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재발견] 호랑가시나무창작소
‘예술의 숲’으로 진화한 근대건축물
국제레지던시, 전시 공간, 영화 무대로 각광
국제레지던시, 전시 공간, 영화 무대로 각광
![]() 호랑가시나무 창작소는 지난 2013년 언더우드 선교사 사택의 차고로 쓰였던 10여 평의 공간을 그대로 살린 창작소를 비롯해 게스트하우스, 전시장인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 등이 들어서 있다. /최현배 기자 |
지난해 여성국극을 다룬 ‘정년이’가 안방에 화제를 일으키면서 덩달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곳이 있다. 광주 양림동 역사문화마을에 자리한 호랑가시나무창작소다. 수령 400년이 넘은 호랑가시나무(광주시 기념물 17호)가 자리하고 있어 ‘호랑가시나무 언덕’으로도 불린다.
극중 정년이의 음악 선생님 패트리샤 김의 집으로 등장한 이곳은 근대건축물로 알려지면서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광주에 정착한 선교사들이 선교, 교육, 의료, 문화 활동을 펼쳤던 양림동은 1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골목 곳곳에 이야기와 추억이 살아 숨쉰다. 그중에서도 이국적인 풍광을 뽐내는 호랑가시나무 게스트하우스는 비엔날레 파빌리온은 물론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 러브콜을 받는 등 예술발전소로 진화하고 있다.
◇2016년 개관한 ‘숲속의 미술관’
호랑가시나무창작소는 서양 선교사들의 숨결이 깃들어 있는 오웬기념각, 커티스 메모리홀, 윈스 브로우홀 등의 근대건축물과 이웃해 있다.
호랑가시나무 언덕에 예술의 싹을 틔우게 된 건 10여 년 전 부터. 지난 2013년 문화예술기업 ‘아트주’(대표 정헌기)가 원래 언더우드 선교사 사택의 차고로 쓰였던 10여 평의 공간을 그대로 살린 창작소를 비롯해 게스트하우스, 전시장인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을 속속 개관해 복합문화공간의 면모를 갖췄다. 다른 곳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유서깊은 건축물과 아름다운 풍광을 품고 있어 방문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ArtPolygon·다각형)은 ‘간판’에서 짐작할 수 있듯 다양한 장르의 융복합 예술이 만나는 ‘숲속의 미술관’이다. 특히 풍부한 역사유적과 스토리들을 간직하고 있는 장소성은 과거와 시공간을 이어줘 국내외 예술가와 기획자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은 여타 갤러리들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정 대표가 버려진 차고의 적벽돌 건물에 주목해 거의 원형 그대로 리모델링했기 때문이다. 세월의 더께가 쌓여 있는 클래식한 감성을 보존하고 싶었던 그는 본체는 그대로 지키면서 유리천정 등 일부 공간을 증축해 4개의 전시장(100평 규모)이 어우러진 ‘올드 앤 뉴’의 멋을 연출했다.
선교사 사택의 폐자재 등을 가져와 아트폴리곤의 상징으로 되살렸다. 역사의 흔적들은 사라졌지만 방문객들에게 옛 기억을 전하고 싶어서였다. 유리 건물로 지어진 글라스폴리곤 지하에는 또 다른 전시 공간 베이스 폴리곤(24평)이 자리잡고 있다.
이같은 아트폴리곤의 특별한 구조는 예술가들의 마음을 설레이게 한다. 비엔날레나 레지던시 등을 통해 이곳을 경험한 이들의 입소문을 타고 자신들의 작품을 선보이고 싶어하는 작가들이 많은 것이다. 무엇보다 높은 층고는 스케일이 큰 작업을 하는 작가들에게는 로망이다.
◇공간의 장소성 살린 ‘오, 하나 인피니티’
서울에서 활동하는 송창애 작가도 그들 중 하나다. ‘오, 하나 인피니티(O, One Infinity), 소환된 미래 기억’(Summoned Future Memory, 5월16~6월6일)을 주제로 아트폴리곤에서 전시했던 그는 지난해 기획전을 통해 아트폴리곤과 인연을 맺은 후 전시장의 아우라에 매료돼 개인전까지 가졌다.
물을 매개로 생명의 본질을 탐구하는 송 작가는 지난해 6월 5·18을 주제로 한 지정남 배우의 1인극 ‘환생 굿’ 공연에서 자식을 잃은 어머니들의 깊은 아픔을 마주한 후 ‘물로 쓴 시’라는 작업으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은 슬픔을 형상화 했다.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아트폴리곤은 적벽돌의 공간과 화이트 큐브의 모던함이 느껴지는 전시장, 글라스 폴리곤과 지하 전시장 등 4곳이 저마다 다른 색깔을 지니고 있어 예술적 상상력을 맘껏 표현할 수 있다”면서 “‘1000개의 눈물’이라는 1000개의 판넬과 미디어아트, 한지에 물로 글씨를 쓰는 작업들을 통해 지워지지 않는 5월의 상흔과 기억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트폴리곤의 또 다른 ‘작품’은 주변의 풍광이다. 전시장을 나오면 400년이 넘은 호랑가시나무와 각양각색의 꽃, 아티스트들의 개성이 넘치는 크고 작은 조형물이 자리해 거대한 야외 갤러리를 연상케 한다.
