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적 기획력·담론 세계 트렌드 주도 ‘믿고 보는 미술관’
(12) 프랑트푸르트 쉬른 쿤스트할레
1986년 옛 산업단지 야외 노점 정체성 살려 건축
건물 노후화로 올 봄 보켄하임으로 임시 이전
다양한 미술사조 담론·유명 미술관과 콜라보 등
자체 소장품 없는 단점 독창적 기획전시로 극복
매년 50만여명 방문…어린이·청소년 예술교육도
1986년 옛 산업단지 야외 노점 정체성 살려 건축
건물 노후화로 올 봄 보켄하임으로 임시 이전
다양한 미술사조 담론·유명 미술관과 콜라보 등
자체 소장품 없는 단점 독창적 기획전시로 극복
매년 50만여명 방문…어린이·청소년 예술교육도
![]() 쉬른 쿤스트할레는 마인강을 따라 늘어서 있는 박물관거리의 슈테델미술관, 독일 건축미술관 등과 함께 프랑크푸르트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공간이다. <쉬른 쿤스트할레 제공> |
“친애하는 프랑크푸르트 시민 여러분, 우리는 잠시 정든 뢰머광장을 떠나 보켄하임(Bockenheim)으로 이주하려고 합니다. 새로운 출발을 기념하는 축하 퍼레이드에 오셔서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 즐겨주시기 바랍니다.”(세바스찬 바덴 쉬른 쿤스트할레 관장)
지난 9월 7일 오후 3시, 프랑크푸르트의 유서깊은 사적지인 뢰머광장은 수천여 명의 시민들과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세바스찬 바덴(Sebastian Baden) 관장의 초대를 받고 몰려든 이들은 독일 전통 복장을 입고 경쾌한 음악을 연주하는 관악대를 향해 환호를 보냈다. 특히 이날 행사의 메인 게스트인 세계적인 무용단 ‘샤샤 발츠(Shsha Waltz)와 친구들’이 역동적인 몸짓을 선보일 때에는 올드 타운이 떠나갈 듯한 함성으로 가득찼다.
무엇보다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수천 여 명의 시민들이 함께 한 퍼레이드였다. 뢰머광장에서 프랑크푸르트 시내를 지나 보겐하임까지 1.5m를 걸으며 군악대의 연주에 맞춰 자유롭게 몸을 움직이거나 손뼉을 치며 흥을 돋우는 진풍경이 펼쳐진 것이다. 종착지인 보켄하임에 도착한 참가자들은 4층 건물 외벽에 내걸린 대형 현수막 “Here We Are Soon”을 본 순간, 일제히 환호성을 터뜨렸다. 프랑크푸르트의 아이콘인 쉬른 쿤스트할레의 보켄하임 시대를 알리는 카운트다운이었기 때문이다.
오는 2027년 말까지 쉬른 쿤스트할레가 머물게 될 보켄하임의 돈도르프(Dondorf)는 2차 세계대전 공습으로 90%가 폐허가 된 옛 산업지구에 자리한 인쇄소 건물이다. 강제 노동 수용소가 자리한 이 곳을 선택한 건 쉬른 쿤스트할레의 본래 장소처럼 전쟁의 아픈 상흔을 지녔기 때문이다. 어두운 과거를 예술로 승화시키기 위한 시의 정책적 고려가 반영된 것이다.
쉬른 쿤스트할레가 40여 년간 지켜온 뢰머광장을 떠난 이유는 오래전부터 뜸들여왔던 리노베이션 공사 때문이다. 1986년 뢰머광장과 대성당 사이에 들어선 쉬른 쿤스트할레는 주변의 건축물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고풍스런 외관의 로툰다 양식으로 설계된 현대미술관이다.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대관식이 끝난 후 축하연이 열렸던 뢰머와 대관식이 거행됐던 대성당 사이에 자리한 만큼 현대미술 전시장이지만 다른 건축물과 ‘튀지않고’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하기 위해서다.
1983년 유명 건축가 방어트(Bangert)가 이끄는 그룹 BJSS의 설계로 3년만에 완공된 미술관은 밝은 사암으로 마감된 외벽과 기하학적인 평면구조를 지닌 여러 개의 구조가 맞물린 독특한 형태다. ‘쉬른’(Schrin)은 상품을 판매하는 야외 노점을 의미하는 말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프랑크푸르트에서 생산했던 공산품들이 거래됐던 곳이다. 옛 산업단지나 유적지의 건축물을 정책적으로 보전하는 독일 정부와 프랑크푸르트시는 야외노점의 정체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미술관을 추진한 것이다.
