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헬싱키 (상)-시벨리우스 공원] 민족 영웅 시벨리우스 추앙…자연과 예술 일상속으로
700여년간 러시아 식민 지배
1917년 독립하며 국가 정체성 재건
‘핀란드여 일어나라’ 교황시로
자국민 독립 의지 세계에 알린
국민음악가 ‘장 시벨리우스’ 추모
24t 거대 기념비, 대자연 형상화
1917년 독립하며 국가 정체성 재건
‘핀란드여 일어나라’ 교황시로
자국민 독립 의지 세계에 알린
국민음악가 ‘장 시벨리우스’ 추모
24t 거대 기념비, 대자연 형상화
![]() 핀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작곡가 장 시벨리우스를 기리기 위해 사후 10주년인 1967년 건립된 ‘시벨리우스 기념비’(Sibelius Monument). 북유럽의 자작나무 숲을 연상케 하는 실버톤의 외관과 거대한 스케일이 어우러져 핀란드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았다. |
‘디자인과 예술의 도시’
사우나와 백야로 잘 알려진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는 지난 2012년을 기점으로 도시의 색깔을 바꾸어 가고 있다. ‘디자인을 일상 속으로’(Embedding Design in Life)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세계 디자인 수도로 뽑힌 데 이어 2014년 유네스코가 선정하는 디자인 창의도시로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헬싱키 시내를 거닐다 보면 핀란드 출신의 모더니즘 디자이너 알바 알토에서부터 엘리엘 사리넨이 설계한 중앙역 등 독특한 외관이 인상적인 건축물을 쉽게 접할 수 있다.
핀란드가 ‘디자인’에 공을 들이게 된 계기는 1917년 러시아로부터의 독립이다. 700년 간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핀란드는 제2의 건국의 기회로 삼기 위해 디자이너들에게 새로운 국가적 정체성을 위한 재건 임무를 맡겼다. 이 과정에서 자연환경과 디자인, 예술을 국민들의 일상 속으로 스며 들게하는 프로젝트들이 도입됐다.
그중에 하나가 2018년 러시아으로 부터의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개관한 ‘오디’ 도서관이다. 헬싱키 중심가에 자리한 오디는 도서관의 고정 관념을 깬 복합문화공간이라는 점에서 디자인 강국 핀란드의 저력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오 핀란드여, 보아라, 날이 밝아온다.
밤의 두려움은 영원히 사라졌고,
하늘도 기뻐 노래하네.
나 태어난 이 땅에 아침이 밝아오네.
핀란드여 높이 일어나라,
노예의 굴레를 벗은 그대,
압제에 굴하지 않은 그대,
오 핀란드, 나의 조국….” (핀란디아 중 일부)
러시아 독립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다른 곳은 ‘시벨리우스 기념공원’과 ‘핀란디아 홀’다. 핀란드 출신의 국민음악가 장 시벨리우스(Jean Sibelius·1865~1957)의 예술세계를 기리는 공간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시벨리우스는 러시아 니콜라이 2세의 압제로 암흑기를 보내야 했던 핀란드인들에게 민족의식과 애국심을 일깨워준 영웅이었다.
‘핀란드여 일어나라’(핀란디아 Op.26)로 불리는 이 교향시는 핀란드의 청정한 자연을 연상시키고 핀란드 민중들의 투쟁 정신을 고취시키는 북유럽의 서늘한 바람을 연상케 한다. 러시아로 부터 독립하기 전인 1900년 파리 세계 박람회에서 연주된 ‘핀란디아’는 핀란드인의 자주독립을 향한 의지를 전 유럽에 알린 역사적 사건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헬싱키 시내 곳곳에는 시벨리우스와 핀란디아를 추모하는 문화공간들이 들어서 있다. 핀란드 여행은 장 시벨리우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으로 시작한다고 할 만큼 마지막에는 시벨리우스로 이어진다.
