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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생 현장실습, 위험 작업 멋대로 투입
[직업계 고교생 꿈 짓밟는 현장실습 이대론 안된다 <1> 위험에 내던져진 아이들]
표준협약서에 수중작업 없고
따개비 제거는 청소년 금지활동
근로기준법·안전수칙도 안지켜
여수서 참변…근무시간 위반도
광주·전남 현장실습 전수조사를
2021년 10월 10일(일) 21:00
여수 해경은 지난 8일 여수시 웅천동 이순신 마리나 요트 정박장에서 해경 구조대원을 투입, 현장실습 중 잠수를 하다 숨진 특성화고 3학년 홍정운 군 사고와 관련한 현장 검증을 실시했다. 구조대원들이 홍군이 찼던 12㎏짜리 납 벨트를 건져올리고 있다.
특성화고 고교생이 또 현장실습 중에 숨졌다.

정부와 교육당국이 지난 2017년 산업체 현장실습 중 사망한 제주지역 고(故) 이민호군 사건을 계기로 새롭게 ‘학습형 현장실습’을 도입하는 등 관련 정책을 개선한다고 했지만 현장은 달라진 게 별로 없다.

어른들이 직접 해소해야 할 위험 노동을 스무 살도 채 안된 고교생에게 맡겼다. 작업현장에는 안전장치도 갖추지 않았고 예방하기 위한 관리와 감독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낯선 환경에 던져진 현장실습생은 홍군뿐만이 아니다.

전남에서만 47개 특성화고에 다니는 536명의 어린 학생들이 오늘도 현장실습생 신분으로 낯선 노동 현장으로 등교하고 있다.

10대 어린 노동자들이 위험한 환경에 던져진 것은 아닌 지 들여다봐야 한다. 꽃다운 학생들이 꿈을 키워보지 못한 채 목숨을 잃지 않도록 엄격한 감독시스템, 적정 노동환경, 안전한 작업 환경 등을 살펴야 할 시기다. 광주일보는 특성화고 학생들의 안전한 현장실습 환경을 위한 기획 기사를 연재한다.

지난 8일 오전 여수 해경 구조대가 여수시 웅천동 이순신 마리나 요트 선착장에서 잠수 작업 중 숨진 여수해양과학고 3학년 현장실습생 홍정운(18)군 사고와 관련, 현장 검증을 진행했다.

전문 구조대가 홍 군이 찼던 12㎏짜리 납 벨트를 바다에서 건져냈다. 구조대원이 공기통을 제거하고 수영복과 오리발만 착용하는 등 사고 당시 홍 군의 상황과 같은 조건을 만들어 납 벨트 착용 시연을 하니 몸이 바다 속으로 쑤욱 내려갔다.

구조대원은 “12㎏ 납벨트의 무게를 제대로 된 장비를 착용하지 않은 사람이 견디기란 불가능하다. 물 속에 그대로 가라앉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현장을 지켜본 홍 군 이모부는 “올라오려고 발버둥을 쳤을 거 아니냐”고 울먹였다.

홍 군은 지난 6일 오전 10시 40분께 잠수 장비를 착용하고 들어가 요트 바닥에 붙어있던 따개비 제거 작업을 하다가 숨졌다.

현장실습생인 홍 군은 사업주인 A씨의 지시를 받고 바다에 들어갔다. 스킨스쿠버, 잠수 자격증도 없었지만 요트에 걸쳐있는 사다리에 의지해 8.5m 깊이의 바다에 홀로 들어가 작업을 했다. 처음엔 수경만 착용하고 맨 몸으로 작업했다가 A씨가 구해온 공기통, 오리발, 납벨트를 착용하고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났다.

해경은 착용한 장비가 헐거워 고쳐메려고 공기통을 벗었다가 그렇게 된 것 같다는 A씨 진술을 확보했다. 무거운 납 벨트부터 풀어야 하는데 공기통을 먼저 벗다가 그렇게 된 것 같다는 게 현장 관계자들 전언이다.

홍 군이 지난 9월 27일 A씨의 S요트회사 현장실습생으로 일하면서 작성한 현장실습 표준협약서에는 수중 작업이 들어있지 않다.

NCS(국가직무능력표준) 직무내용 중 ‘보트선체 관리’ 학습모듈에 따른 ‘선체 유지 보수를 위한 환경 조성’ 내용.
홍 군의 표준협약서대로 실습이 진행되기는 커녕, 근로기준법과 청소년보호법, 현장 안전수칙 등 어느 것 하나 지켜지지 않았다는 게 속속 드러나고 있다.

당장, 광주일보가 확보한 홍군의 현장실습표준협약서 내 ‘현장실습 프로그램 구성 및 운영 계획서’는 오는 12월 31일까지 14주 간의 세부 실습 계획이 담겨있다. 홍군이 10여일간의 현장실습 기간 했다던 요트 청소와 페인트칠, 따개비 제거는 ‘보트선체 관리’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계획서상 5주차 프로그램이다. 게다가 따개비 제거는 정부가 10대 청소년들을 위한 현장실습 프로그램에서 금지하는 활동이다.

정부는 특성화고 국가직무능력표준(NCS) 방안에 따르면 ‘보트선체 관리’의 경우 수중에서의 작업을 금지하고 있다. 특히 선체에 부착된 따개비 등 생물 제거 활동은 금지한다고 명시됐다. 애초부터 현장실습생에게 시켜서는 안되는 일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근로기준법(65조)도 18세 미만인 자에게 ‘고압작업 및 잠수작업’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현장실습생을 상대로한 근무조건도 있으나 마나였다. 홍군은 사업체와 주 35시간, 일 7시간, 최저임금을 조건으로 협약을 체결했었다.

홍군 아버지 홍성기씨는 그러나 광주일보와의 취재에서 “아들의 퇴근 시간은 매일 밤 10시 전후로 거의 매일 같이 퇴근 시간에 맞춰서 데리러 갔다”고 말했다. 홍씨는 “아들은 출근 시간인 항상 9시보다 30여분 일찍 출근, 밤 10시 퇴근이 일상이었다”며 “매일 13시간 씩 바닷바람을 맞아가며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아들이 안쓰러웠지만 버텨내려고 하는 것 같아 속상해도 내색하지 않았다”며 자책했다.

해당 사업체도 1인 사업체로, 잠수 자격증도 없는 사업주가 실습을 지도·평가하고 안전을 관리하는 현장전문가로 지정되면서 허술한 현장 실습업체 지정에 대한 책임론도 제기되는 실정이다.

홍 군 사고를 계기로 광주·전남지역 모든 특성화고 현장 실습생과 현장 실습 제공기업들에 대한 전수 조사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남에서만 47개 특성화고에 다니는 536명의 어린 학생들이 위험한 노동 현장에 내몰릴 수 있다는 점에서다. 광주 13개 특성화고 학생들까지 포함하면 낯선 노동 환경에 던져진 실습생들은 더 늘어난다.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 관계자는 “조사 초기에 여러 문제상황들이 드러나고 있는 만큼 문제가 한 두 가지가 아닐 수 있다. 고인과 유가족분들을 위해서, 같은 처지에 놓인 현장실습생들을 위해서 진상을 명확히 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수 글·사진=김민석 기자 ms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