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주인공 어머니 김길자씨 “아들도 노벨상 기뻐할 것”
한강 작가 ‘소년이 온다’ 실존 인물 문재학 열사 모친 김길자씨
5·18 때 총상으로 숨진 고교생 희생자…소설서 ‘동호’로 그려져
5·18 때 총상으로 숨진 고교생 희생자…소설서 ‘동호’로 그려져
![]() 소설 ‘소년이 온다’ 등장인물의 모티프인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 김길자씨가 11일 광주시 북구 신안동의 집에서 ‘소년이 온다’ 책을 읽고 있다. |
“우리 (문)재학이 이야기를 널리 알려줘서 기쁘기도 하고, 참 고맙고, 슬프기도 하지요….”
202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의 모티브가 된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 김길자(85)씨는 11일 광주일보와 인터뷰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민주화운동 현장에서 산화한 아들을 그리워하는 마음, 아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소설을 썼던 작가가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됐다는 기쁨, 문 열사의 아버지가 최근 세상을 떠나 기쁜 소식을 함께 할 수 없다는 복잡한 심경이 얽혀 있는 뜨거운 눈물이었다.
문 열사는 한강 작가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소년이 온다’의 모티프가 됐던 실존 인물이다. 소설에서 주인공 동호로 등장한다.
문 열사는 1980년 5·18 당시 고등학교 1학으로, 매일 도청에 나가 시민군 시신 수습 등을 도왔다.
김씨의 만류에도 “창근이(초등학교 동창)가 죽었다. 이렇게 놔두고는 못 간다”며 27일 새벽까지 도청을 지켰다. “계엄군이 학생들은 손을 들면 안 죽인다더라”며 눈물을 훔치던 어머니를 뿌리쳤다.
하지만 27일 문 열사는 전남도청 내에서 결국 계엄군의 잔혹한 진압과정에서 총탄에 맞아 산화했다.
문 열사는 당시 친구인 안종필 열사와 나란히 2층 복도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문 열사는 목 부위, 안 열사는 복부에 총을 맞고 엎드린 채 사망했다.
두 열사의 사망 당시 주변에 총기는 찾아볼 수 없으며 빵조각만이 떨어져 있었다. 계엄군은 문 열사의 시신을 부모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망월동에 암매장했다.
이후 김씨는 남편과 함께 ‘폭도’로 몰린 아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민주 투사로 나서기도 했다. 40년 넘는 진상규명 투쟁 끝에 문 열사의 아버지 건양씨는 2022년 별세했다.
소설 후반부에서는 동호의 어머니 시선으로 떠나간 동호를 그리워하는 내용도 담겨 있는데, 김씨의 이야기를 오롯이 글로 담아낸 것이다.
김씨는 지난 10일 밤 9시께 TV로 한강 작가의 수상 소식을 듣고 “너무 반갑고 기쁘고,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더라”고 말했다.
그동안 자신도 문 열사의 아픔과 진상 규명을 위해 투쟁을 해 왔었는데, 한강 작가의 도움으로 전 세계에 진상이 알려지게 됐다며 더없이 감사하다고 했다.
노안 때문에 글을 읽기 어려운 김씨는 아직 ‘소년이 온다’ 책을 끝까지 읽지 못했다. 남편 문건양씨가 생전에 한 구절씩 책을 읽어주기도 했는데, 그 때마다 가슴이 아파 눈물을 쏟고는 했다고 김씨는 회상했다.
“매일 밤 아버지와 어머니 품 사이로 파고들어 잠자곤 했던 막둥이였어요. 그런 아이가 먼저 세상을 떠났으니, 그 이후 살림도 팽개치고 사방으로 목소리를 내고 다녔지요. 우리 재학이 내놓으라고, 기어이 살려내라고 목을 놓아 울부짖어었요. 그 투쟁의 결과가 성과를 본 것 같아 마음이 후련하네요.”
김씨는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5·18을 왜곡·폄훼하는 세력들에게 반드시 전해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4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왜곡·폄훼로 유족들의 마음에 대못을 박고 있는 이들에게 진실이 전해지길 바란다는 마음에서다.