‘시벨리우스 기념공원’(Jean Sibelius Park)이 예술작품을 통해 그의 삶과 정신을 입체적으로 표현한 미술관이라면 핀란디아 홀은 대표작인 ‘핀란디아’를 상징적으로 구현한 클래식 전용공연장이다. 핀란드가 시벨리우스를 핀란드의 브랜드이자 예술의 아이콘으로 가꾸는 것은 그의 남다른 위상 때문이다. 핀란드인들에게 시벨리우스는 단순히 음악가가 아닌, 민족주의자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시벨리우스 기념공원은 거장의 예술세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현장이다. 시벨리우스 기념공원은 헬싱키 시내에서 트램을 타고 30여 분 정도 달리면 도착하는 근교에 자리하고 있다. 공원 입구를 지나
오븟한 길을 따라 안쪽으로 걸으면 아담한 호수와 숲들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낸다. 핀란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도심 속 공원처럼 한적한 분위기가 감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한무리의 관광객들이 몰려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공원의 ‘주인’인 시벨리우스의 기념비(Sibelius Monument)다. ‘Passio Musicae’로도 불리는 조형물은 추운 나라의 자작나무 숲을 연상케 하는 실버톤의 외관과 거대한 스케일이 어우러져 관광객의 시선을 압도한다.
시벨리우스를 기념하기 위해 설치된 조형물은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은 형상이 인상적이다. 속이 빈 600개의 강철 파이프로 만들어진 모습은 금방이라도 물결의 파동을 떠올리게 할 만큼 유연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높이 8.5m, 넓이 6.5m, 무게 24t 규모의 기념비는 인근의 나무, 잔디, 오솔길, 호수 등과 어우러져 한폭의 풍경화를 연출한다. 바람이 불면 기념 조형물에서 파이프 오르간의 선율이 흘러 나온다.
시벨리우스 기념비는 핀란드가 낳은 여성 조각가 엘리아 훌티넨(Eila Hiltunen)이 시벨리우스 사후 10주년인 1967년에 제작했다. 그녀는 이 철제 조각을 전나무와 자작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북유럽 특유의 대자연의 일부로 형상화 했다. 특히 파이프 오르간을 닮은 외관은 시벨리우스의 음악세계로 인도하기 위해 디자인 한 것이다.
<>지난 1967년 9월 7일 그의 사후 10주년을 맞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기념비는 시벨리우스 팬들로 부터 “시벨리우스 기념조형물로 어울리지 않는다”며 비난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다행히 바로 그 옆에 설치한 ‘시벨리우스 두상’ 덕분에 성난 팬심을 달랠 수 있었다고 한다. 젊은 시절의 시벨리우스 얼굴을 표현한 두상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듯한 예술가의 초상으로 평가받으면서 시벨리우스 기념공원의 품격을 높이는 데 한몫하고 있다.
기념비가 탄생한지 52년이 지난 지금, 시벨리우스 기념공원은 헬싱키를 방문한 관광객들 사이에 필수코스로 자리잡았다. 취재차 방문했던 날에도 공원 입구에는 영어, 불어, 스페인어 등 다양한 국가의 언어로 제작된 안내문과 국기를 판매하는 상인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독일 뮌헨에서 출장왔다는 한 여성 관광객은 “이곳을 둘러 보지 않으면 헬싱키를 방문한 게 아니라고 할 정도로 유럽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라면서 “3박 4일간의 빠뜻한 일정이었지만 짬을 내서 오길 잘한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시벨리우스 기념공원을 나오는 길, 어디선가 아름다운 선율이 들려 오는 듯 하다. 푸른 숲과 잔잔한 호수, 서늘한 가을 바람이 빚어내는 풍경은 이 곳에서만 즐길 수 있는, 매우 특별한 여정이다.
/헬싱키=글·사진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사우나와 백야로 잘 알려진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는 지난 2012년을 기점으로 도시의 색깔을 바꾸어 가고 있다. ‘디자인을 일상 속으로’(Embedding Design in Life)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세계 디자인 수도로 뽑힌 데 이어 2014년 유네스코가 선정하는 디자인 창의도시로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헬싱키 시내를 거닐다 보면 핀란드 출신의 모더니즘 디자이너 알바 알토에서부터 엘리엘 사리넨이 설계한 중앙역 등 독특한 외관이 인상적인 건축물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그중에 하나가 2018년 러시아으로 부터의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개관한 ‘오디’ 도서관이다. 헬싱키 중심가에 자리한 오디는 도서관의 고정 관념을 깬 복합문화공간이라는 점에서 디자인 강국 핀란드의 저력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밤의 두려움은 영원히 사라졌고,
하늘도 기뻐 노래하네.
나 태어난 이 땅에 아침이 밝아오네.