가장 인상적인 콘셉트는 전시면적 2000㎡에 140m 길이와 10m 높이, 6개 층으로 구성된 로툰다 홀이다. 건물의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원형 홀은 대중과의 소통을 위해 디자인한 공간으로 전시장의 동쪽과 서쪽을 잇는 교차로 역할도 한다. 하지만 40여 년이 지나면서 건물의 노후화로 인해 에너지 효율이 떨어져 올 봄부터 대대적인 보수공사에 들어갔다.
쉬른 쿤스트할레는 프랑크푸르트 마인강을 따라 늘어서 있는 박물관지구(Museumsufer)의 슈테델 미술관, 역사박물관, 독일건축박물관 등과 달리 자체 소장품이 없다. 하지만 컬렉션의 부재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독일을 대표하는 미술관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데에는 쉬른 쿤스트할레의 독창적인 기획력이 있다. 연중 소장품을 기반으로 한 상설전이 미술관의 상상력을 제한할 수 있는 데 반해 쉬른 쿤스트할레는 ‘문제작’들을 엄선한 특별전으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관 이후 쉬른 쿤스트할레가 선보인 기획전의 면면이 이를 방증한다. 전통적인 예술감상의 틀을 깬 혁신적이고 파격적인 전시 기획과 연출은 국제 미술계의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표현주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등 19세기부터 현재까지 다양한 미술사조를 주제로 한 담론과 세계적인 유명 미술관과의 콜라보는 ‘믿고 보는 미술관’으로 자리잡았다.
지난 2013년 파리의 퐁피두센터와 공동 기획한 ‘에드바르트 뭉크’전, 2019년~2020년 뉴욕의 솔로몬 구겐하임 미술관과의 ‘예술가의 허가:구겐하임 컬렉션에 대한 6가지 시선’전이 대표적인 예로, 쉬른 쿤스트할레는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소장품이 없어도 퀄리티 높은 전시회를 개최하는 등 뛰어난 역량을 과시하고 있다.
이는 카타리나 돔, 잉그리드 파이퍼, 마티아스 울리히 등 5명의 큐레이터와 2~3명의 어시스턴트 큐레이터의 내공을 짐작하게 한다. 특히 기획전시를 전문으로 하는 미술관의 특성에 맞게 외부 큐레이터들과의 협업에도 적극적이다.
보켄하임시대의 서막은 다다이즘의 선구자인 수잔 뒤샹(Suzanne Duchamp) 회고전(10월 10일~2026년 1월 11일)이었다. 마르셀 뒤샹의 여동생으로도 잘 알려진 그녀는 1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실상에 충격을 받은 후 다다이즘에 적극 참여하며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비판하는 작업에 매달렸다.
쉬른 쿤스트할레가 이번 회고전을 추켜든 건 마르셀 뒤샹의 그늘에 가려 상대적으로 예술적 중요성이 알려지지 않은 수잔 뒤샹을 재평가하기위해서다. 수많은 미술관들이 오빠인 뒤샹의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는 데 반해 그녀의 예술적 성취는 간과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오랜 연구와 자료 리서치를 거친 끝에 뉴욕 모마(MoMA),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파리 퐁피두센터와 개인 소장가들로부터 빌린 작품 80점을 한자리에 모아 미술계를 놀라게 했다.
쉬른 쿤스트할레의 홍보담당 테아 슈트로(Thea Stroh)는 “세계 미술사의 흐름을 바꿔 놓은 미술사조와 작가들의 회고전, 다양한 주제의 기획전을 통해 매년 50만 여 명이 방문하고 있다”면서 “기획전 이외에도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예술교육, 4세~9세 사이의 어린이들을 위한 상설 놀이 체험 공간인 ‘미니 쉬른’(MiniSchirn) 등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 프랑크푸르트=글·사진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지난 9월 7일 오후 3시, 프랑크푸르트의 유서깊은 사적지인 뢰머광장은 수천여 명의 시민들과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세바스찬 바덴(Sebastian Baden) 관장의 초대를 받고 몰려든 이들은 독일 전통 복장을 입고 경쾌한 음악을 연주하는 관악대를 향해 환호를 보냈다. 특히 이날 행사의 메인 게스트인 세계적인 무용단 ‘샤샤 발츠(Shsha Waltz)와 친구들’이 역동적인 몸짓을 선보일 때에는 올드 타운이 떠나갈 듯한 함성으로 가득찼다.
