘감사하고 고맙다’ 등 인천, 포항, 서울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써 놓은 글이다. 영어와 일어도 눈에 띈다.
“덕분에 잘 살고 있어요” 나는 이 글귀가 유독 마음에 남았다. 이 글을 읽은 수많은 ‘소년들’은 웃으며 이렇게 답하지 않았을까. “그거면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