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돌풍’ 그 끝은 어디일까
'이준석 돌풍 그 끝은 어디일까
발이 세 개 달린 솥 안에 맛있는 음식이 들어 있지만 솥뚜껑 위에는 무거운 돌이 얹혀 있다. 젊은 쥐들은 이걸 먹고 싶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어 늙은 쥐에게 묻는다. 그동안 늙어 쓸모가 없다고 늘 괄시를 받던 늙은 쥐는 젊은 쥐들의 간절한 요청에 방법을 일러준다. “솥의 발 하나가 있는 땅을 파 내려가거라. 솥은 자연히 그쪽으로 기울어질 것이고 그러면 솥뚜껑도 저절로 벗겨질 것이다.”
조선 시대 문인 고상안(高尙顔)의 ‘효빈잡기’(效嚬雜記)에 나오는 ‘늙은 쥐의 꾀’라는 이야기다. 아무리 초라해 보이더라도 노인들의 경험과 지혜는 존중해야 한다는 교훈이 담겨 있다. 고사성어 노마지지(老馬之智)도 마찬가지다. 춘추시대 재상(宰相) 관중(管仲)이 전쟁터에서 길을 잃었으나 늙은 말 한 마리를 푼 뒤 그 뒤를 따라감으로써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역시 노인들의 경륜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젊은이는 늘 철없고 심지어 버릇없는 것으로 치부돼 왔다. “요즘 것들은 싸가지가 없다.” “젊은이들이 하는 짓거리를 보면 요즘 말세(末世)야. 말세.” 주변에서 우리가 흔히 들을 수 있는 말들이다. 기원전 1700년경 수메르의 유적에서 발견된 점토판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적혀 있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고전 일리아스에도 “예전 장수들은 혼자서도 돌을 들어 던졌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둘이서도 들지 못할 정도로 나약하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한비자’(韓非子) 역시 이런 글을 남기고 있다. “지금 젊은 애들은 부모가 화를 내도 고치지 않는다.”
이처럼 ‘젊은이들에 대한 한탄’은 특별히 요즘 시대 들어 생겨난 게 아니다. 갑자기 현대에 들어와서 그렇게 ‘한심한 젊은이’들이 늘어났을 리 없다. 젊은이를 바라보는 노인들의 시각은 시대와 상관없이 언제나 그랬다. 어쩌면 세대 갈등은 인류의 숙명인지도 모를 일이다.
패기의 젊은이는 때로 만용을 부리기도 하지만 늘 불안과 걱정과 염려로 가득한 것이 늙은이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오죽했으면 필요 이상으로 남의 일을 걱정하는 마음을 ‘노파심’(老婆心)이라고 했겠는가.
‘탄핵의 강’ 단숨에 건너다
한데 그런 노파심을 일거에 지워 버린 일대 혁명과도 같은 사건이 일어났다. 제1야당의 새로운 당 대표로 30대 젊은이 이준석이 자신보다 스무 살 이상 많은 나경원·주호영 후보 등을 따돌리고 선출된 것이다. 참으로 ‘유쾌한 반란’이었다. 이 대표가 정치권에 입문한 건 2011년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에 의해서다. 하지만 2016년 탄핵 정국에서 탈당한 뒤 새로 만든 바른정당에 몸을 담았다.
이 대표는 20대 총선 때부터 계속해서 서울 노원 지역에 출마했으나 세 번 모두 낙선했다. 그에게 ‘마이너스 3선’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준석 돌풍’은 ‘아름다운 양보’ 하나만으로 반짝했던 ‘안철수 신드롬’과는 다소 결이 다른 듯하다. 그보다는 오히려 수없이 낙선하면서도 끝없이 도전했던 과거 ‘노무현 열풍’과도 닮은 구석이 있다. 기성 정치인에 대한 겁 없는 도전이라는 점에서는 반세기 전 김영삼·김대중의 ‘40대 기수론’을 떠올리게도 한다.
‘이준석 돌풍’은 이례적으로 ‘전당대회 흥행’을 이끌기도 했다. 여기에는 이 대표의 청산유수 같은 ‘말발’도 어느 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우리가 에베레스트를 원정하려면 동네 뒷산만 다녀서는 안 된다.” 이 대표의 경험 부족을 꼬집는 주호영 후보의 말에 그는 ‘팔공산만 다니던 분들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며 곧바로 받아쳤다. 당선이 쉬운 대구 지역구에서만 5선을 한 주 후보를 향해 멋지게 일격을 가한 것이다.
