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남산의 부장들’이 남긴 씁쓸함에 대하여
2020년 01월 28일(화) 00:00
[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설날 연휴에 이병헌·이성민·곽도원·이희준 등이 열연한 우민호 감독의 영화 ‘남산의 부장들’을 보았다. 벌써 300만 명 관객을 돌파한 이 영화는 10·26 사건을 포함한 박정희 대통령 최후의 40일을 다루고 있다. 한데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와 경호실장 차지철의 권력투쟁을 다루고 있을 뿐 아니라 미스터리 김형욱 실종 사건을 포함하고 있어서 흥미롭다. 이 영화는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뿐 아니라 2005년 개봉했던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 사람들’보다 훨씬 더 정사에 가까운 대본에 바탕을 두고 있어서 정제되고 깔끔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영화를 본 뒤 씁쓸해하는 듯하다. 이 씁쓸함의 정체는 무엇일까?

첫째, 이 영화는 10·26 사건의 직접적인 배경으로 신민당 김영삼 총재 문제와 부마민주항쟁에 대한 평가 및 대응 방식을 둘러싼 의견의 차이를 다루고 있다. 차지철은 계엄령과 공수부대 동원을 통한 강경 진압을 주장하였고 박정희는 이런 의견에 동조하였는데, 김재규는 이런 방식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의 결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정치적 의견의 차이에 더한 심리적 분노였던 것으로 보인다. 경호실장의 월권과 자신에 대한 모욕에 대해 그는 분노하고 있었다. 그가 대통령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은 “대국적으로 정치를 하라”는 것이었다.

이 영화에서는 거사 직전에 김재규가 그의 부하들에게 그의 결심을 전달하는 장면이 있다. 그들은 김재규의 인격을 믿고 그의 명령에 따랐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들의 대화를 보면 당시 경호실의 월권이나 대통령의 판단에 대한 불만을 공유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 점에서 10·26 이전에 김재규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밝히거나 부하들과 공유하는 장면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부산이나 마산 시민들도 이 영화에서 부마민주항쟁이 좀 더 많이 그리고 자세히 다루어지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둘째, 이 영화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그의 정치 철학보다는 사람을 다루는 기술을 더 잘 보여 주었다. “각하, 제가 어떻게 하길 원하십니까”라는 질문에 그는 항상 답을 말하지 않고 “임자 하고 싶은 대로 해. 임자 옆에 내가 있잖아”라고 말한다. 그를 따르던 최고위급 부하들은 그런 무한 신뢰의 언사 속에 토사구팽이라는 독이 들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영화는 또한 대통령의 통치자금이 중앙정보부조차 잘 모르는 다른 인물이나 조직에 의해 관리되고 있었다는 것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이 영화가 보여 주듯이 유신체제의 골칫거리 중 하나가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박정희 체제를 정면으로 비판한 김형욱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였다. 이 영화에서 김형욱은 파리 근교의 양계장에서 10·26이 일어나기 약 2~3주 전에 살해된 것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그의 죽음에 관한 다른 주장들은 다루어지지 않았다. 김재규는 전임 정보부장 김형욱의 운명을 지켜보면서 자신도 이런 운명에 직면할 것이라는 불안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김형욱이 정보부장으로 일하던 시기는 세계적 냉전과 함께 남북 간 체제 경쟁이 극심하게 진행되던 시기였다. 그와 관련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1966년 7월, 북한이 런던월드컵에서 이탈리아를 이기고 8강에 진출하자 정부 당국자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은 특별조사반을 구성하여 진상 조사를 벌이면서, 축구협회 지도자들과 상의하여 축구단을 직접 만들어 운영하기로 하였다. 음지에서 일하면서 양지를 지향한다는 슬로건을 따라 이름을 ‘양지’라고 정했다. 이제는 한국 축구의 전설이 된 선수들이 핵심 멤버였다. 1967년 봄부터 1970년까지 활동한 이 축구팀은 1968년에 만들어진 실미도 부대와 함께 김형욱의 주요 작품이었다. 그만큼 그는 저돌적이었지만, 토사구팽의 운명을 피할 순 없었다.

셋째, 이 영화에서는 10·26 사건과 김재규 거사의 중요한 배경으로 갈등이 심했던 한미 관계를 다룬다. 이 영화에서는 카터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나 남북 대화 제안을 둘러싼 문제, 특히 1979년 6월 말에 이루어진 한미 정상회담은 다루지 않는다. 대신 9월부터 심화된 정치적 위기에 관한 의견 교환, 특히 주한 미국 대사의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거부감을 통해 미국의 한국 정치의 민주화에 대한 희망과 압력이 전달되고 있다. 미국의 대한 정책은 한국 현대사를 다루는 영화가 늘 봉착하는 블랙홀이다. 국정원 과거사위원회에서도 이 문제를 시원하게 해결하지 못했다.

이 영화의 주인공 김재규는 1980년 광주 5·18이 한창이던 1980년 5월 24일 사형이 집행되었다. 그는 광주 시민들의 민주항쟁을 알고 갔을까? 이 영화는 한국현대사에서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많은 문제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굴곡진 한국현대사와 1960~70년대 경제 성장 및 권위주의 독재가 남긴 어두운 그림자가 이 영화가 주는 씁쓸함의 원천인 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