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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과 건축의 만남…예술과 인간의 만남을 이루다
(5)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 : 세계 최초 도자미술관
2020년 03월 23일(월) 00:00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의 돔 하우스 외벽은 5000장의 사각형 타일(48x48cm)로 마감돼 화려하면서도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 타일을 구워서 제작한 외벽(Fired Painting)은 미술관의 소장품 1호이기도 하다. <사진·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
지난 18일 경남 김해시 진례면에 들어서자 알록달록한 조형물들이 눈에 띈다. 얼추 성인 어른 키보다 훨씬 큰 항아리 모양의 도자기들이다. ‘코로나 19’ 때문에 인적이 드물었지만 관광객으로 보이는 젊은 연인이 도자기를 배경으로 사진 촬영에 바쁘다. 이처럼 김해의 문화 1번지로 불리는 ‘도자기거리’는 한폭의 그림 같다.

자동차를 타고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자 모던한 분위기가 인상적인 건물이 반갑게 맞는다. 세계 최초의 도자미술관인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이하 클레이아크 미술관)이다. 멀리서도 ‘존재감’을 드러내는 클레이아크 타워와 메인 건물인 돔 하우스 등이 듬성 듬성 펼쳐져 마치 테마파크에 온 느낌이 든다.

지난 2006년 ‘흙과 건축의 만남’을 모토로 문을 연 클레이아크는 흙을 뜻하는 클레이(Clay)와 건축(Architecture)을 의미하는 아크를 합성했다. 단순히 흙과 건축 뿐 아니라 과학과 예술, 교육, 산업의 협력을 통해 건축도자 분야의 미래를 지향하자는 게 설립 취지다. 미술관은 2만5천평의 부지에 지하 1층 지하 2층 연건평 1천64평 규모로 클레이아크 타워, 2곳의 전시관(돔하우스, 큐빅하우스), 기계실, 편의시설 등을 갖추고 있다. 또한 세라믹창작센터에는 국내외 도예작가들이 창작활동을 위한 ‘아티스트 인 레시던시’, 도자체험관 등이 조성돼 있다.

클레이아크 미술관이 김해에 터를 잡게 된 건 지역의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다. 김해는 남해안 일대의 패총문화권에서 ‘김해토기’가 출토되는 등 철기시대 부터 도자기 문화가 번성했다. 특히 조선시대의 분청사기인 ‘김해찻사발’은 가야 토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결정체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시절 도공들이 일본으로 납치되면서 김해 도요의 맥은 끊기게 됐다. 다행히 1980년대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대두되면서 현재 진례에는 100여 군데의 도요가 모여 있다.

이처럼 다른 지역에서는 찾기 힘든 거대한 도예촌이 형성되자 지역사회 일각에선 관광자원으로 활용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도자는 대중들이 가까이 하기엔 먼, 마니아들이 주로 선호하는 ‘골동품’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김해시는 ‘전통의 현대화’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지역의 역사와 미래를 위한 거점 공간을 건립하기로 방향을 세웠다. 특히 자연친화적인 흙과 예술적 감성을 가미한 건축을 도입해 단절된 도자문화의 정신을 이어가자는 데 뜻을 같이했다.

지난해 건축도자의 본질을 조명한 기획전 ‘클레이아크를 말하다’에 선보인 신상호 작 ‘우화 1’
김해시는 ‘도자미술관 프로젝트’를 구현하기 위해 현대도예가 신상호(전 홍익대 도예유리과 교수)에게 SOS를 구했다. 신 작가는 당시 김해시장의 간곡한 부탁에 ‘건축도자 미술관’이라는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그저 그런 미술관으로는 김해로 사람들을 불러 들이기 힘들다고 판단한 그는 무조건 새롭고 특별한 공간으로 건립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세계 최초의 건축도자미술관을 실현하기 위해 국제총회를 개최해 국내외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했다. 주로 유명 건축가들에게 의뢰하는 여타 미술관과 달리 클레이아크는 신 작가의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김해시와 합작한 관급공사로 탄생했다. 이런 인연으로 신 작가는 클레이아크 미술관 초대관장을 맡았다.

