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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코뿔소(Gray Rhino)가 달려오고 있다
김 일 환
편집부국장
2016년 12월 14일(수) 00:00
국가 부채 폭증, 가계 부채 폭탄, 극심한 불황, 소비 절벽, 고용 절벽, 수출 부진, 조선·철강 침체, 미국 금리 인상 가능성, 트럼프노믹스, 중국 사드 반발….

대통령과 비선 실세가 만들어 낸 막장드라마로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는 현재 대한민국 경제의 키워드들이다. 그 어느 것 하나 긍정적인 것은 없으며 온통 위기의 신호들뿐이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세계정책연구소 미셸 부커 소장은 지난 2013년 다보스포럼에서 ‘회색 코뿔소’(Gray Rhino)라는 개념을 들고 나왔다. 이 말은 ‘위험 신호를 내뿜으며 돌진하는 위기’를 가리키는 말로 자세히 풀이하자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많은 사건, 사고가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하는 것이 아니며 끊임없이 경고 신호를 보내 사전에 충분히 인지할 수 있게 한다’는 말이다.

작금의 우리 경제 상황을 나타내는 신호들을 이 개념에 대입해 보면 답은 확연하다. 내년 이후 한국 경제가 맞이할 혹독한 시련의 전조로 해석된다. 당장 대비하지 않으면 제 2의 IMF사태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 준다. 당장 드러나는 지표가 외환 보유액을 제외하고는 IMF사태가 터지기 1년 전인 지난 1997년과 흡사하다고 한다.

최근 IMF 고위 관계자가 한국 경제에 경고한 내용만 봐도 위기의 현실을 알 수 있다. 지난 1일(현지 시간) 코시 마타이 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부국장은 뉴욕에서 열린 ‘한국 경제 리뷰’ 세미나에서 한국의 구조 개혁이 지지부진해 중장기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고 강한 톤으로 비판했다.

그는 위험 수준을 넘어선 가계 부채, 급격한 고령화에 따른 노동인구 감소, 낮은 수준의 여성·젊은 층의 노동시장 참여율, OECD 최하위 수준의 노동생산성, 내수와 서비스업 주도형으로의 경제 구조 전환 지연 등 다섯 가지 부문을 위험 징후로 지목했다.

삼성증권도 최근 발표한 2017년 ‘글로벌 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건설 투자와 민간 소비 약화 가능성을 경고했다. 거시경제 지표에만 빨간불이 켜진 게 아니다. 국민이 느끼는 체감 경기도 최악의 상황이라는 평가다. 기업들은 커지는 불안감에 돈을 풀지 않는다. 곳곳에 ‘돈맥경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서민 가계도 살림살이가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지 않기에 지갑을 꽁꽁 닫는다. 백화점은 물론이고 전통시장조차 손님이 급감하고 있다. 식당들도 장사가 되지 않는다고 아우성이다. 도심 상가는 공실이 늘어가고 불황에 문을 닫는 가게도 줄을 잇고 있다.

상황은 점차 악화 일로인데 정부는 대응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국정 농단 사태로 국정 공백이 길어지고 대통령 탄핵으로 권한을 대행하게 되는 황교안 총리 체제도 현상 유지에 급급한 상황이다. 더욱이 경제정책 총괄 부처이자 컨트롤 타워인 기획재정부는 부총리 교체 불발로 사실상 정책 추진에 손을 놓고 있고 실무자들은 서로 눈치만 보는 실정이라고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다간 위기 수습의 골든타임을 놓칠 우려가 높다.

이대로는 안 된다. 어정쩡한 모습의 현 내각에 맡겨 놓을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폐족으로 치닫는 여당, 동력을 잃어버린 새누리에 진두지휘를 맡길 수도 없다.

결국 현 정국을 주도적으로 헤쳐 나갈 야당의 역할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 탄핵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인용을 이끌어 내는 것과 동시에 경제 불안을 불식시키고 위기를 수습하는 투트랙 전략이 절실한 시점이다. 당장 경제 율사들로 태스크포스를 꾸리고 경제 전반에 대해 긴급 점검에 나서야한다. 그리고 서둘러 정책 대안을 내놔야 한다. 또 모든 것은 원점에서 재검토해 현 난국을 타개해 나갈 위기관리형 경제부총리를 세우는 데 힘을 모아야한다.

이것이 민주당 및 국민의당의 수권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대안정당이라는 말만 앞세울 게 아니라 국민을 안심시킬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으라는 이야기다.

아직도 국민은 IMF사태로 대변되는 국가 경제 붕괴의 뼈아픈 고통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두 번 다시 그런 고통을 겪지 않게 하는 것이 지금 두 야당에 부여된 중요한 임무임을 자각해야할 것이다.

/김일환기자 kih8@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