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권형 에너지 고속도로 구축 … 산업도 전력따라 지방으로”
RE100 생태계 조성 위한 제언
이순형 동신대 전기공학과 교수
“태양광·풍력 모두 전남이 풍부
에너지 거버넌스 지방 이양해야”
정택중 한국RE100협의체 의장
“RE100 산단 전남에 조성해야
정부 지원 패러다임 전환 시급”
이순형 동신대 전기공학과 교수
“태양광·풍력 모두 전남이 풍부
에너지 거버넌스 지방 이양해야”
정택중 한국RE100협의체 의장
“RE100 산단 전남에 조성해야
정부 지원 패러다임 전환 시급”
![]() 지난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에너지의 흐름을 바꾸다: 전남에서 시작하는 에너지 분권’ 포럼에서 전남도와 한국전력공사, 한수원, 남부발전, 전남개발공사 등 관계 기관들이 ‘전남 RE100 산업단지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jeans@kwangju.co.kr |
![]() 이순형 동신대 전기공학과 교수 |
![]() 정택중 한국RE100협의체 의장 |
![]() 오현진 한전 계통기획처장 |
31일 국회에서 열린 ‘에너지 분권 전략 포럼’에서는 새 정부가 RE100 산업단지 조성을 위한 정부 차원의 특별법 추진을 계기로 에너지 분권화를 통한 지역 내 RE100 생태계 조성을 위한 다양한 제언이 쏟아져 나왔다.
포럼에서는 전남이 RE100 산업단지 조성의 최적지임을 확인함과 동시에 지방정부가 중앙정부로부터 인·허가, 기업 지원 등의 권한을 이양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또 에너지 생산지역 내 우선 소비 원칙 등 자립형 전력체계와 ‘분권형 에너지 고속도로’ 모델도 선보였다.
◇분권형 에너지 고속도로로 ‘에너지 예산권’ 이양=이순형 동신대 전기공학과 교수는 ‘분권형 에너지 고속도로’를 주제로 한 기조발제에서 “에너지와 관련된 행정적 분권, 에너지 정책 결정권, 예산권의 이양이 쉽지 않지만 전남도가 마련한 오늘 행사가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교수에 따르면 에너지 분권은 생산 및 소비를 지역 주도로 하는 것을 포함해 정책 결정과 예산 집행 권한의 지방으로의 이전도 포함된다. 나아가서는 지역의 특성과 요구를 반영한 독자적인 에너지 계획 수립도 가능한 것을 의미한다.
이 교수는 “최근 전 세계 에너지 패러다임은 대규모 발전에서 소규모로, 즉 중앙 집권식 시스템에서 분산형 시스템으로 변모하고 있다”면서 “대표적인 분산 에너지 자원인 태양광 발전, 풍력발전, 에너지 저장 시스템(ESS), 전기차 활용 모두 전남이 풍부하게 가진 자원”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분권형 모델의 정의로 ▲지역 소비 우선원칙 ▲자립형 전력체계 ▲분산형 에너지 네트워크 등을 언급했다. 특히 이날 이 교수는 ‘순차 송전’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현재 부족한 계통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정부의 전력망 확충은 오랜 시간이 걸린다. 현재 송전선로는 이용률이 낮은데, ESS를 활용하고 중간에 위치한 변전소 규모를 확대하면 최대 6배까지 송전량을 늘릴 수 있다”며 “시뮬레이션을 통해 알 수 있고, 현재 추진 중인 유연접속을 해소하고 에너지 고소도로 완성 후 갈아타기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이어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을 강조하면서 “산업이 전력을 따라 지방으로 옮길 수 있는 시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특히 분권형 에너지 고속도로를 통해 송전 손실을 25% 줄이고, 신규 일자리 15만개 등 1.2조원의 경제적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국내 RE100산단 조성 절실…전남 조성을 위한 지원 동반돼야=정택중 한국RE100협의체 의장은 ‘RE100 산업단지 구축 방안’을 주제로 발제에 나서 “RE100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며 “재생에너지 잠재력이 풍부한 전남 등에 RE100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것은 지역 균형 발전과 국가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한 최우선 과제”라고 밝혔다.
