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교과서로 진짜 수업을- 강 정 희 전 국어교사·‘다정한 교실에서 20000시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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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0.7명만 낳아야 하는데 1명을 낳아버렸다고 하소연하던 딸이 외동은 외로울 거라며 고심 끝에 둘째를 낳고 가정식 몸조리와 모유 수유로 전통 육아체험(!) 중이다. 나는 다섯 살 첫째의 유치원 등하원을 도와주고 있다. 올해는 옆 동네로 이사를 해서 내를 따라 숲이 우거진 산책로를 10분쯤 걸어가면 유치원이 나온다. 녀석은 셔틀버스를 거부하고 숲길로 다니기를 고집한다. 걸어갈 때는 우레탄이 깔린 곳을 마다하고 질경이와 민들레가 자라는 폭신폭신한 흙길로만 간다. 서너 걸음마다 멈춰서 나뭇가지와 솔방울을 주워 모아 안고 유치원 앞 화단에 두고 들어간다. 그렇게 우리는 천연 에어컨 녹색 엽록소 터널을 지나간다. 가는 길이 바로 훌륭한 학교다. AI 디지털 세계에는 없는 학습장이다.
도중에 초등학교가 있다. 말하자면 ‘초품아’인 셈이다. 2년 반 후에 녀석이 다니게 될 학교다. 한 여자아이가 늦었다는 듯 배낭에 매달린 캐릭터를 달랑거리며 씩씩하게 달려간다. 그리고 세 사람이 눈에 띈다. 할머니와 아빠가 교문에서 저학년 남자아이를 배웅하는데 문제가 있어 보인다. 아이가 교문 안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할머니가 아이를 안고 어깨를 토닥이다가 살며시 밀기를 반복해도 아이는 두 보호자 주위를 맴돌고 있다.
녀석을 유치원에 들여보내고 돌아오는 길에도 그들은 있었다. 아이는 교문 안으로 겨우 몇 걸음 들어갔고 할머니와 아빠는 펜스 너머로 어서 가라고 연신 손짓을 하고 있었다. 아이는 끝내 교실에 들어갔을까. 어떻게 하루를 지냈을까. 점심은 먹었을까. 가족들의 하루는 어땠을까. 선생님과 친구들과 대화하면서 배우고, 뛰고 노래하고 그림 그리고 세상을 알아가는 교실 만들기가 그리 어려운가.
교육에 관해서라면 국민 누구나 문제점과 해법을 모르지 않는다. 사계절 변화하는 자연 안에서 가족과 이웃이 함께 서로 도우며 아이들을 키우는 나라, 어른과 아이가 함께 책을 읽고 음미체를 즐기며 노동과 쉼이 어우러진 삶을 사는 나라를 만드는 일이 그리 어려운가.
사정이 되는 사람들은 선진국 국적과 시민권을 얻어주고, 초·중학교부터 자연환경과 커리큘럼이 좋은 나라에 조기유학을 보내고, 국내에서는 국제학교 사립학교를 보낸다. 먼 나라로 유학을 보내는 데 드는 비용과 노력을 모아서 이 땅의 우리 교육을 더 낫게 만들 수는 없을까.
벌써 2년 전 일이 되었다. 방과 후에 종종 반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놀러 다녔다. 바닷가 찻집과 출렁다리, 공연장과 전시장, 분식집, 노래방…. 잘 놀고 밤에 데려다주면서 마을 회관 앞에 차를 세워두고 깜짝 가정방문을 하기도 했다. 전기밥솥을 열었는데 안에 밥이 있었다. 그런데 흰 쌀밥 위에 검푸른 곰팡이가 가득 덮여 있었다. 그 아이도 국어 시간에 책 소개와 토론을 할 때는 그늘 없이 밝았다.
초임 시절 아이들 집에는 밥이 없었다. 끼니를 못 먹고 점심 도시락을 못 싸 오고 할머니와 약초를 캐러 산을 헤매고 다니는 아이가 있었다. 요즘엔 보통 입식 주방에 가스레인지와 전기밥솥이 있다. 그런데 아이들이 외롭다. 천정이나 벽이 아닌 밥솥에 곰팡이가 피어 있는데 아이들은 학교에서 학교○○예방교육을 받고 있다. 도시나 지방이나 아침부터 밤까지 아이들이 외롭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외로운 아이들이 AI 교과서로 첨단 디지털 미래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선생님이랑 친구들과 눈빛을 맞추며 마음이 담긴 대화를 하면서 새 지식을 배워야 할 수업 시간에 차가운 모니터에 터치 터치, 하면서 개인별 문제를 푼단다. 귀가하면 빈집에서 또 네모난 모니터를 켜고 터치 터치, 할 터이다. 시간이 많아 더욱 쓸쓸한 주말에는 밤잠을 참으면서 휴대폰과 태블릿과 아이패드로 게임 캐릭터를 죽이고 고성을 폭파하면서 열 시간 이상씩 같은 자세로 앉아 있을지도 모른다.
