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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포의 맛 그리고 추억 - 정유진 코리아컨설턴트 대표
2023년 09월 04일(월) 00:00
한 입 먹으면 저절로 눈을 감게 되는 음식의 맛이 있다. 광주 금남로 뒷골목에 위치한 한 식당이 그런 곳 중 하나다. 지인의 초대로 매운탕을 맛본 뒤 없어질까 노심초사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은 이 곳을 가보지 못한 지인과 점심을 하러 간다는 나름의 규칙을 정했다. 그리고 며칠 전 남편에게 전화해 시원한 대구탕을 사주겠다며 불러냈다.

나름 음식과 요리법에 해박한 남편은 봄, 여름, 가을의 제철 생선을 나열하며 대구탕은 한겨울에 먹는 것이 더 맛있다고 한바탕 설명했다. 음식이야기가 오고 가다 마침내 멍게무침에 대구탕이 나오자 남편이 먼저 말을 끊고 수저부터 들었다. 대구살을 곁들인 국물을 입에 넣는 순간 그가 눈을 감았다. 아마 그도 내가 처음 이 집 대구탕을 먹었던 때와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라는 삶을 관통하는 진리.

광주에 이 같이 나이든 점잖은 식당이 있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여전히 이 곳이 남아있어 다행이지만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를 일이다. 이 집 옆에 있던 기막힌 선지 국밥집만 하더라도 그렇다. 간판이 여전히 있음에도 지난번에 이어 이번에도 닫혀진 가게 문을 보니 마음 한 켠이 헛헛하다. 분명 이전을 했으면 했다고 안내가 붙어있을 텐데 아무래도 또 하나의 깊은 손맛을 자랑하던 가게가 사라진 모양이다.

광주에는 특별한 식당들이 많았다. 전일빌딩 뒤 골목길에 위치한 영흥식당이 그 중 하나다. 밑반찬은 물론이고 제철 음식 모두가 개미졌던 식당에는 당시 문화계 인사 및 예술가들이 북적북적 드나들었다. 아쉽게도 이제는 화가 임남진의 2006년 작 ‘풍속도II-영흥식당’에서나 볼 수 있는 추억의 ‘광주 레전드’ 선술집이 되었다.

진도 출신 화가의 아내가 운영한 대인시장 근처 막걸리집 ‘월가’는 또 어떤가. 영흥같은 오래된 가게는 아니어도 전라도의 넉넉한 손맛이 훌륭했다. 애호박찌개며 굴전이며 작가들은 그 곳에서 늘 약속도 없이 만났다 헤어지곤 했다. 이들 식당의 공통점을 나열하자면 맛, 지역성, 분위기가 남달랐다. 특히 지역 삶의 역사가 담긴 곳으로 그 곳을 찾는 사람들에게까지 시대적, 문화적 경험이 통하는 곳이다.

비범한 요리 능력을 보여주는 쥐요리사의 이야기를 담은 애니메이션 영화 ‘라따뚜이’에 등장하는 냉혹한 음식평론가는 음식을 맛보는 순간 눈물을 흘린다. 그가 한입을 맛보자 어렸을 때 추억을 떠올리며 어머니가 해준 음식의 맛과 사랑을 다시 기억하고 느꼈기 때문이다. 한순간 향과 맛의 경험이 당시의 정황과 교차되면서 잊을 수 없는 하나의 기억으로 머릿속에 저장된다. 그리고 그러한 추억을 소환할 수 있는 열쇠 중 하나가 바로 음식이다.

후각과 미각의 경험은 한 개인의 경험 기억과 긴밀한 관계가 있음을 의미하며 이를 ‘프루스트 효과’라 한다.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이름에서 유래한 이 심리학적 용어의 탄생은 시대를 그린 회화라는 극찬을 받은 그의 대하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속 주인공이 어느 날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맛보며 과거의 추억을 회상하는 묘사에서 비롯되었다.

모두 이런 프루스트 효과를 한번쯤 경험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지난해 여름 서울 종로 골목에 위치한 노포에서 냉면을 먹고는 이곳이 처음 온 곳이 아니라 어렸을 때 아버지와 함께 와서 먹었던 냉면집이었음을 기억해냈다. 그리곤 시원한 냉면 국물에 호로록 면을 먹으며 그 날의 기억과 무엇보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올라 뭉클한 감정에 휩싸였다. 노포의 물냉면 한 그릇으로 초등학생 아이와 식사하는 40대 남자의 1982년 여름을 기억하게 된 놀라운 경험이었다.

광주의 구도심이 변화하고 단골집과 노포들이 사라지고 있다. 골목에선 구수한 생선구이 냄새를 더 이상 맡기도 어렵고 식당 주인에게 메뉴에 없는 음식을 부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맛집을 찾고 예약을 하기 위해 스마트기기 사용은 기본이고 식당안에서 비대면을 통한 선주문과 선결재도 일상다반사가 되었다. 커피 제조와 서빙를 위한 AI로봇이 우리 일상에 공존하는 시대에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라는 요리사 박찬일의 글과 함께 내 주변의 노포들을 떠올린다. 과연 이 말이 미래에도 유효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