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보부상의 길 - 이병우 우아포인트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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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보부상의 길 - 이병우 우아포인트연구소 대표
2025년 10월 22일(수) 00:20
“그들은 새로운 것을 접하고 들여왔던 앞선 사용자이자 누구의 이야기든 귀담아듣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며 사람과 지역, 나라를 잇던 소통의 매개체다.” 예산 보부상박물관에 있는 ‘보부상’에 대한 설명이다. ‘보부상(褓負商)’은 봇짐장수와 등짐장수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보부상은 단순한 행상인이 아니었다. 그들은 물건을 파는 동시에 정보와 문화를 전파하며 사람과 지역을 잇는 조선 시대의 유통 네트워크였다.

보부상의 역할이 21세기 디지털 시대에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바로 강의와 컨설팅, 창작 활동을 하는 직군이 21세기의 보부상, 즉 ‘지식 보부상’의 주류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보부상이 물건을 짊어졌다면 오늘의 지식 보부상은 노트북이 든 배낭을 멘다. 물리적 상품에서 무형의 지식 서비스로 바뀌었을 뿐, 필요한 곳을 찾아가 가치를 전한다는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나 역시 배낭 하나 메고 여러 현장을 다니며 강의와 컨설팅을 이어갈 때면 ‘나는 지금 지식 보부상의 길을 걷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변치 않는 보부상의 정신은 무엇일까? 첫 번째 덕목은 신용이었다. “저 사람에게 맡기면 틀림없다.” 이 믿음이 거친 장터에서 자신을 지켜주는 가장 단단한 방패였다. 오늘날에도 신용은 생명과 같다. 온라인 포트폴리오, 후기, 평판이 곧 현대판 신용장이다. 프로젝트 하나하나에 담긴 정직함과 책임감이 자신의 이름값을 만든다. 신용을 잃는 순간, 다음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두 번째 덕목은 이동성이다. 보부상은 시장이 열리는 곳이라면 어디든 길을 나섰다. 정해진 사무실이 없었고 발길 닿는 곳이 곧 일터였다. 오늘의 지식 보부상도 다르지 않다. 그들은 공간보다 사람을 따라 움직이며 일의 경계를 스스로 만든다. 길 위의 상인에서 노트북을 든 지식노동자로 형태만 달라졌을 뿐, 자유롭게 움직이는 본질은 같다. 이를테면 디지털 노마드의 삶이다.

세 번째는 연대의 힘이다. 보부상은 혼자 다니지 않았다. 그들은 ‘보부상단’을 조직해 서로 돕고, 상권을 보호하며, 내부 규칙을 세웠다. 오늘날에도 연대는 여전히 중요하다. 프리랜서라고 해도 온라인 커뮤니티, 협업 네트워크, 스터디 그룹은 필요하다. 혼자서는 한계가 있다. 협력과 신뢰 속에서 함께 성장하는 것이 새로운 시대의 경쟁력이다. 느슨한 연대의 강력한 힘이다.

21세기의 보부상은 더 이상 물리적 상품을 팔지 않는다. 그들은 전문성과 경험, 통찰과 감각 같은 무형의 지식을 전한다. 산업 현장을 오가며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새로운 기술과 트렌드를 전파하는 ‘지식 유통인’이다. 지식 보부상은 단순히 정보를 옮기는 전달자가 아니라 여러 산업의 변화를 촉진하는 혁신의 촉매자라고 생각한다.

보부상은 “새로운 것을 접하고 들여왔던 앞선 사용자”였다. 세상의 변화를 민감하게 읽는 감각은 예나 지금이나 핵심 역량이다. 늘 배우고 변화에 맞춰 자신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끊임없이 지식의 봇짐을 채우지 않는 보부상은 금세 시장에서 밀려난다. 시대만 다를 뿐 본질은 같다. 변화의 속도가 더욱 빨라진 AI의 시대에는 더욱 중요해졌다.

과거의 보부상과 현대의 지식 보부상은 모두 ‘자신의 것’을 가지고 ‘자신의 길’을 걷는 전문가들이다. 그들의 봇짐에 담긴 내용물은 물건에서 지식으로 바뀌었지만 신용과 네트워크, 그리고 세상의 흐름을 읽는 지혜가 성공의 열쇠라는 점은 시대를 관통하는 변치 않는 교훈이다. 지게보다 가벼워진 노트북 배낭, 그만큼의 무게를 책임감과 전문성으로 채워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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