![]() 쉬른 쿤스트할레는 다다이즘의 선구자 수잔 뒤샹 등 예술적 성취를 제대로 평가받고 있지 않은 소외된 작가들을 재조명하는 기획전을 개최하기도 한다. |
쉬른 쿤스트할레가 40여 년간 지켜온 뢰머광장을 떠난 이유는 오래전부터 뜸들여왔던 리노베이션 공사 때문이다. 1986년 뢰머광장과 대성당 사이에 들어선 쉬른 쿤스트할레는 주변의 건축물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고풍스런 외관의 로툰다 양식으로 설계된 현대미술관이다.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대관식이 끝난 후 축하연이 열렸던 뢰머와 대관식이 거행됐던 대성당 사이에 자리한 만큼 현대미술 전시장이지만 다른 건축물과 ‘튀지않고’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하기 위해서다.
1983년 유명 건축가 방어트(Bangert)가 이끄는 그룹 BJSS의 설계로 3년만에 완공된 미술관은 밝은 사암으로 마감된 외벽과 기하학적인 평면구조를 지닌 여러 개의 구조가 맞물린 독특한 형태다. ‘쉬른’(Schrin)은 상품을 판매하는 야외 노점을 의미하는 말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프랑크푸르트에서 생산했던 공산품들이 거래됐던 곳이다. 옛 산업단지나 유적지의 건축물을 정책적으로 보전하는 독일 정부와 프랑크푸르트시는 야외노점의 정체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미술관을 추진한 것이다.
가장 인상적인 콘셉트는 전시면적 2000㎡에 140m 길이와 10m 높이, 6개 층으로 구성된 로툰다 홀이다. 건물의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원형 홀은 대중과의 소통을 위해 디자인한 공간으로 전시장의 동쪽과 서쪽을 잇는 교차로 역할도 한다. 하지만 40여 년이 지나면서 건물의 노후화로 인해 에너지 효율이 떨어져 올 봄부터 대대적인 보수공사에 들어갔다.
![]() 프랑크푸르트의 관광 1번지인 뢰머광장에 자리한 쉬른 쿤스트할레 전경. |
개관 이후 쉬른 쿤스트할레가 선보인 기획전의 면면이 이를 방증한다. 전통적인 예술감상의 틀을 깬 혁신적이고 파격적인 전시 기획과 연출은 국제 미술계의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표현주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등 19세기부터 현재까지 다양한 미술사조를 주제로 한 담론과 세계적인 유명 미술관과의 콜라보는 ‘믿고 보는 미술관’으로 자리잡았다.
지난 2013년 파리의 퐁피두센터와 공동 기획한 ‘에드바르트 뭉크’전, 2019년~2020년 뉴욕의 솔로몬 구겐하임 미술관과의 ‘예술가의 허가:구겐하임 컬렉션에 대한 6가지 시선’전이 대표적인 예로, 쉬른 쿤스트할레는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소장품이 없어도 퀄리티 높은 전시회를 개최하는 등 뛰어난 역량을 과시하고 있다.
이는 카타리나 돔, 잉그리드 파이퍼, 마티아스 울리히 등 5명의 큐레이터와 2~3명의 어시스턴트 큐레이터의 내공을 짐작하게 한다. 특히 기획전시를 전문으로 하는 미술관의 특성에 맞게 외부 큐레이터들과의 협업에도 적극적이다.
![]() 쉬른 쿤스트할레는 오는 2027년 말까지 프랑크푸르트의 보켄하임으로 임시 이전해 전시회를 연다. 지난 9월 초, 프랑크푸르트 시민들과 함께 진행한 보켄하임 이전 축하 퍼레이드 모습. |
쉬른 쿤스트할레가 이번 회고전을 추켜든 건 마르셀 뒤샹의 그늘에 가려 상대적으로 예술적 중요성이 알려지지 않은 수잔 뒤샹을 재평가하기위해서다. 수많은 미술관들이 오빠인 뒤샹의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는 데 반해 그녀의 예술적 성취는 간과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오랜 연구와 자료 리서치를 거친 끝에 뉴욕 모마(MoMA),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파리 퐁피두센터와 개인 소장가들로부터 빌린 작품 80점을 한자리에 모아 미술계를 놀라게 했다.
쉬른 쿤스트할레의 홍보담당 테아 슈트로(Thea Stroh)는 “세계 미술사의 흐름을 바꿔 놓은 미술사조와 작가들의 회고전, 다양한 주제의 기획전을 통해 매년 50만 여 명이 방문하고 있다”면서 “기획전 이외에도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예술교육, 4세~9세 사이의 어린이들을 위한 상설 놀이 체험 공간인 ‘미니 쉬른’(MiniSchirn) 등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 프랑크푸르트=글·사진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