숲이 우거진 산책로에는 ‘양림동의 시인’인 김현승과 작곡가 정율성을 모델로 한 철제 벤치를 만날 수 있고 드라마 ‘정년이’에 등장했던 파란색 문 앞에는 정 대표가 직접 제작한 9마리의 개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양림동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충견설화 개비를 스토리텔링한 것으로 포토존으로 인기가 많다.
호랑가시나무창작소가 양림동의 거점공간으로 떠오르고 있는 데에는 정 대표의 열정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2005년 문화기획자로 일했던 그는 지난 1991년 동물원이 옮겨가면서 인적이 끊긴 사직공원을 보고 사람들이 다시 공원으로 모이기를 기대하며 예술가 모임을 꾸려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문화기획자 정헌기 대표의 10년 결실
그가 이끌고 있는 ‘아트주’(Art Zoo)는 바로 그가 꿈꾸는 예술동물원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선교사터의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호남신학대학교로부터 10년간 임차권을 얻은 정 대표는 레시던시를 시작으로 지난 2014년 호랑가시나무 창작소, 2년 후인 2016년 아트폴리곤을 잇따라 개관했다.
주된 기능은 갤러리이지만 공연과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의 문화예술이 교류하는 대안공간이라는 컨셉을 내걸었다. 이듬해에는 개관 기념전으로 ‘양림동 화가들’을 개최해 양림동과 인연이 있는 황영성, 우제길, 한희원, 정운학, 신수정, 이이남 등 6인을 초대했다.
올해로 개관 12주년을 맞은 호랑가시나무창작소는 레지던시 작가전을 포함해 지금까지 130여 회 전시회를 개최했고 지난 2021년 광주비엔날레 본전시장과 2023년 파빌리온 프로젝트의 무대로 각광받았다.
호랑가시나무창작소의 역량은 레지던시 프로그램에서 빛난다. 지난 2014년 지역 작가들의 네트워킹의 거점 공간으로 문을 연 이후 지금까지 150명에 가까운 작가들과 인연을 맺었다. 회화·사진·미디어아트·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미술인들을 비롯해 소설가, 시인, 음악가, 영화감독 등 각 분야의 예술인들이 참여했다.
특히 국제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꾸준히 진행해 온 점이 눈길을 끈다. 첫 해에는 독일과 이탈리아 작가가 다녀갔고, 이후 개별 작가 방문과 더불어 각국의 레지던시와 협업이 이뤄졌다. 개관 10주년이었던 2023년에는 스페인의 아나 허네즈, 이탈리아의 유디스 노인호이저리, 프랑스 엘비에 등 3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또한 2019년부터는 윤세영·조은솔·설박 등 지역 작가들의 해외 파견도 시작됐다. 지난 2023년에는 공모 과정을 거쳐 이탈리아 론제가와 프랑스 마르세유 잔바레에 작가를 파견하기도 했다. 올해는 스페인, 이란, 뉴질랜드, 폴란드 등 7명이 이곳에 머물며 작업중이다. 개관 첫해 레지던시 작가를 모집할 때는 홍보 부족으로 힘들었지만 요즘은 5~6대 1의 경쟁률을 보일 정도로 인기가 높다. 호랑가시나무창작소의 차별화된 기획과 운영이 이뤄낸 성과다.
정 대표는 “지난 10여 년 동안 창작소는 양림동 주민을 위한 예술 교육은 물론 국내외 작가 교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펼쳐왔다”며 “앞으로 아트폴리곤과 레지던시 프로그램 등을 통해 더 많은 지역 작가들을 해외에 알리는 플랫폼이자 지역성과 세계성을 아우르는 문화적 허브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
극중 정년이의 음악 선생님 패트리샤 김의 집으로 등장한 이곳은 근대건축물로 알려지면서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광주에 정착한 선교사들이 선교, 교육, 의료, 문화 활동을 펼쳤던 양림동은 1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골목 곳곳에 이야기와 추억이 살아 숨쉰다. 그중에서도 이국적인 풍광을 뽐내는 호랑가시나무 게스트하우스는 비엔날레 파빌리온은 물론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 러브콜을 받는 등 예술발전소로 진화하고 있다.
![]() 호랑가시나무 창작소 야외에서는 젊은 작가들의 개성 넘치는 작품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
호랑가시나무창작소는 서양 선교사들의 숨결이 깃들어 있는 오웬기념각, 커티스 메모리홀, 윈스 브로우홀 등의 근대건축물과 이웃해 있다.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ArtPolygon·다각형)은 ‘간판’에서 짐작할 수 있듯 다양한 장르의 융복합 예술이 만나는 ‘숲속의 미술관’이다. 특히 풍부한 역사유적과 스토리들을 간직하고 있는 장소성은 과거와 시공간을 이어줘 국내외 예술가와 기획자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은 여타 갤러리들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정 대표가 버려진 차고의 적벽돌 건물에 주목해 거의 원형 그대로 리모델링했기 때문이다. 세월의 더께가 쌓여 있는 클래식한 감성을 보존하고 싶었던 그는 본체는 그대로 지키면서 유리천정 등 일부 공간을 증축해 4개의 전시장(100평 규모)이 어우러진 ‘올드 앤 뉴’의 멋을 연출했다.