핀란드여 높이 일어나라,
노예의 굴레를 벗은 그대,
압제에 굴하지 않은 그대,
오 핀란드, 나의 조국….” (핀란디아 중 일부)
![]() 젊은 시절의 시벨리우스 모습을 형상화 한 ‘시벨리우스 두상’ |
‘핀란드여 일어나라’(핀란디아 Op.26)로 불리는 이 교향시는 핀란드의 청정한 자연을 연상시키고 핀란드 민중들의 투쟁 정신을 고취시키는 북유럽의 서늘한 바람을 연상케 한다. 러시아로 부터 독립하기 전인 1900년 파리 세계 박람회에서 연주된 ‘핀란디아’는 핀란드인의 자주독립을 향한 의지를 전 유럽에 알린 역사적 사건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헬싱키 시내 곳곳에는 시벨리우스와 핀란디아를 추모하는 문화공간들이 들어서 있다. 핀란드 여행은 장 시벨리우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으로 시작한다고 할 만큼 마지막에는 시벨리우스로 이어진다.
‘시벨리우스 기념공원’(Jean Sibelius Park)이 예술작품을 통해 그의 삶과 정신을 입체적으로 표현한 미술관이라면 핀란디아 홀은 대표작인 ‘핀란디아’를 상징적으로 구현한 클래식 전용공연장이다. 핀란드가 시벨리우스를 핀란드의 브랜드이자 예술의 아이콘으로 가꾸는 것은 그의 남다른 위상 때문이다. 핀란드인들에게 시벨리우스는 단순히 음악가가 아닌, 민족주의자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시벨리우스 기념공원은 거장의 예술세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현장이다. 시벨리우스 기념공원은 헬싱키 시내에서 트램을 타고 30여 분 정도 달리면 도착하는 근교에 자리하고 있다. 공원 입구를 지나
![]() 600개의 강철 파이프로 만들어진 조형물 내부 모습. |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한무리의 관광객들이 몰려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공원의 ‘주인’인 시벨리우스의 기념비(Sibelius Monument)다. ‘Passio Musicae’로도 불리는 조형물은 추운 나라의 자작나무 숲을 연상케 하는 실버톤의 외관과 거대한 스케일이 어우러져 관광객의 시선을 압도한다.
시벨리우스를 기념하기 위해 설치된 조형물은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은 형상이 인상적이다. 속이 빈 600개의 강철 파이프로 만들어진 모습은 금방이라도 물결의 파동을 떠올리게 할 만큼 유연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높이 8.5m, 넓이 6.5m, 무게 24t 규모의 기념비는 인근의 나무, 잔디, 오솔길, 호수 등과 어우러져 한폭의 풍경화를 연출한다. 바람이 불면 기념 조형물에서 파이프 오르간의 선율이 흘러 나온다.
시벨리우스 기념비는 핀란드가 낳은 여성 조각가 엘리아 훌티넨(Eila Hiltunen)이 시벨리우스 사후 10주년인 1967년에 제작했다. 그녀는 이 철제 조각을 전나무와 자작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북유럽 특유의 대자연의 일부로 형상화 했다. 특히 파이프 오르간을 닮은 외관은 시벨리우스의 음악세계로 인도하기 위해 디자인 한 것이다.
<>지난 1967년 9월 7일 그의 사후 10주년을 맞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기념비는 시벨리우스 팬들로 부터 “시벨리우스 기념조형물로 어울리지 않는다”며 비난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다행히 바로 그 옆에 설치한 ‘시벨리우스 두상’ 덕분에 성난 팬심을 달랠 수 있었다고 한다. 젊은 시절의 시벨리우스 얼굴을 표현한 두상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듯한 예술가의 초상으로 평가받으면서 시벨리우스 기념공원의 품격을 높이는 데 한몫하고 있다.
기념비가 탄생한지 52년이 지난 지금, 시벨리우스 기념공원은 헬싱키를 방문한 관광객들 사이에 필수코스로 자리잡았다. 취재차 방문했던 날에도 공원 입구에는 영어, 불어, 스페인어 등 다양한 국가의 언어로 제작된 안내문과 국기를 판매하는 상인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독일 뮌헨에서 출장왔다는 한 여성 관광객은 “이곳을 둘러 보지 않으면 헬싱키를 방문한 게 아니라고 할 정도로 유럽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라면서 “3박 4일간의 빠뜻한 일정이었지만 짬을 내서 오길 잘한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시벨리우스 기념공원을 나오는 길, 어디선가 아름다운 선율이 들려 오는 듯 하다. 푸른 숲과 잔잔한 호수, 서늘한 가을 바람이 빚어내는 풍경은 이 곳에서만 즐길 수 있는, 매우 특별한 여정이다.
/헬싱키=글·사진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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