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과 ‘정치꾼’, 그리고 문화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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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과 ‘정치꾼’, 그리고 문화판
2019년 12월 11일(수) 04:50
38년 동안 잠들어 있던 비자금이 발견된다. 오랫동안 집권당의 뒷돈 역할을 했던 자금이다. 기자들이 이를 뒤쫓는 과정에서 지금도 한 기업체의 돈이 여당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여당은 비자금을 ‘개인 비리’로 무마시키려 하고, 주인공인 기자는 정권 중심으로 파고들며 ‘진실’을 쓰려 한다. 최근 흥미롭게 본 일본 드라마 ‘톱리그’ 이야기다.

‘톱리그’는 정치부 기자 중 일부를 말한다. 총리나 관방대신과 직접 통화가 가능하고, 정례 브리핑이 아닌 사석에서 ‘호출’을 받고 만나, 또 다른 정보를 들을 수 있는 ‘이너 서클’이다. ‘지금까지와는 보는 풍경이 달라지는 자리’인 ‘톱리그’에 진입하며 주인공은 전혀 다른 세상을 만난다. 드라마엔 살인 등 심장이 ‘쫄아드는’ 에피소드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기자의 역할이나 지면 제작 등과 관련해 뜨끔해지는 장면도 많다. 배경은 일본이지만 우리 상황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드라마엔 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다음 선거를 생각하면 정치꾼, 다음 세대를 생각하면 정치인이다.” 곱씹어 보게 되는 말이다. 정치꾼은 선거의 유·불리만을 따지고 ‘표’를 의식해 말을 바꾼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정두언 의원은 어느 인터뷰에서 말했다. “권력을 잡는다는 건 두 가지 의미가 있어요. 한번 누려 보겠다. 한번 바꿔 보겠다.” 정확한 말인 것 같다. 문제는 바꾸겠다는 ‘방향성’이다.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 버리는 경우도 많으니 말이다.

요즘 빈번하게 받는 문자가 있다. 나만 그런 게 아닐 터다. 내년 총선 출마를 염두에 둔 이들의 출판기념회나 현직 의원들의 ‘성과’를 알리는 문자다. ‘정치의 계절이 돌아왔구나’ 싶으면서도 ‘지역 발전과 지역민에 대한 봉사’에 대해 말하는 그들의 각오와 업적이라는 것에 딴지를 걸고 싶어진다.

총선 출마 정치인들뿐만이 아니다. 역시 선거를 통해 수장이 된 자치단체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선거 운동 기간엔 갖가지 공약을 내놓고, 임기가 시작되면 그럴듯한 ‘청사진’을 펼쳐 보이지만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다.

임기 1년 반을 넘긴 광주시장은 어떨까. 적어도 ‘문화’ 부문에서는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몇 가지 사례들을 보면, 한번 묻고 싶어진다. 광주시장은 문화에 대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아시아문화중심도시를 지향하는 광주시장의 역할을 인지하고 있는지.

문화계의 오랜 요구를 받아들여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할 문화경제부시장 도입을 공약으로 내걸고 첫 부시장을 임명한 후 1년 3개월여 만에 ‘손바닥 뒤집듯’ 바꿔 버린 문화경제부시장이 대표적이다. 물론 지금도 직책은 살아 있지만 문화와 동떨어진 인물을 앉혔기 때문이다. 항의하는 문화단체들의 성명에는 문화경제부시장의 책무를 ‘중앙 정부와의 관계, 예산 확보, 일자리 창출’ 등으로 규정했다. 문화에 대한 ‘철학’ 부재와 함께 ‘경제’에만 올인하는 모습을 보여 주며 실망감을 안긴 것이다.

‘폴리 전면 재검토’와 관련된 언사도 마찬가지다. 물론 지속 사업을 ‘관성적’으로 이어받을 필요는 없다. 문제가 있다면 과감히 정리하는 것도 필요하다. 문제는 해결 방법이다. 민주적인 논의·평가 과정 없이 전 직원이 듣는 간부회의에서 ‘전면 재검토’를 언급하면, 실무자들은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시장의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넌 대답만 하면 돼)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효과적인 개편안을 찾으려 했다면 이 방법은 옳지 않다.

문화계에선 시장이 문화예술 중 유독 ‘국악’에만 관심이 많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70석 공연장에서 비슷비슷한 프로그램으로 10개월간 130회 공연한 국악 상설공연 예산이 14억 원이다. 시장 ‘관심 사항’이라는 이유로 갑작스레 주 1회에서 5회로 늘리고 ‘올인’하는 게 맞나 싶다. 특정 장르 ‘쏠림’은 더더욱 안 될 일이다.

시장의 ‘인사’와 관련해서는 문화계뿐만 아니라 박광태 전 시장 사례처럼 전 분야에서 실망감을 안긴 경우가 많았다. ‘소문으로 들려오던’ 인물이 그대로 자리에 앉으면서 허탈감을 안기기도 했다. 그래서 올해 임기가 끝나는 몇몇 시립 예술단체장 자리도 혹시 특정인을 염두에 둔 건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만약 누군가 시장에게 줄을 대려 한다면 시장은 ‘그 사람’부터 가차 없이 쳐내야 할 일이다.

문화계 수장들도 마찬가지다. ‘차기’를 노리다 보면 자꾸 ‘눈앞’만 보게 되고, 소신 있는 운영은 어려워진다.

우리는 보통 ‘사람은 좋은데’라는 말을 많이 한다. 생각해 보면 요즘 세상에 ‘나쁜 사람’은 별로 없다. 난 부끄러움을 모르고, 염치를 모르는 사람이 세상을 망친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부터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겠지만.

국회의원이든, 자치단체장이든, 문화기관 수장이든 부끄러움을 아는 이들이 그 자리에 앉길 바란다. 다음 선거(임기)가 아닌, 다음 세대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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