사실 클레이아크 미술관를 둘러 보면 곳곳에서 예술성이 묻어나 감탄을 자아낸다. ‘관’(官)이 발주한 건물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독특한 조형성이 느껴진다. 국내 보다는 해외에서 더 유명하고 국내외 도예가들이 레지던시공간인 세라믹창작센터에 머물고 싶어 할 정도다.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 전경.
클레이아크 미술관에서 인상적인 건물은 단연 돔 하우스다. 미술관 초입에 자리한 돔 하우스는 5000장의 사각형 타일(48x48cm)이 외벽을 감싸고 있어 보는 이의 시선을 압도한다. 신 작가의 작품 ‘Fired Painting’(구은 그림)인 외벽은 미술관의 소장품 1호로 건물 그 자체가 건축이자 회화이다. 한국의 전통적인 색동과 원시미술의 색감을 모티브로 수작업한 타일들을 1250도의 고온에서 4~5번 구워내 시간이 흘러도 색이 변하지 않는다. 흙으로 구운 그림이라는 제목 그대로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 작품이다.

미술관의 기획전시실인 돔 하우스의 진가는 건물 안에서도 빛을 발한다. 밖에서 보면 돔 양식이지만 내부공간은 속이 텅빈 도넛 형태다. 원래 김해시의 컨셉은 천창이 없었지만 신 작가의 제안으로 유리 덮개(돔)를 설치해 날씨와 상관 없이 작품을 전시할 수 있다. 날씨가 맑은 날, 유리 돔으로 보이는 하늘은 말 그대로 ‘예술’이다.

2층 전시실은 홀의 벽을 타고 나선형으로 설계된 계단으로 올라가면 나온다. 이 때문에 관람객은 한발짝씩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전시장이 점점 팽창하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2층에 서면 유리 돔에서 비치는 자연광과 원형 구조가 어우러져 경건함 마저 느껴지기도 한다.

미술관 홍보 담당 안세훈씨와 함께 돔 하우스에서 나와 큐빅하우스로 향했다. 3개의 전시장으로 꾸며진 이 곳은 개관 이후 수집해 온 소장품에서 부터 기획·특별전시관, 키즈 스튜디오, 키즈라이브러리, 강의실, 워크숍실이 들어서 있다. 기획전시관에는 지난 1~2월 세라믹창작센터에서 38일간 머물며 창작활동해온 국내외 레지던시작가 16명(한국, 중국, 대만, 일본)의 성과물을 모은 ‘2020 아시아 국제도자교류전’이 오는 5월5일까지 열린다.

어린이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거인 피자’(Giant Pizza)전.
이와 함께 클레이아크 미술관은 연중 전시와 체험, 놀이를 통해 가족 단위 관람객들을 불러 들이고 있다. 도자를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일일도자체험프로그램, 독창적인 나만의 작품을 만드는 아트키친, 학교연계 맞춤식 프로그램, 진로체험 프로그램 등 학생은 물론 남녀노소가 즐길 수 있는 콘텐츠로 운영한다. 특히 지난해 개최한 ‘거인 피자’는 김해는 물론 부산, 울산 등 경남 전역에서 관람객들이 몰려 들 정도로 ‘대박’을 기록했다. 윌리엄 스터이그의 동화 ‘아빠랑 함께 피자놀이를’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거인 피자는 일상의 사물들을 활용해 대형피자를 만들어 보는 체험프로그램으로 클레이아크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지난해 입장객은 11만 4000여 명, 체험·교육프로그램 참가자는 14만 2000여 명에 달한다. 특히 미술관 주변의 자연환경과 주요 시설들을 연결해 꾸민 산책로는 김해시민들의 주말 나들이코스로 인기를 끌고 있다.

/김해=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