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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두 열사의 삶과 의혼-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우석대 석좌교수
2021년 07월 19일(월) 06:00
2017년 5월 18일, 망월동 국립묘지에서는 37주년을 맞는 5·18 광주항쟁을 기리는 기념식이 거행되었다. 기념사를 낭독하던 문재인 대통령은 잊어서는 안 될 5·18 민주열사들을 직접 호명하였다. 그중에 광주 대동고 출신 표정두 열사의 이름이 뚜렷하게 들렸다. 광주의 아들이자 대동고의 아들이던 표 열사는 그로부터 대한민국의 아들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민주주의의 제단에 분신으로 자신의 몸 전체를 바친 투철한 의혼이 다시 불꽃을 튀기는 기회를 맞게 되었다.

표 열사는 1963년 전남 신안군 암태도에서 태어났다. 혹독한 유신독재의 말기인 1979년 광주 대동고등학교에 입학하였고 80년 고교 2학년으로 광주항쟁의 한복판에서 양민 학살의 참극을 목격했다. 그리고 분노를 이기지 못해 직접 시위에 가담하여 계엄군과 맞섰다. 그러나 그는 다행히 목숨을 건져, 1982년 봄 대동고를 졸업했다.

무참히 짓밟힌 항쟁의 비극을 가슴에 묻고 1983년 호남대에 입학했으나, 2학기에 휴학하고 곧바로 군에 입대하였다. 85년 제대 후 복학한 뒤로는 학교생활보다는 야학의 강학으로 민주 의식 고취에 젊음을 바치고 있었다. 86년 1학기 등록을 못해 학교에서 제적당하자, 본격적으로 ‘무등터’ 야학 활동에 힘썼다. 하지만 노동 현장에서 직접 활동하느라 야학도 중단했다. 1987년 새해가 되자, 서울대생 박종철 열사가 남영동에서 물고문으로 숨졌다. 정국은 급변하면서 세상은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박종철 살인 규탄 학생운동이 고조되자, 노동현장을 뛰쳐나온 표 열사는 진저리나는 독재정권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다는 생각에서 몸을 던져서라도 독재를 종식시켜야 한다는 마음을 굳히기 시작했다. 서울로 올라온 열사는 독재자 전두환도 밉지만 그들을 뒤에서 후원해 주는 미국이 더 밉다고 여기고 미국을 향해 거대한 거부를 선언했다.

“박종철을 살려 내라!” “광주학살 책임져라!” “내정간섭 중단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인화물질을 몸에 뿌리고 불을 당긴 뒤, 광화문의 미국 대사관 쪽으로 향하다, 타오르는 불길을 안고 거리에 쓰러졌다. 아까운 생명을 민족과 국가를 위해 바치고 만 것이다. 이런 장렬한 열사의 죽음을 어떻게 잊고 지낼 수가 있겠는가! 그날이 바로 1987년 3월 6일이었으니, 방년 24세의 젊은 의혼은 그렇게 해서 이승을 떠나고 말았다.

고려병원의 중환자실에서 치료 중 8일 사망하자, 악독한 당국은 그날 바로 벽제 화장터에서 화장하여 바로 광주로 운구 도중 금강에 뼛가루를 흩어버리는 만행을 저지르고 말았다. 88년 봄 호남대 교정에서 1주기 추모제를 참으로 힘들게 거행할 때, 나는 고인의 스승이라는 이유로 함께 자리하여 꽃 한 송이 바치며 묵념을 올렸던 기억이 있다. 장례 전후의 모든 유품도 경찰이 압수해 가고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었다. 그 뒤에 남은 유품 몇 가지를 모아 학우들의 힘으로 망월동 민주 민족 열사 묘역에 안장하였다.

학생운동과 야학 및 노동운동 동지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1991년 5월 쌍촌동 호남대 교정에 열사 추모계승비가 세워졌다. 호남대 학생회의 힘도 컸다. 그동안 까맣게 잊고 지내던 표 열사. 2001년에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았고 2016년 5·18 밖의 5·18 관련 열사 등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표 열사도 조명되기 시작했다. 문대통령 호명 뒤에 그해 12월 호남대에서 명예졸업장을 수여받았고, 열사 계승비가 그동안 방치되어 있다가 5·18 기념 공원으로 이전하여 바르게 세워졌다.

금년 6·10항쟁 34주년을 맞아 민주열사들에 대한 국가적 현양 사업으로 표 열사에게는 민주화운동 유공자 국민훈장 모란장이 대통령으로부터 수여되었다. 죽지도 못한 스승이, 장렬하게 산화한 제자에게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그동안 부끄러움 때문에 표 열사에 대한 언급은 가능한 삼가 왔다. 이번 훈장 수여를 계기로 그를 다시 기억해야 할 때를 맞았다. 마침 표 열사와 함께 야학의 강학 활동을 함께 하면서 가장 가까이 지냈다는 ‘표정두열사 기념사업회 회장’ 서민수 씨로부터 표 열사가 내 제자임을 자랑스럽게 여겼고, 기회 있을 때마다 나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했다고 말해 주었다. 부끄러웠지만 나를 그렇게 잊지 않고 지냈다는 이야기를 듣자, 나도 그를 기억하고 생각해야겠다는 마음을 더욱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나라가 망하자 아편을 마시고 자결했던 지사(志士)이자 시인이었던 매천 황현 선생을 생각하면서 분신으로 민주주의를 찾으려던 표 열사를 다시 생각한다. 우리가 80년 초 독서회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책 읽기를 권장할 때 표 열사도 열심히 독서회 활동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보니, 더욱 그에 대한 그리움이 견디기 어려워진다.

※열사의 일생에 대해서는 그의 동기동창인 강기정 전 의원의 도움을 받았다.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우석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