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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해 호랑이 이야기
주 필
2022년 01월 27일(목) 00:00
며칠 후면 우리 민족 최고 명절인 설이다. 이날부터 호랑이해 임인년(壬寅年)이 비로소 시작된다. 올해는 대통령을 뽑는 해이기도 하다. 그래 이번 글에서는 호랑이 이야기로 시작해 대선 이야기로 마무리할까 한다.

우선 순우리말처럼 보이는 호랑이(虎狼이)는 의외로 한자어다. 원래 범(虎)과 이리(狼)를 뜻했지만 나중에 순우리말인 범을 대체하는 말로 자리 잡았다. 호랑이 하면 생각나는 말은 호가호위(狐假虎威)다.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려 호기를 부린다는 뜻이다.

옛날 옛적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게 될 위기에 처한 여우가 순간적으로 기지를 발휘해 호랑이에게 말한다. “잠깐만 기다리게. 이번에 나는 천제(天帝)로부터 백수의 왕에 임명되었네. 못 믿겠으면 나를 따라와 보더라고. 나를 보면 모든 동물이 두려워서 달아날 테니.” 이 말을 들은 호랑이가 여우 말 대로 해 보니 과연 그랬다. 사실 짐승들은 여우 뒤에 있는 호랑이를 보고 달아난 것이었지만, 호랑이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다 알다시피 이러한 고사에서 비롯된 ‘호가호위’는 남의 세력을 빌어 위세를 부릴 때 쓰는 말이다. 예를 들자면 ‘윤핵관’(윤석열 후보의 핵심 관계자)이란 말도 그런 경우일 것이다. 물론 윤핵관의 실체가 정치인인지 도사인지, 혹은 웬만한 무당보다 낫다는 후보 부인인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백수의 왕이 담배를 피운 내력



우리는 해가 떴는데도 갑자기 비가 내릴 때 흔히 ‘호랑이 장가간다’라고 한다. 이때 잠깐 내리는 비는 ‘여우비’라 한다. 다음은 이와 관련된 설화다. 옛날 꾀가 많은 여우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여우는 숲속의 왕인 호랑이와 결혼을 해서 그 권력을 차지하고자 했다. 그래 본격적으로 호랑이를 꼬시기 시작했고 결국 호랑이는 여우한테 넘어가게 된다. 한데 여우를 남몰래 짝사랑하며 지켜보던 구름이 호랑이와 여우의 결혼식을 보고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그 눈물이 비가 되어 내린다. 하지만 사랑했던 여우의 결혼식을 자신의 눈물 때문에 망치고 싶지 않았던 구름은 애써 웃으며 조용히 비켜난다.

슬픈 이야기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의 행복을 빌어 주며 아픔을 참고 물러난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특히 서로 헐뜯고 폭로하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우리의 대선판과 비교해 보면!

우리는 이 같은 옛이야기를 시작할 때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에’라는 표현을 쓴다. 일본에서는 같은 뜻으로 ‘무카시 무카시’(むかしむかし, 昔昔)라 한다. 영어권에서는 ‘원스 어폰 어 타임’(Once Upon A Time)이나 ‘롱 롱 타임 어고우’(long long time ago)를 쓸 것이다. 몹시 건조한 저들의 말에 비해면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에’라는 표현은 또 얼마나 멋진가.

한데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우리나라에 담배가 들어온 것이 기껏해야 조선시대 중기일 텐데 그게 그리도 옛날 옛적인가? 그렇다면 일단, ‘쌍팔년’이란 말을 생각해 보자. 8이 두 개 겹치는 단기 4288년, 서기로 하면 1955년이다. 그리 오래된 옛날이 아닌데도 사람들은 이렇게들 말하곤 했다. “내가 쌍팔년도에는 한가락 했지.” 옛날에는 괜찮았다는 뜻이다. 지금으로부터 70년도 되지 않는 과거를 아주 오래전으로 인식한 것이다. 그렇다면 호랑이 담배 먹던 조선시대 중기는 그야말로 아주 옛날 옛적 아닌가.

여기서 다시 재미있는 설화 하나 들어보자. 옛날 홀어머니를 모시고 가난하게 사는 효자가 있었다. 어머니가 병이 들었는데 어떤 도사가 와서 개 100마리를 삶아 드리면 병이 낫는다 했다. 한데 어떻게 개를 100마리나 잡는다는 말인가. 도사는 호랑이로 변신했다가 인간으로 돌아올 수 있는 부적을 주었다. 이윽고 효자가 100번째 개를 잡으러 나가기 위하여 호랑이로 변신했을 때였다.

우연히 이를 보게 된 아내가 너무 무서운 나머지 부적을 태워 없애 버렸다. 다시 사람으로 되돌아올 수 없게 된 호랑이는 산으로 들어가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훗날 벼슬아치가 되어 호랑이를 잡으러 나온 어릴 적 친구를 만나게 된다. 호랑이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친구로부터 담배 한 대를 얻어 피운다. 이것이 바로 호랑이가 담배를 먹게 된 내력이다.

호랑이 이야기는 여기서 그만하고 이제 대선 이야기로 넘어가 본다. 지난번 칼럼에서 나는 ‘거기서 거기, 찍을 사람이 없다’라고 썼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흘렀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일반적으로 ‘비호감 선거’라는 여론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그동안 윤석열 후보 부인 김건희 씨의 ‘일곱 시간 통화 녹취록’과 이재명 후보의 ‘형수 욕설 녹취록’이 공개됐다. 거대 양당이 ‘진흙탕 싸움’을 벌인 것이다.



범띠 안철수와 용띠 이재명



이 때문에 어부지리(漁夫之利)로 덕을 본 이는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다. 안 후보는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20% 가까이까지 치솟더니 최근 조금 떨어지긴 했지만 한동안 두 자릿수를 유지했다. 야권 대선 후보 단일화 선호도에서는 안 후보가 다른 후보를 앞서기도 했다. 또한 ‘안일화’(안 후보로 단일화)가 이뤄질 경우 거대 양당 후보보다 당선 가능성이 높게 나온 여론조사도 있다. 아마도 비교적 흠결이 없고 깨끗하다는 이미지 때문인 듯하다.

안 후보는 62년생으로 호랑이띠이며 윤 후보는 60년생으로 쥐띠다. 의외로(?) 나이가 어린 이 후보는 64년생으로 용띠다. 만약 호랑이띠인 안 후보가 야권 단일 후보로 나설 수만 있다면, 용띠인 이 후보와 함께 말 그대로 용호상박(龍虎相搏)의 혈투를 벌이게 될 것이다. 하지만 단일화라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 정치사에서는 1997년 김대중·김종필의 ‘DJP연합’과 2002년 노무현·정몽준 후보 간 단일화 정도가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히지만 이는 이미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옛이야기일 뿐이다. 다만 단일화는 역대 대선 때마다 선거판을 뒤흔들기는 했다. 그리고 ‘아름다운 단일화’를 이룬 후보가 승리를 쟁취했다.

과연 윤 후보와 안 후보는 서로 손을 마주 잡을 수 있을까. 아마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또 다른 상황을 가정해 보자. 좀처럼 상승 기류를 타지 못하고 있는 이재명 후보 측에서 위기를 느끼고 막판에 안철수 후보 쪽에 ‘러브 콜’을 보내는 시나리오. 기적 같은 일이겠지만 만약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의 단일화가 성사된다면, 운룡풍호(雲龍風虎)의 기세가 될 수도 있겠다.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오르는 용과 바람을 타고 내달리는 호랑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