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관 - 윤영기 체육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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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관 - 윤영기 체육부 부국장
2023년 04월 09일(일) 22:00
고분에서 출토된 금동관은 학계에서 종종 논쟁 대상이 된다. 역사의 승자인 백제와 신라를 중심에 둔 전형적인 해석과 현지 세력 자체 제작설이 대립한다. 광주·전남 마한권역에서는 백제가 지역 지배층에게 하사했다는 설이, 가야 지역에서 나오면 신라가 나눠 줬다는 주장이 어김 없이 등장한다. 드물지만 현지 세력이 자체적으로 제작했다는 새로운 견해도 발표된다.

최근 비화가야 지배층 무덤인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에서 발견된 금동관이 창녕 지역에서 자체 제작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제시됐다. 신라의 핵심 지역인 경주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신라 금동관과 비교하면 도금층이 얇고 표면 색상 등도 일정하지 않고 장식에서도 경주 양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통설과 달리 신라에서 제공한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1918년 발굴된 나주 신촌리 금동관(국보 295호)도 백제 중심으로 해석되고 있다. 백제가 담로제나 왕·후제(王·侯制) 등을 시행하면서 작위를 내린 지방 세력에게 금동관을 제공한 사례로 거론된다. 반면 임영진 전 전남대 교수는 “독립된 국가의 왕이 영역 내부 신하에게 하사하는 것은 영토 수호 임무를 의미하는 칼”이라며 “특정 지역 세력자에게 칼이 아닌 금동관이 제공됐다면 지배·피지배 관계에서 제공된 것이 아니라 상호 평화 공존적 협력 관계 유지를 위한 외교적 호의품으로 제공된 것”이라는 견해를 냈다. 제작 기법과 양식적 특징도 백제와 크게 다르다는 점에서 호의품으로 보기도 어렵다고 설명한다.

학계에서 금동관 등 위세품(威勢品·권위를 보여 주는 기물)을 두고 치열하게 논쟁하는 이유는 지역 고대사와 밀접하기 때문이다. 마한의 경우 기존 해석대로 백제가 영토로 편입하고 금동관을 줬다면 마한의 독자적인 역사가 그만큼 축소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마한사 단절은 백제사 확장을 의미한다. 그동안 연구 결과 6세기 초까지 꾸준히 성장해온 마한 명맥이 4~5세기에 끊기는 셈이다. 최근 광주·전남 지자체들이 국립 마한역사문화센터 유치에 나선 만큼 마한사를 재조명하는 사업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윤영기 체육부 부국장 penfoot@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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