“이번 당 대표는 짐을 잔뜩 실은 화물트럭을 끌고 좁은 골목길을 가야 한다”라고 나경원 후보가 말했을 때도 ‘사실 제가 올 초에 주문 넣은 차는 전기차’라며 맞받았다. 그것은 ‘낡음’(화물차)과 ‘새로움’(전기차)의 상반된 이미지 대비를 통한 멋진 반격이었다. 계속되는 그의 거침없는 화법에 국민은 탄성을 지르며 환호했다.
그가 당 대표를 거머쥘 수 있었던 데는 이러한 ‘말발’이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승리 요인은 따로 있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바로 보수의 심장인 대구를 찾아 ‘탄핵이 옳았다’는 자신의 입장을 당당히 밝힌 것이 그것이다. 다소 무모할 수도 있는 승부수였다. 대구 지역은 국민의힘 당원이 가장 많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내년 대선도 알 수 없게 돼
더군다나 그는 박근혜에 의해 발탁된 ‘박근혜 키드’ 아니었던가. 자칫하면 ‘배신의 아이콘’으로 몰릴 수도 있었지만 그는 이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정공법이었다. 그의 이 같은 행보는 아직도 박근혜에 목을 매고 있는 일부 ‘꼴통 세력’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렇게 해서 그는 아무런 주저도 없이 언젠가는 넘어야 할 ‘탄핵의 강’을 단숨에 건너 버렸다.
고작 서른여섯 살의 젊은 정치인인 그는 한편으로 정치 입문 10년이 다 되어 가는 중진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그는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보수 국민의 민심을 정확히 읽고 있었다. 그가 이번에 기존의 정치 문법을 완전히 타파하면서 탄핵의 강을 단숨에 건너 버린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다. 우선 일거에 ‘꼰대 정당’의 이미지를 벗을 수 있게 됐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는 유신독재와 5·18 학살 등의 원죄를 안고 있는 제1야당을 결코 지지할 수 없었던 호남 지역 표심의 변화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국민의 힘이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났다고 여겨질 경우 호남의 민심은 서서히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만 되면 드디어 호남에서도 여야가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이 마련되는 셈이다.
하지만 그것은 반대로 집권여당에는 절체절명의 위기가 된다. 특히 ‘30년 집권의 꿈’(이해찬의 말)은커녕 당장 내년 대선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러니 민주당도 어떤 식으로든 크게 변화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노무현 대통령 당선으로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 시대가 종식되었듯이 우리 정치권도 뭔가 획기적으로 바뀌는 계기가 될지 모른다.
야권 통합과 정권교체라는 큰 과제를 안고 있는 이 대표는 나이 제한 때문에 내년 대선에서는 후보로 나설 수 없다. 그럼에도 그가 앞으로 정치권에 미칠 파장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지 않을까 생각된다. 벌써부터 ‘나비효과’는 나타나기 시작했다. 민주당 대권주자 가운데 가장 젊은 박용진(50·전북 장수 출신) 의원이 요즘 갑자기 뜨고 있는 것은 그러한 변화의 작은 예일 뿐이다. 어찌 됐든 이준석 돌풍은 근본적으로 낡고 구태의연한 한국 정치를 확 바꾸라는 온 국민의 요구일 것이다.
발이 세 개 달린 솥 안에 맛있는 음식이 들어 있지만 솥뚜껑 위에는 무거운 돌이 얹혀 있다. 젊은 쥐들은 이걸 먹고 싶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어 늙은 쥐에게 묻는다. 그동안 늙어 쓸모가 없다고 늘 괄시를 받던 늙은 쥐는 젊은 쥐들의 간절한 요청에 방법을 일러준다. “솥의 발 하나가 있는 땅을 파 내려가거라. 솥은 자연히 그쪽으로 기울어질 것이고 그러면 솥뚜껑도 저절로 벗겨질 것이다.”
이처럼 ‘젊은이들에 대한 한탄’은 특별히 요즘 시대 들어 생겨난 게 아니다. 갑자기 현대에 들어와서 그렇게 ‘한심한 젊은이’들이 늘어났을 리 없다. 젊은이를 바라보는 노인들의 시각은 시대와 상관없이 언제나 그랬다. 어쩌면 세대 갈등은 인류의 숙명인지도 모를 일이다.
패기의 젊은이는 때로 만용을 부리기도 하지만 늘 불안과 걱정과 염려로 가득한 것이 늙은이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오죽했으면 필요 이상으로 남의 일을 걱정하는 마음을 ‘노파심’(老婆心)이라고 했겠는가.
‘탄핵의 강’ 단숨에 건너다
한데 그런 노파심을 일거에 지워 버린 일대 혁명과도 같은 사건이 일어났다. 제1야당의 새로운 당 대표로 30대 젊은이 이준석이 자신보다 스무 살 이상 많은 나경원·주호영 후보 등을 따돌리고 선출된 것이다. 참으로 ‘유쾌한 반란’이었다. 이 대표가 정치권에 입문한 건 2011년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에 의해서다. 하지만 2016년 탄핵 정국에서 탈당한 뒤 새로 만든 바른정당에 몸을 담았다.
