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컬처의 근간은 우리 한글에 있다 - 박성천 문화부장·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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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컬처의 근간은 우리 한글에 있다 - 박성천 문화부장·편집국 부국장
2023년 11월 28일(화) 23:00
얼마 전 광주에서 처음으로 세계한글작가대회가 열렸다. 올해로 9회째를 맞은 세계한글작가대회는 국내외에서 1000여 명의 작가들과 시민, 그리고 문학 애호가들이 참여했다. 국제PEN한국본부 광주지역위원회(이사장 박신영)가 진행한 이번 대회의 주제는 ‘한글, 화합을 노래하다’ 였다. 오늘의 세계 정세나 우리의 시대 상황에 비춰볼 때 시의적절한 화두였다. 무엇보다 서구 중심의 관점에서 벗어나 한글과 한국을 중심에 두고 제(諸) 문제를 사유하며 논의하자는 취지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주제였다.

지난 2015년 가을 이 대회가 창설될 때만 해도 지속 가능 여부에 대한 확신은 많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조직위 측에서는 ‘제1회’라는 순서를 붙이는 데 망설였다는 후문이다. 세계적인 대회를, 그것도 한글을 매개로 대회를 치르기에는 오늘날 문학의 지위나 지형 등이 예전만 못하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광주서 열린 세계한글작가대회

광주에서 진행된 세계한글작가대회는 자연스럽게 ‘광주정신’을 떠올리게 했다. 광주정신은 불의한 권력에 항거하고 민주와 평화, 인권의 가치를 지켜낸 숭고한 희생이 그 토대가 됐다. 5·18민중항쟁을 비롯해 이전의 광주학생독립운동, 그에 앞선 동학혁명과 의병활동이 모두 광주정신의 뿌리에 닿아 있다.

또한 국권침탈이라는 시대적 운명에 휘말려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를 해야 했던 고려인들의 눈물겨운 삶도 일정 부분 광주 아픔, 광주정신과 연계돼 있다. 혹자는 “무슨 말인가”라고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올해 3·1절을 앞두고 고려인역사문화탐방단 일원으로 카자흐스탄을 방문했던 광주 광산구 늘푸른작은도서관 이순옥 관장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그는 당시 통화에서 “스탈린과 소련 정부는 사람이 살 수 없는 중앙아시아 황무지에 고려인들을 버렸다. 그 혹독한 추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분투했을 고려인들의 삶을 생각하자 눈물이 났다”고 감회를 얘기했다. 탐방단은 당시 고려일보, 고려극장 등을 둘러볼 기회도 가졌다. 운 좋게도 고려극장 90주년을 기념(2021년 8월)하는 앙코르 공연을 볼 수 있었는데, K콘서트에서 떼창을 하듯 ‘옹헤야’ 노래를 우리말로 부르던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탐방단 중에는 광주 월곡동 고려인문화관 ‘결’의 김병학 관장도 포함돼 있었다. 김 관장은 지난 1992년 카자흐스탄으로 건너가 고려인한글학교에서 25년간 현지 주민들과 후세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던 주인공이다. 이에 앞서 1991년에는 광주일보 주도로 광주전남 단체장을 비롯해 기업인, 시민들이 기금을 모아 소련에 한글학교를 설립한 바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우즈베키스탄 타슈겐트에 세운 ‘광주한글학교’였다. 우리나라 최초로 기금을 모아 소련에 한글학교를 세운 것은 그 자체로 ‘광주정신’이 살아있음을 보여준 명징한 증거였다.

고려인들에게 한글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체절명의 정신이자 가치였다. 나라를 빼앗긴 쓰라린 아픔이 있는 이들에게 모국어는 ‘밥’이자 ‘생명’과도 같았다. 이역만리 동토의 땅에서 아리랑 노랫소리만 들려도 눈물이 났다는 동포들의 이야기는 우리말, 우리글에 대한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준다.



한글 ‘세계 화합’ 씨앗 됐으면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 우리 문학은 변방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시각예술을 비롯해 공연예술이 주는 화려함과 엔터테인먼트적인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더욱이 모바일로 대변되는 SNS는 일상의 삶을 장악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모든 영역에까지 침투했다. 활자문화가 설자리를 잃어가는 상황에서 문학의 본질이니 문학의 가치니 하는 말들은 세상 물정 모르는 책상물림들의 자기위안쯤으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문학은, 아니 한글은 여전히 희망이며 미래다. 지구상에 수많은 언어들이 소멸되고 있지만 한글은 세계로 확대되고 있다. 현재 우즈베키스탄에서는 16개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으며 68개 초등학교에서 방과 후 활동 과목으로 가르친다고 한다. 베트남은 전 세계에서 한국어 학구열이 가장 높은 국가다. 한국어 강좌 개설 대학만 60곳에 전공자도 2만5000명에 이를 만큼 한글 열풍이 거세다.

이번 ‘한글, 화합을 노래하다’를 주제로 광주에서 열린 세계한글작가대회가 여느 해보다 뜻 깊은 것은 그런 까닭이다. K-컬처의 열풍이 K-문학으로 전이될 날이 멀지 않았다. 우리의 한글이, 우리의 문학이 인종과 이념 그리고 종교 등 다양한 경계를 넘어 세계 화합의 ‘씨앗’이 될 수 있는 날이 속히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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