정 의장은 글로벌 기업들이 기후위기 대응과 사회적 책임을 위해 RE100을 선언하는 것과 달리, 한국 기업들은 고객의 요구로 인해 RE100을 이행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전남의 RE100 산단 성공을 위해선 지방정부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며, ‘국가 대개조’ 수준의 강력한 정부 지원과 정책적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 의장은 국내 RE100 이행 제도의 한계가 명확하다며 기업들은 탄소감축 실적을 인정받지 못하는 ‘녹색 프리미엄’ 제도로 RE100을 ‘울며 겨자 먹기’로 이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글로벌 고객사들은 실질적인 탄소 감축이 가능한 전력구매계약(PPA)을 요구하지만, 국내에선 비싼 가격과 부족한 물량 탓에 PPA 체결이 ‘하늘의 별 따기’라고 진단했다. 정 의장은 “정부가 RE100 산단을 국정 과제로 제시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며 “특히 전남은 전국 최고 수준의 태양광·풍력 잠재량을 보유해 RE100 산단 조성의 최적지다”고 말했다. 정 의장는 다만 “전남이 재생에너지 여건은 좋지만, 기업과 인재를 유치하는 데는 불리한 것이 현실”이라며 “‘충청 이남으로는 내려가지 않겠다’는 인식을 어떻게 깰 것인지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기업 유치의 핵심은 ‘지속가능성’과 ‘경제성’으로 단순히 부지를 제공하고 세금을 감면해주는 일시적 유인책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따라서 기업이 전남에 뿌리내리고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사람이 모이게 하기 위해서는 RE100 이행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고 안정적인 공급을 보장하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구체적인 대책으로는 ▲RE100 이행 기업에 대한 투자세액공제 확대 ▲산단 인근 재생에너지 발전소의 계통 우선 접속 ▲출력제어로 버려지는 재생에너지의 산단 공급 등 구체적이고 과감한 인센티브 제공 등이 언급됐다. 또한 과거 공급자·설비 중심의 접근에서 벗어나, 입주 기업의 눈높이에 맞춘 ‘수요자 중심의 공동 참여형 에너지 종합 서비스’로 정책의 틀을 바꿔야 한다고 정 대표는 덧붙였다.
오현진 한국전력공사 계통기획처장은 전력계통의 대대적인 혁신을 주문했다. 오 처장은 ‘수요와 공급의 극심한 불균형’이 문제라면서 “우리나라 전체 전력의 43%를 수도권이 소비하는 구조는 지난 30년간 변하지 않았지만, 최근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만 호남권 전체 수요(약 10GW)를 뛰어넘는 15GW의 전력이 필요해지는 등 수요 집중은 심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잠재량은 정반대로 호남 등 비수도권에 집중돼 ‘지역별 에너지 자급률 불균형’이 한계에 달했다고 진단했다.
오 처장은 ‘서해안 에너지 고속도로’ 구축 계획이 해법이 될 수 있다며 이와함께 에너지저장장치(ESS)나 동기조상기 등 첨단 설비(NWS)를 활용해 기존 망의 효율을 극대화하고, 사업 허가만 받고 착공하지 않는 ‘알박기’ 사업자를 퇴출시켜 진성 사업자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 처장은 포럼의 주제인 ‘지산지소(地産地消)’에 대해서도 “가야 할 방향은 맞지만, 수도권 수요 집중이라는 30년 된 구조를 어떻게 깰 것인지 현실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끝으로 “문을 열고 냉방하는 상점과 효과 없는 시간대별 요금제는 결국 비현실적인 전기요금 때문”이라며, “거대한 전력망 투자와 함께 국민적 에너지 절약 인식을 높이기 위한 요금 현실화 논의도 더는 피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전남의 RE100 산단은 대한민국 제조업의 미래를 가늠할 리트머스 시험지다. 풍부한 햇빛과 바람이라는 천혜의 자원을 ‘글로벌 기업이 찾아오는 산업 경쟁력’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지역의 노력을 뛰어넘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국가적 차원의 패러다임 전환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김민석 기자 ms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