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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남 산악인, 중국 ‘하바설산’에 오르다] <하>베이스캠프서 정상까지
설산 마음에 담으며 비우는 삶 배우다
2019년 09월 16일(월) 18:47
영·호남 합동 하바설산(哈巴雪山)원정대 대원들이 지난 8월 16일 만년설 지대를 지나 정상으로 향하고 있다. 대원들은 밤 2시에 베이스캠프를 출발해 7시간여만에 정상에 올랐다.
 2019 영·호남 합동 하바설산(哈巴雪山) 원정대가 지난 8월 16일 해발 5396m의 정상에 올랐다. 대원들은 베이스캠프인 ‘하바설산 대본영 이참(大本營 二站·해발 4100m)을 밤 2시에 출발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7시간여 만에 목표를 이뤘다. 이번 등반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던 큰 힘은 ‘동료애’와 ‘배려심’이었다. 대원들은 설산을 오르며 자신을 낮추고, 비우는 삶의 자세를 배웠다. 
하바설산 정상은 거대한 바위군의 맨 꼭대기로 ‘해발 5396m’를 표시한 나무말뚝이 세워져 있다. 정상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대원들.

◇‘산은 왜 오르는가?’ 자문하며 등정=하바설산을 등정하는 당일, 날씨가 관건이었다. 밤 1시께 잠을 깬 원정 대원들은 가장 먼저 숙소 밖으로 나와 밤하늘을 살펴봤다. 다행히 남쪽방향 하바설산 위로 구름한점없이 보름달이 둥실 떠있었다. 바람도 잠잠했다. 예감이 좋았다.
 대원들은 정상에 오르기 위해 필수적인 고글과 피켈, 아이젠 등을 꼼꼼하게 챙겨 넣었다. 발목에 스패츠를, 허리에 안전벨트를, 머리에는 털모자와 랜턴을 착용했다. 그리고 함께 모여 떡라면으로 식사를 했다. 보온병에 뜨거운 물을 가득 채웠다.
20명의 대원들은 밤 2시에 5개 그룹으로 나눠 캠프를 출발했다. 정상까지는 4.5㎞거리. 캠프를 벗어난지 얼마되지 않아 경사진 돌길이 시작됐다. 대원들은 말없이 앞사람을 쫓아 발걸음을 내디뎠다. 금세 숨이 차오며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흔히 사람들은 산에 가는 이들에게 “도로 내려올 산을 왜 힘들게 오르는가?”라고 묻는다. 영국 산악인 조지 맬러리(1886~1924)는 이러한 우문(愚問)에 “거기에 산이 있으니까”(Because it is there)라고 답한 바 있다. 대원들은 어떤 대답을 화두(話頭)처럼 품고 있을까? ‘산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나 ‘겸손의 미덕을 배우기 위해서’, ‘나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산은 자연 그대로이고 언제나 변하지 않기 때문에‘ 등 산악인마다 모두 다른 대답을 할 것이다.
박정수(67·광주교대 OB) 대원은 교대 산악반을 지도하셨던 은사(고 최성호 교수)의 말씀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산이 좋아 산에 다니다보니 산보다 더 좋은 사람들을 만나 이젠 정말 요산지락(樂山之樂)을 버릴 수 없다.”
8월 한여름이었지만 동쪽 밤하늘은 어느새 페르세우스와 마차부, 오리온자리와 같은 겨울철 별자리로 바뀌어 있었다. 앞서가는 대원들이 하늘과 맞닿은 바위에 올라설 때면 마치 우주 속을 유영하는 것 같은 실루엣 형상으로 보였다.
베이스캠프를 출발한지 4시간 30분쯤 흘렀을 때 동쪽 지평선위로 붉은 띠가 형성됐다. 그리고 6시54분께 해가 솟았다. 5000m 가까운 고산에서 맛보는 가슴벅찬 일출이었다. 배낭을 짊어진 채 바위에 기대고 숨을 고르던 대원들은 태양을 마주보며 양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눈앞에는 해가 뜨고, 등 뒤로는 보름달이 지고 있었다. 너무나 조화롭게 양존(兩存)하는 지구별의 장관을 카메라로는 담을 수 없었다.
이종화(63) 목포대 도시 및 지역개발학과 교수는 “설산과 하얀 암벽의 양존, 일출과 월몰의 양존이었다. 그리고 도전하고 싶은 마음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양존하는 상태에서 산에 오르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힘겨운 7시간 등반 끝에 정상 올라=고도를 높일수록 대원들의 발걸음은 더욱 무거워졌다. 걸어도 걸어도 오르막길이 끝없이 이어졌다. 누군가 등 뒤에서 배낭을 잡아당기는 듯 앞으로 나가기가 무척 힘들었다. ‘휴지 한 장도 빼놓으라’는 말이 실감났다.