김씨는 “한강 작가의 소설이 세계적으로 알려져 지만원 등 왜곡 세력들에게 ‘진실은 감출 수 없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일깨워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또 하늘에 있는 아들이 이 소식을 듣고 기뻐할 것이라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재학아, 네가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해 온 결과가 세계로 퍼지고 있다. 그러니 하늘나라에서도 편히 잠들고, 친구들 만나서 같이 즐겁게 지냈으면 좋겠다. 사랑한다 우리 재학아….”
/글·사진=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
202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의 모티브가 된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 김길자(85)씨는 11일 광주일보와 인터뷰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민주화운동 현장에서 산화한 아들을 그리워하는 마음, 아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소설을 썼던 작가가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됐다는 기쁨, 문 열사의 아버지가 최근 세상을 떠나 기쁜 소식을 함께 할 수 없다는 복잡한 심경이 얽혀 있는 뜨거운 눈물이었다.
문 열사는 1980년 5·18 당시 고등학교 1학으로, 매일 도청에 나가 시민군 시신 수습 등을 도왔다.
김씨의 만류에도 “창근이(초등학교 동창)가 죽었다. 이렇게 놔두고는 못 간다”며 27일 새벽까지 도청을 지켰다. “계엄군이 학생들은 손을 들면 안 죽인다더라”며 눈물을 훔치던 어머니를 뿌리쳤다.
문 열사는 당시 친구인 안종필 열사와 나란히 2층 복도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문 열사는 목 부위, 안 열사는 복부에 총을 맞고 엎드린 채 사망했다.
두 열사의 사망 당시 주변에 총기는 찾아볼 수 없으며 빵조각만이 떨어져 있었다. 계엄군은 문 열사의 시신을 부모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망월동에 암매장했다.
이후 김씨는 남편과 함께 ‘폭도’로 몰린 아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민주 투사로 나서기도 했다. 40년 넘는 진상규명 투쟁 끝에 문 열사의 아버지 건양씨는 2022년 별세했다.
소설 후반부에서는 동호의 어머니 시선으로 떠나간 동호를 그리워하는 내용도 담겨 있는데, 김씨의 이야기를 오롯이 글로 담아낸 것이다.
김씨는 지난 10일 밤 9시께 TV로 한강 작가의 수상 소식을 듣고 “너무 반갑고 기쁘고,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더라”고 말했다.
그동안 자신도 문 열사의 아픔과 진상 규명을 위해 투쟁을 해 왔었는데, 한강 작가의 도움으로 전 세계에 진상이 알려지게 됐다며 더없이 감사하다고 했다.
노안 때문에 글을 읽기 어려운 김씨는 아직 ‘소년이 온다’ 책을 끝까지 읽지 못했다. 남편 문건양씨가 생전에 한 구절씩 책을 읽어주기도 했는데, 그 때마다 가슴이 아파 눈물을 쏟고는 했다고 김씨는 회상했다.
“매일 밤 아버지와 어머니 품 사이로 파고들어 잠자곤 했던 막둥이였어요. 그런 아이가 먼저 세상을 떠났으니, 그 이후 살림도 팽개치고 사방으로 목소리를 내고 다녔지요. 우리 재학이 내놓으라고, 기어이 살려내라고 목을 놓아 울부짖어었요. 그 투쟁의 결과가 성과를 본 것 같아 마음이 후련하네요.”
김씨는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5·18을 왜곡·폄훼하는 세력들에게 반드시 전해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4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왜곡·폄훼로 유족들의 마음에 대못을 박고 있는 이들에게 진실이 전해지길 바란다는 마음에서다.
김씨는 “한강 작가의 소설이 세계적으로 알려져 지만원 등 왜곡 세력들에게 ‘진실은 감출 수 없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일깨워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또 하늘에 있는 아들이 이 소식을 듣고 기뻐할 것이라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재학아, 네가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해 온 결과가 세계로 퍼지고 있다. 그러니 하늘나라에서도 편히 잠들고, 친구들 만나서 같이 즐겁게 지냈으면 좋겠다. 사랑한다 우리 재학아….”
/글·사진=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