디지털이란 0과 1, 2진수의 수열, O와 X의 건조한 세상이다. 하지만 인간은 정서와 감각과 부피와 질량을 가진 울퉁불퉁한 존재가 아닌가. 일찍이 간디가 우려한 ‘인격 없는 교육’이 검은 먹구름으로 우리 머리 위에 와 있다. 디지털 모니터에 인격이 있는가. 교과서 비슷한 것 말고 진짜 책으로 진짜 수업을 하자. 땅에 내려놓기도 아까운 내 손주의 담임은 진짜 교과서와 따뜻한 그림책으로 수업하는 인간 선생님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교육에 관해서라면 국민 누구나 문제점과 해법을 모르지 않는다. 사계절 변화하는 자연 안에서 가족과 이웃이 함께 서로 도우며 아이들을 키우는 나라, 어른과 아이가 함께 책을 읽고 음미체를 즐기며 노동과 쉼이 어우러진 삶을 사는 나라를 만드는 일이 그리 어려운가.
사정이 되는 사람들은 선진국 국적과 시민권을 얻어주고, 초·중학교부터 자연환경과 커리큘럼이 좋은 나라에 조기유학을 보내고, 국내에서는 국제학교 사립학교를 보낸다. 먼 나라로 유학을 보내는 데 드는 비용과 노력을 모아서 이 땅의 우리 교육을 더 낫게 만들 수는 없을까.
벌써 2년 전 일이 되었다. 방과 후에 종종 반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놀러 다녔다. 바닷가 찻집과 출렁다리, 공연장과 전시장, 분식집, 노래방…. 잘 놀고 밤에 데려다주면서 마을 회관 앞에 차를 세워두고 깜짝 가정방문을 하기도 했다. 전기밥솥을 열었는데 안에 밥이 있었다. 그런데 흰 쌀밥 위에 검푸른 곰팡이가 가득 덮여 있었다. 그 아이도 국어 시간에 책 소개와 토론을 할 때는 그늘 없이 밝았다.
초임 시절 아이들 집에는 밥이 없었다. 끼니를 못 먹고 점심 도시락을 못 싸 오고 할머니와 약초를 캐러 산을 헤매고 다니는 아이가 있었다. 요즘엔 보통 입식 주방에 가스레인지와 전기밥솥이 있다. 그런데 아이들이 외롭다. 천정이나 벽이 아닌 밥솥에 곰팡이가 피어 있는데 아이들은 학교에서 학교○○예방교육을 받고 있다. 도시나 지방이나 아침부터 밤까지 아이들이 외롭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외로운 아이들이 AI 교과서로 첨단 디지털 미래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선생님이랑 친구들과 눈빛을 맞추며 마음이 담긴 대화를 하면서 새 지식을 배워야 할 수업 시간에 차가운 모니터에 터치 터치, 하면서 개인별 문제를 푼단다. 귀가하면 빈집에서 또 네모난 모니터를 켜고 터치 터치, 할 터이다. 시간이 많아 더욱 쓸쓸한 주말에는 밤잠을 참으면서 휴대폰과 태블릿과 아이패드로 게임 캐릭터를 죽이고 고성을 폭파하면서 열 시간 이상씩 같은 자세로 앉아 있을지도 모른다.
디지털이란 0과 1, 2진수의 수열, O와 X의 건조한 세상이다. 하지만 인간은 정서와 감각과 부피와 질량을 가진 울퉁불퉁한 존재가 아닌가. 일찍이 간디가 우려한 ‘인격 없는 교육’이 검은 먹구름으로 우리 머리 위에 와 있다. 디지털 모니터에 인격이 있는가. 교과서 비슷한 것 말고 진짜 책으로 진짜 수업을 하자. 땅에 내려놓기도 아까운 내 손주의 담임은 진짜 교과서와 따뜻한 그림책으로 수업하는 인간 선생님이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