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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늑대의 시간’이 끝나면- 박성천 문화부장·편집국 부국장
2024년 04월 09일(화) 21:30
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았다. 전쟁과도 같은 선거가 마침내 오늘로 끝이 난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시간이었다. 누군가는 배지를 달 것이고, 누군가는 패배의 쓴잔을 마시게 될 것이다.

투표 날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필자의 뇌리에 생뚱맞게도 한 편의 소설이 떠오른다. 권력의 허구성을 해학과 풍자로 일갈했던 윤흥길 작가의 장편 ‘완장’이 그것이다. 출간 40주년을 맞아 새로운 개정판으로 발간된 소설은 세대를 이어 독자들의 폭넓은 지지와 공감을 받았다. 무엇보다 작품은 ‘완장’이라는 사물을 모티브로 복잡다단한 세상살이의 모습을 날카롭게 들여다본다.



곧 가려질 300개의 배지 주인공

땅 투기로 졸부가 된 최 사장은 저수지 사용권을 얻어 양어장을 만든다. 그리고 저수지 감시를 이곡리의 한량 임종술에게 맡긴다. 완장을 두른 임종술은 이전과는 딴판으로 변한다. 사람들을 안하무인으로 대하고, 읍내에 나갈 때도 완장을 두른다. “돈도 완장이고, 지체나 명예도 말짱 다 완장이여!” 완장이 지닌 힘을 실감한 임종술은 점차 세상에는 수많은 완장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작가는 인간 사회의 욕망과 우화적인 이면을 날것의 언어로 그렸다. 노란색 바탕에 파란색 글씨의 ‘감시원’ 완장은 오늘의 관점에서 ‘배지’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제 총선이 끝나면 300개의 배지 주인공이 가려지고 ‘선량’(選良)들은 일반인들은 듣도 보도 못한 많은 특혜를 누릴 것이다.

돌아보면 선거는 역동적이고 우여곡절이 있기 마련인데, 이번 선거도 예외는 아니었다. 정권 심판론과 야당 견제론이 충돌한 지점에서 다수의 여론조사기관(공표금지 이전)은 심판론이 우세하다는 예측을 내놓았다. 성난 민심의 바다에 도도히 흐르는 것의 실체는 무엇이었는지 몇 시간 후면 그 결과가 드러날 것이다. 어느 편이 이기든 결과에 담긴 추상같은 민의를 받들어야 할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혹자는 선거를 일컬어 ‘민주주의 꽃’이라고 말한다. 그럴 만도 하다. 민주국가 시민으로서 가장 ‘갑’의 위치에 설 수 있는 때가 바로 선거철이다. 평소에는 아는 척도 하지 않을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 먼저 악수를 청하고 눈맞춤을 한다. “뽑아만 주시면 최선을 다하겠다”며 비굴할 정도로 굽신거리기도 한다. 그뿐인가. 출근길 목이 좋은 교차로마다 점거하듯 도열한 채 허리가 땅에 닿도록 인사를 하고, 연신 손을 흔들어댄다.



끝나지 않은 ‘완장의 시대’

언제 또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 필부필부(匹夫匹婦)들이, 학력 등 스펙도 빵빵하고 재산(평균 24억4000만원)도 많은 후보자들로부터 이처럼 극진한 대우를 받을 수 있겠는가. 입지자들은 유권자의 표가 ‘총알’과 같은 위력을 지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표를 구걸하는 최선의 방법 또한 납작 엎드리는 것임을 안다. 그러나 유권자들을 상전 모시듯 떠받드는 ‘모양’은 어디까지나 투표일까지다.

물론 선거 기간 후보자들은 분초를 아껴가며 유권자들을 많이 만났을 것이다. 지역 발전의 적임자, 민의의 대변자 등 자신이 당선되어야 할 이유를 내세우며 읍소를 했을 것이다. 한편으로 후보자들 입장에서 보면 억울한 부분도 있을 수 있겠다 싶다. 시민들 중에는 진심으로 자신을 지지하는 이들도 있지만, 반대의 경우도 많다. 면전에서는 웃으며 환대하지만 속내는 알 수 없는 게 유권자들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자신을 찍어줄 것 같으면서도 정작 표는 다른 후보에게 준다면 ‘웃으면서 뺨을 맞는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황혼 무렵을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말한다. 빛과 어둠이 뒤섞여 낮도 밤도 아닌 모호한 경계의 지점을 일컫는다. 언덕 너머 실루엣으로 다가오는 짐승이 내가 기르는 개인지,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분간할 수 없다면 그 두려움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비유적으로 인용되는 이 말은 특히 정치 영역에서 곧잘 은유되곤 한다.

이제 몇 시간 후면 ‘개와 늑대의 시간’은 끝난다. 후보자들은, 유권자들은, 제각기 자신이 투표했던 또는 자신이 굽신거렸던 대상이 ‘개’였는지 ‘늑대’였는지 알게 될 것이다. 긴 어둠이 걷히고 새벽 미명이 밝아오면 모든 것은 실체를 드러내기 마련이니까.

다시 ‘완장’의 주인공 임종술의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그는 완장의 힘에 집착한 나머지 자신을 고용한 사장 일행의 낚시질까지 막아서는 행패를 부린다. 결국 그는 관리인 자리에서 쫓겨난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저수지 주변을 맴돈다. ‘완장’의 마력에 붙잡힌 임종술 같은 이가 비단 소설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에도 무도한 ‘완장’들은 곳곳에 존재한다. 물론 소설 속 표면상 주인은 땅 투기 업자 최 사장이지만 오늘의 시대 주인은 ‘국민’들이다. 열린 시대라고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완장의 시대’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