대원들은 오전 7시 30분께 캠프1(해발 4950m)에 도착했다. 만년설이 시작되는 경계였다. 대원들은 바람을 피할 수 있는 바위아래에 배낭을 내려놓고 행동식으로 칼로리를 보충했다. 워낙 만년설에서 반사되는 햇빛이 강렬해 고글은 필수적이었다. 등산화에 아이젠을 착용하고, 오른손에 피켈을 쥐었다. 본격적인 설산등반은 이제부터였다.
중국 가이드들이 안전을 위해 등반코스에 미리 자일을 설치해뒀다. 경사진 만년설에 일렬로 늘어선 대원들은 캐러비너를 이용해 엉덩이를 감싼 안전벨트와 자일을 연결했다. 왼손으로 몸과 자일을 연결하는 줄을 잡고, 오른 손으로 피켈을 힘껏 만년설에 찍으며 한발 한발 올랐다.
하바설산 정상은 거대한 검은 바위산의 정점(頂點)이었다. 남쪽은 천길 낭떠러지였다. 자연히 등반코스는 캠프1에서 동남쪽 능선을 따라 오른 후 다시 북쪽 경사진 면을 따라 ㄱ자 코스로 올라가야만 했다. 기자는 캠프 1을 출발한지 1시간 25분, 베이스캠프를 떠난 지 7시간 15분쯤 지난 오전 9시15분에 마침내 정상에 도착했다. 베이스캠프를 떠난 대원 20명 가운데 최은희 센터장과 김근영·강행미(황평주 등반교실) 여성대원을 비롯해 모두 13명이 정상에 올랐다.
“해발 4900m를 지나면서 한 걸음 한걸음이 천근만근이었다. 바로 앞이 정상이지만 몸과 마음이 따로였다. 드디어 정상 등정에 성공하면서 말로 표현 못할 기쁨이 온몸에 흘렀다.”(임영진·43·바자울산악회)
정작 설산 정상에는 눈이 쌓여있지 않았다. ‘하바설산(哈巴雪山) 5396M’라 쓰인 정상 표지목과 잡석뿐이었다. 5~6명이 앉기도 비좁았다. 중도 포기하지 않고 정상에 무사히 도달했다는 뿌듯함과 안도감, 허탈함이 가슴속에 가득 찼다. 눈길이 닿는 끝까지 올망졸망한 산들이 발아래에 산수화처럼 펼쳐져 있었다. 하바촌과 베이스캠프 숙소에서 읽었던 당나라 ‘시성’(詩聖)으로 불린 두보의 시 <태산(泰山)을 바라보며>(望岳)를 떠올렸다.
  “…언제가 반드시 저 정상에 올라(會當凌絶頂)/ 뭇산의 소소함을 한번 굽어보리라(一覽衆山小).”(김의정 편저 『두보시선』 문이재 刊)
 ◇말 타고 하산하며 ‘차마고도’ 마방을 연상해=대원들은 힘겹게 올라온 코스를 되밟으며 하산을 시작했다. 옥룡설산 등 주변 풍경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내려오는 길에 눈밭에서 버둥거리는 벌 한 마리를 봤다. 풀 한포기, 꽃 한 송이 없는 5000m대 고산까지 벌은 왜 날아왔을까? 미물(微物)은 등반 초반에 머릿속에 떠올렸던 ‘왜 산에 오르는가?’라는 명제를 문득 다시 한 번 생각하게끔 만들었다.
“(설사면을 내려가면서) 자칫하면 아이젠을 착용한 두 발 스텝이 얽혀 넘어질 수 있어요.”
김남진(바자울 산악회) 대원이 기자에게 주의를 줬다. 그리고 측면으로 서서 아랫발을 내리고 윗발을 따라 내리는 발동작을 직접 보여주며 설명을 했다. 그는 ‘선배님과 친구, 후배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의 책임을 다하자’는 마음에서 후미 조장을 맡아 대원들을 챙겨 올라왔다.
하산길은 오를 때보다 더욱 힘들었다. 7시간동안 정상을 목표로 오르며 탈진할 듯 체력이 급격히 떨어진 때문이었다. 게다가 갈증이 점점 심해졌다. 물을 마셔도 금세 혀가 바짝 타들어갔다. 베이스캠프에서 보온병에서 넣어 챙겨갔던 온수는 올라가면서 진즉 바닥이 났다. 다행히 동행하던 염행삼(61·조선대산악회 OB) 대원이 기자에게 “물 한 방울도 나눠 먹자”면서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물을 선뜻 나눠주었다. 생명수였다.
