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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 노모와 히말라야 순례…“열정은 나이들지 않아요”
[2017년 순례 과정 담은 다큐영화 ‘카일라스 가는 길’ 개봉 정형민 감독]
2만km 거리 75일 소요…해발 5100m 사원서 세월호 희생자 위해 기도
무기력한 노인 이미지 바꾸고 싶어…다음 목표는 인도 보드가야서 ‘나눔’
2020년 09월 23일(수) 00:00
정형민(오른쪽) 감독과 어머니 이춘숙씨가 티베트 카일라스산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영화사 진진 제공>
“아들, 우리 이제 어디에 가니?”

영화 ‘카일라스 가는 길’ 정형민(51) 감독은 2014년 어머니가 한 말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여든의 몸을 이끌고 험난한 히말라야 순례길을 다녀온 뒤 한 말이었다. 현재진행형인 어머니의 열정 앞에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다.

지난 3일 영화 ‘카일라스 가는 길’이 개봉했다. 2017년 정 감독과 어머니 이춘숙(86·당시 83)씨가 함께 티베트 카일라스 산을 오르게 된 과정을 엮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21일 광주극장에서 열린 GV(감독과의 대화)에 앞서 정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카일라스 산은 티베트 불교에서 ‘수미산’, 우주의 중심이자 가장 성스러운 곳으로 여겨져요. 어머니가 나이가 있으시니 ‘마지막 순례겠구나’ 싶었어요. 독실한 불교 신자시기도 했고, 또 2016년 세월호 사태로 마음 아파하시며 늘 기도를 올리고 싶어 하셨어요. 카일라스 산을 목적지로 정한 이유입니다.”

정 감독과 이씨는 2017년 봄 10일에 걸쳐 러시아 바이칼 호수에 들르며 여정을 시작했다. 같은 해 9월 이들은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출발, 고비 사막을 지나 알타이 산맥을 따라 카자흐스탄, 키르기스탄, 타지키스탄을 거쳤다. 이어 파르마 고원을 넘어 타클라마칸 사막을 가로지르며 카일라스 산을 향했다.

해발 5100여m에 있는 디라북 사원에 들러 기도를 올리고, 히말라야를 넘어 네팔 카트만두에서 비행기를 타고 귀국하기까지 육로 이동 거리만 2만여km, 기간은 75일이 걸렸다.

“많은 분이 어머니를 걱정하며 만류했지만, 개인적으로 걱정은 없었어요. 정신력이 강한 분이시거든요. 당시에도 뒷산에 쓰러진 나무를 끌고 내려와 도끼로 장작을 패고, 톱질해서 구들방을 데우실 만큼 건강하셨죠. 다만 고산증과 체력이 걱정이었는데, 오히려 어머니가 힘들어하는 저를 끌고 다니셨습니다.”

이씨는 1930년대생으로선 흔치 않게 대학(수도여자사범대학·현 세종대)을 나왔으며, 농사교도소 초대 공무원이자 과거 농촌계몽운동에 힘쓰기도 했다. 오지 탐험은 이씨에게 젊은 날의 열정을 일깨워 준 매개체가 됐다.

이들 모자의 ‘순례길’은 지난 2014년 히말라야 까그베니 마을(해발 2800m)부터 시작했다. 2015년에는 네팔 무스탕 왕국(해발 4000m)도 찾았다. 모두 티베트 불교 성지로 불리는 곳들이다.

“일본 온천, 제주도 등 여행을 한사코 거절하시던 어머니였는데, 600년 된 히말라야 사찰을 이야기 했더니 ‘그곳에 가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렇게 우리들의 ‘순례’가 시작됐지요.”

영화 제작 취지를 묻자, 정 감독은 “노인들이 다큐, 방송, 미디어에서 보듯 무기력한 모습만 있는 게 아니란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답했다.

“고향 경북 봉화 산골에서 보는 어르신들은 사실 젊은이들보다 더 열심히 사십니다. 여전히 열정적이고, 치열한 삶을 사는 분들이지요. 우리들의 행복한 오늘날은 이같은 70~80대 어머니들의 ‘불굴의 정신’을 배경으로 완성됐으리란 생각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정 감독에 따르면, 올해 87세를 맞은 이씨의 마지막 소원은 인도 보드가야에서 쌀과 담요를 나누는 것이다. 보드가야는 세상에서 가장 굶주리는 사람이 많은 곳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소원을 이루기 위해 노령연금을 한푼도 빠짐없이 모으고 있다고 한다.

정 감독은 또 90세를 앞둔 어머니의 마지막 시간을 기록하며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 고민하는 영화 ‘소멸해가는 당신을 위하여’를 제작하고 있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