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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동림사(東林寺)에서 익어간 다산의 꿈 - 박석무 다산학자·우석대 석좌교수
2023년 10월 23일(월) 00:00
세상은 날마다 막된 세상으로 흘러가고 국민들의 삶은 갈수록 팍팍해지면서, 밝은 내일을 기약할 수 없이 어두운 그림자만 짙어가고 있다. 이런 때에는 다산 정약용 같은 현인(賢人)의 책을 열어보면서 그가 제시했던 요순시대의 구현을 위한 방책들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다산은 분명히 말했다. 육경사서(六經四書)의 경학(經學) 공부를 통해 자신의 인격을 제대로 수양하고, 일표이서(一表二書 :경세유표·목민심서·흠흠신서)의 내용대로 정책을 세워 나라를 이끌어간다면 반드시 요순시대는 오게 돼 있다고 하였다.

“옛날 무술년(戊戌 :1778) 겨울, 아버지께서 화순 현감으로 계실 때에 나와 중형(仲兄 :정약전)이 동림사에서 책을 읽는데 40일 만에 ‘맹자’ 한 질을 모두 읽었다. (형님은 ‘서경’을 읽었다)…얼음물로 세수하고 이를 닦으며 눈 내리는 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야기를 나누었으니 요순군민(堯舜君民)에 관한 내용이었다.”(중형묘지명·仲兄墓誌銘)

17세의 다산, 21세의 손암, 두 형제가 세상을 개혁하여 요순시대를 만들어보자는 담대한 토론을 밤새우며 했다는 내용이다. 17세의 소년 시절부터 다산이 요순시대의 임금, 요순시대의 국민들이 했던 것처럼 올바른 정치와 올바른 생각으로 요순 정치를 복원하자는 꿈을 품고 살았다는 명확한 증거이다. ‘맹자’와 ‘서경’이 바로 경서 중에서는 요순 정치 구현을 위한 방책이 가장 잘 제시된 책이다.

우리의 위대한 선조 중, 고려의 포은 정몽주, 조선의 정암 조광조, 율곡 이이 등 참 선비이자 참다운 유학자들은 바로 요순 정치를 복원하자고 일생을 노력했던 학자였으며, 마지막에 이르러 다산이 그런 모든 학자들의 뜻을 종합하여 500여 권의 저서를 통해 요순 정치 구현의 자료를 제공하였다. 사또의 자제로 고요한 절간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던 눈 내리던 밤, 그 형제는 온갖 이상사회에 대해 심도 깊은 토론을 했었다. 썩고 병든 조선이라는 나라를 통째로 개혁하여 만인이 평등하게 살아가는 나라, 모두가 배고픔 없이 마음 편하게 살아가는 세상, 사회적 약자일수록 국가의 배려로 불편없이 살아가는 세상, 붕당 정치를 멈추고 당쟁을 뛰어넘어 오직 공론만 주장하고 편론(偏論)은 행세할 수 없는 세상을 만들자던 형제의 꿈이 요순의 이상세계를 이룩하려던 아름다운 꿈이었다.

1836년 75세의 다산은 자신의 꿈을 이룩하지 못하고 눈을 감고 말았다. 나랏일을 하는 사람들, 다산의 그 간절한 외침에 전혀 귀 기울이지 않다가 마침내 나라는 망했고 우리 국민은 36년의 쓰라린 노예생활을 해야만 했다. 민족혼까지 말살하려던 그 악독한 제국주의 일본, 그들은 오늘까지도 우리를 무시하고 못된 일, 해서는 안 될 일까지 감행하면서 우리 민족을 괴롭히고 있다. 다른 이유가 없다. 오직 다산의 그 아름답고 값진 꿈을 실천하는 일에 우리 누구도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탓이다.

이제라도 다시 다산의 꿈에 마음을 기울이자. 다산은 ‘맹자’에서 배운 방벌론(放伐論)을 이어받아 ‘탕론(湯論)’이라는 혁명적인 논리를 제시했다. 중국 고대의 탕 임금이나 무왕(武王)이 걸주(桀紂)를 방벌하여 혁명을 성공했던 것처럼 잘못하는 임금은 언제라도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 쫓아내는 정치가 바로 요순시대의 정치라고 하였다. ‘서경’의 민본(民本)사상을 근본으로 하여 ‘원목(原牧)’이라는 글을 통해,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주장하고 국민은 언제라도 권력을 교체할 권리가 있다는 명쾌한 주장을 하기도 했다. 이제는 다산의 꿈을 아름답게만 여기고 있을 수 없다. 우리 국민들의 행동을 통해 다산의 꿈을 실현시켜야 한다. 다산의 꿈에 눈 감고 있다가 나라가 망했던 옛날을 생각해서라도, 지금 그대로 보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백성의 뜻을 거역하고 독단의 정치만 하고 있는 임금, 모두가 반대하는 일을 혼자만 옳다고 감행하는 그런 임금, 언제까지 보고만 있을 것인가. 200년 전에도 다산은 그런 임금은 반드시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런 민주공화국의 나라에서 그냥 두고만 볼 수 있겠는가.

전라도 땅 화순의 동림사에서 꾸었던 다산의 꿈, 비록 동림사는 폐사가 되어 빈터는 밭이 되어버렸지만, 그의 정신과 생각은 아직도 남아 있다. 다산은 그때의 일을 ‘동림사 독서기’라는 산문과 ‘동림사 독서’라는 시로 남겼다. 다산의 꿈을 실현하는 일에 우리 함께 손을 잡고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