하얀 석회암으로 이뤄진 하산 길은 낯설었다. 분명 새벽에 올라왔던 길인데도 어둠속에서 지날 때와 딴판이었다. 생경한 외계 행성의 어느 한곳을 걷는 듯 했다. 발아래는 돌뿐이었다. 신기하게도 바위틈새에서 작은 키의 야생화가 노란 꽃을 피우고 있었다. 눈길을 멀리 두면 온통 초록빛깔 세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었다.
석회암지대와 나무숲 경계에 베이스캠프인 ‘하바설산 대본영 이참(大本營 二站)이 자리하고 있었다. 정상에서 캠프1까지 20여분, 캠프1에서 베이스캠프까지 꼬박 3시간이 소요됐다. 밤 2시에 떠나 정상을 찍고 왕복 9㎞를 두발로 걸어 11시간30분만인 오후 1시 30분에 원점으로 돌아온 것이다.
원정대원들은 1시간여 동안 휴식을 취한 후 짐을 꾸려 하바촌으로 향했다. 몇몇은 미리 예약해둔 말을 타고 한발 늦게 출발했다. 말 비용은 400위안(한화 6만7000여원)이었다. 기자 역시 말을 이용했다. 말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암말과 수당나귀 사이에서 태어난 노새였다.
중국인 마부는 말고삐를 잡고 힘든 기색 없이 성큼성큼 걸어갔다. ‘차마고도’(茶馬古道)를 오가던 상인인 ‘마방’(馬幇)의 모습이 연상됐다. 말 잔등에서 떨어지지 않고 경사진 숲속 길을 내려가기 위해서는 안장 앞뒤 손잡이를 양손으로 단단히, 요령 있게 잡아야 했다. 베이스캠프에서 하바촌까지 7㎞거리를 걸어서 5시간, 말을 타고 3시간 걸려 도착했다.
◇‘동료애’와 ‘배려심’이 가장 큰 힘=이번 등반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던 큰 힘은 ‘동료애’와 ‘배려심’이었다. 서로 힘든 상황에서도 지친 대원의 배낭을 나눠 짊어졌고, 목이 타들어가는 대원에게 한 모금 남은 식수마저 건넸다. 또한 고소증세로 힘겨운데도 불구하고 더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말을 양보하기도 했다. 고소 후유증으로 심한 위통이나 허리통증으로 밤잠을 못 이룰 때 치료하며 곁을 지켰다.
‘최고참’ 대원인 임건남(75) 무등산악회 운영위원장과 선종구(74) 광주시산악연맹 지도위원장, 박태규(73) 조선대산악회 OB 등 3인방의 솔선수범하는 자세와 유머넘치는 화술(話術)도 원정대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이번 원정에는 경남지역 10대 청소년 3명이 참가했다. 최연소 대원인 고준호(양산중 3)군과 박창현(양산고 1)군, 박선영(김해 분성고1)양은 고소증세로 해발4100m 캠프에서 중도 하산했다. 학생들은 “트레킹 도중 초원지대에서 먹었던 컵라면 맛이 최고였다. 하산하며 고소증세가 나아져 행복했다. 정상에 못 간 것이 아쉽지만 다음 기회에는 꼭 오르고 싶다”고 말했다.
김재열(59·살레시오 산악회) 대원은 “현지음식이 맞지 않아 에너지가 없었고, 고도적응에 어려움을 겪어 더욱 힘들었다. 그러나 대원들이 모두 한 팀이 돼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10대부터 70대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대의 대원들은 설산을 오르며 각자 나름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밝힌다. 제각기 마음속에 설산을 품었다. 극한의 환경 속에서 자기 자신의 한계를 극복한 대원들은 새로운 꿈을 꾼다.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앞으로는 마음을 비우고 정리하는 삶을 살아야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든다.”(정균표·67·백악산악회 회장)
임승진 단장(광주시산악연맹 회장)은 “산을 사랑하는 영·호남 산악인들이 아무 사고 없이 등정하는 큰 성과를 거뒀다. 내년에도 다시 한번 중요사업으로 진척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방걸원 원정대장(광주대 IT자동차학과 교수)은 “(하바설산은) 충분한 훈련과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오를 수 없는 산인 것 같다. 이번 원정은 광주시산악연맹의 해외 원정사에 남을만한 성과로 향후 해외원정에 보다 많은 가맹단체 회원들의 참여가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용철 등반대장은 “고산등반은 육체적으로 힘들고 정신적으로 피곤한데 각기 다른 단체의 대원들이 서로 융합해 무사히 산행을 마친 것에 대해 감사드린다”고 강조했다.
/글·사진=중국 윈난성 송기동 기자 s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