![]()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은 클래식한 감성을 간직하기 위해 본체는 그대로 지키면서 유리천정 등 일부 공간을 증축한 글라스폴리곤, 베이스 폴리곤 등 4개의 전시장으로 구성됐다. |
이같은 아트폴리곤의 특별한 구조는 예술가들의 마음을 설레이게 한다. 비엔날레나 레지던시 등을 통해 이곳을 경험한 이들의 입소문을 타고 자신들의 작품을 선보이고 싶어하는 작가들이 많은 것이다. 무엇보다 높은 층고는 스케일이 큰 작업을 하는 작가들에게는 로망이다.
◇공간의 장소성 살린 ‘오, 하나 인피니티’
서울에서 활동하는 송창애 작가도 그들 중 하나다. ‘오, 하나 인피니티(O, One Infinity), 소환된 미래 기억’(Summoned Future Memory, 5월16~6월6일)을 주제로 아트폴리곤에서 전시했던 그는 지난해 기획전을 통해 아트폴리곤과 인연을 맺은 후 전시장의 아우라에 매료돼 개인전까지 가졌다.
물을 매개로 생명의 본질을 탐구하는 송 작가는 지난해 6월 5·18을 주제로 한 지정남 배우의 1인극 ‘환생 굿’ 공연에서 자식을 잃은 어머니들의 깊은 아픔을 마주한 후 ‘물로 쓴 시’라는 작업으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은 슬픔을 형상화 했다.
![]() 세월의 흔적이 깃들어 있는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에서 열렸던 송창애 작가의 개인전 ‘오 하나 인피니티(O, One Infinity)-소환된 미래기억’전. |
아트폴리곤의 또 다른 ‘작품’은 주변의 풍광이다. 전시장을 나오면 400년이 넘은 호랑가시나무와 각양각색의 꽃, 아티스트들의 개성이 넘치는 크고 작은 조형물이 자리해 거대한 야외 갤러리를 연상케 한다.
![]() 호랑가시나무 창작소를 운영하고 있는 ‘아트 주’의 정헌기 대표가 제작한 9마리의 개 조형물. |
호랑가시나무창작소가 양림동의 거점공간으로 떠오르고 있는 데에는 정 대표의 열정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2005년 문화기획자로 일했던 그는 지난 1991년 동물원이 옮겨가면서 인적이 끊긴 사직공원을 보고 사람들이 다시 공원으로 모이기를 기대하며 예술가 모임을 꾸려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 호랑가시나무창작소의 아트폴리곤은 광주비엔날레 파빌리온, 양림동 골목비엔날레 등을 통해 국내외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호랑가시나무창작소 제공> |
그가 이끌고 있는 ‘아트주’(Art Zoo)는 바로 그가 꿈꾸는 예술동물원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선교사터의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호남신학대학교로부터 10년간 임차권을 얻은 정 대표는 레시던시를 시작으로 지난 2014년 호랑가시나무 창작소, 2년 후인 2016년 아트폴리곤을 잇따라 개관했다.
주된 기능은 갤러리이지만 공연과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의 문화예술이 교류하는 대안공간이라는 컨셉을 내걸었다. 이듬해에는 개관 기념전으로 ‘양림동 화가들’을 개최해 양림동과 인연이 있는 황영성, 우제길, 한희원, 정운학, 신수정, 이이남 등 6인을 초대했다.
![]() ‘올드 & 뉴’의 감성을 지닌 아트폴리곤 전시장. /최현배 기자 |
호랑가시나무창작소의 역량은 레지던시 프로그램에서 빛난다. 지난 2014년 지역 작가들의 네트워킹의 거점 공간으로 문을 연 이후 지금까지 150명에 가까운 작가들과 인연을 맺었다. 회화·사진·미디어아트·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미술인들을 비롯해 소설가, 시인, 음악가, 영화감독 등 각 분야의 예술인들이 참여했다.
특히 국제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꾸준히 진행해 온 점이 눈길을 끈다. 첫 해에는 독일과 이탈리아 작가가 다녀갔고, 이후 개별 작가 방문과 더불어 각국의 레지던시와 협업이 이뤄졌다. 개관 10주년이었던 2023년에는 스페인의 아나 허네즈, 이탈리아의 유디스 노인호이저리, 프랑스 엘비에 등 3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 관객 참여 프로젝트 ‘물로 쓴 시’는 한지에 지우고 싶은 기억을 적어 걸어두는 작품으로, 시간의 흐름 속 감정의 흔적을 남긴다. /최현배 기자 |
정 대표는 “지난 10여 년 동안 창작소는 양림동 주민을 위한 예술 교육은 물론 국내외 작가 교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펼쳐왔다”며 “앞으로 아트폴리곤과 레지던시 프로그램 등을 통해 더 많은 지역 작가들을 해외에 알리는 플랫폼이자 지역성과 세계성을 아우르는 문화적 허브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