이 대표는 20대 총선 때부터 계속해서 서울 노원 지역에 출마했으나 세 번 모두 낙선했다. 그에게 ‘마이너스 3선’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준석 돌풍’은 ‘아름다운 양보’ 하나만으로 반짝했던 ‘안철수 신드롬’과는 다소 결이 다른 듯하다. 그보다는 오히려 수없이 낙선하면서도 끝없이 도전했던 과거 ‘노무현 열풍’과도 닮은 구석이 있다. 기성 정치인에 대한 겁 없는 도전이라는 점에서는 반세기 전 김영삼·김대중의 ‘40대 기수론’을 떠올리게도 한다.
‘이준석 돌풍’은 이례적으로 ‘전당대회 흥행’을 이끌기도 했다. 여기에는 이 대표의 청산유수 같은 ‘말발’도 어느 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우리가 에베레스트를 원정하려면 동네 뒷산만 다녀서는 안 된다.” 이 대표의 경험 부족을 꼬집는 주호영 후보의 말에 그는 ‘팔공산만 다니던 분들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며 곧바로 받아쳤다. 당선이 쉬운 대구 지역구에서만 5선을 한 주 후보를 향해 멋지게 일격을 가한 것이다.
“이번 당 대표는 짐을 잔뜩 실은 화물트럭을 끌고 좁은 골목길을 가야 한다”라고 나경원 후보가 말했을 때도 ‘사실 제가 올 초에 주문 넣은 차는 전기차’라며 맞받았다. 그것은 ‘낡음’(화물차)과 ‘새로움’(전기차)의 상반된 이미지 대비를 통한 멋진 반격이었다. 계속되는 그의 거침없는 화법에 국민은 탄성을 지르며 환호했다.
그가 당 대표를 거머쥘 수 있었던 데는 이러한 ‘말발’이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승리 요인은 따로 있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바로 보수의 심장인 대구를 찾아 ‘탄핵이 옳았다’는 자신의 입장을 당당히 밝힌 것이 그것이다. 다소 무모할 수도 있는 승부수였다. 대구 지역은 국민의힘 당원이 가장 많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내년 대선도 알 수 없게 돼
더군다나 그는 박근혜에 의해 발탁된 ‘박근혜 키드’ 아니었던가. 자칫하면 ‘배신의 아이콘’으로 몰릴 수도 있었지만 그는 이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정공법이었다. 그의 이 같은 행보는 아직도 박근혜에 목을 매고 있는 일부 ‘꼴통 세력’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렇게 해서 그는 아무런 주저도 없이 언젠가는 넘어야 할 ‘탄핵의 강’을 단숨에 건너 버렸다.
고작 서른여섯 살의 젊은 정치인인 그는 한편으로 정치 입문 10년이 다 되어 가는 중진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그는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보수 국민의 민심을 정확히 읽고 있었다. 그가 이번에 기존의 정치 문법을 완전히 타파하면서 탄핵의 강을 단숨에 건너 버린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다. 우선 일거에 ‘꼰대 정당’의 이미지를 벗을 수 있게 됐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는 유신독재와 5·18 학살 등의 원죄를 안고 있는 제1야당을 결코 지지할 수 없었던 호남 지역 표심의 변화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국민의 힘이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났다고 여겨질 경우 호남의 민심은 서서히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만 되면 드디어 호남에서도 여야가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이 마련되는 셈이다.
하지만 그것은 반대로 집권여당에는 절체절명의 위기가 된다. 특히 ‘30년 집권의 꿈’(이해찬의 말)은커녕 당장 내년 대선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러니 민주당도 어떤 식으로든 크게 변화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노무현 대통령 당선으로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 시대가 종식되었듯이 우리 정치권도 뭔가 획기적으로 바뀌는 계기가 될지 모른다.
야권 통합과 정권교체라는 큰 과제를 안고 있는 이 대표는 나이 제한 때문에 내년 대선에서는 후보로 나설 수 없다. 그럼에도 그가 앞으로 정치권에 미칠 파장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지 않을까 생각된다. 벌써부터 ‘나비효과’는 나타나기 시작했다. 민주당 대권주자 가운데 가장 젊은 박용진(50·전북 장수 출신) 의원이 요즘 갑자기 뜨고 있는 것은 그러한 변화의 작은 예일 뿐이다. 어찌 됐든 이준석 돌풍은 근본적으로 낡고 구태의연한 한국 정치를 확 바꾸라는 온 국민의 요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