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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갈 것인가, 되돌아갈 것인가
2017년 03월 15일(수) 00:00
박 치 경 편집부국장·정치부장
엊그제 대한민국 역사와, 대통령사(史)에 커다란 ‘이정표’가 세워졌다.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파면 결정을 함으로써 박근혜의 사표를 국민에 전한 것이다. 5·16 및 12·12 쿠데타가 총칼에 의한 ‘정권 찬탈’이었다면, 박근혜 탄핵은 민의가 결정한 ‘정권 퇴출’ 명령이었다. 국민의 손으로 직접 뽑힌 대통령이라 해도 책무를 다하지 못하고 유권자의 뜻을 어기면 언제든지 사표를 내야 한다는 선례를 남겼다.

이로써 또 하나의 대통령 잔혹사가 추가되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부정선거로 하야하더니, 윤보선은 박정희의 총구 앞에서 힘없이 물러섰다. 박정희는 부하 김재규의 흉탄에 스러졌고, 과도 정부를 맡았던 최규하는 신군부의 위세를 끝내 버티지 못했다.

이후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은 제대로 임기를 마치긴 했지만 전-노는 감옥에 가야 했고, 김영삼-김대중은 임기 중 아들과 측근들 때문에 국민에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도덕성을 가장 큰 장점으로 삼았던 노무현마저 검찰 수사를 받고 비운의 생을 마감했다.

현직 대통령 파면은 박근혜가 처음이다. 파면으로만 끝나지 않고 검찰 수사가 기다리고 있어 앞으로 그의 운명은 더욱 험난할 것이다.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한없이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를 그는 어쩌면 가장 불행한 대통령으로 기록될지 모르겠다.

우리는 박근혜의 아버지에 이어 또 한 번의 대통령 ‘유고’ 사태를 맞았다. 미국이나 유럽 국가에 비해 민주주의 역사가 일천한 우리에게 대통령의 부재는 엄청난 일이다. 두 달간의 짧은 공백기라지만 대통령이 비어 있다는 사실은 ‘불안’ 그 자체요, 국가적 불행이다. 우리는 앞으로 두 달이 채 못 되는 기간 안에 새로운 대통령을 뽑아야만 한다.

그렇다면 국민이 바라보는 제19대 대선의 초점은 어디로 모이는가. 우선 정치권은 새로운 권력 다툼을 위해 이미 출발선을 지났다. 야권은 국가와 국민을 제대로 이끌기 위한 유일한 수단으로 정권교체를 되뇌고 있다. 보수 진영은 진보에 정권을 맡겼다가는 국가의 뿌리부터 흔들릴 수 있다며 이에 맞선다. 이에 비해 ‘촛불’로써 무능하고 ‘비선’에 휘둘린 대통령을 내려앉힌 국민은 차기 대선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중대한 ‘분수령’으로 여긴다. 건국 이후 ‘한국병’이라 일컬어지던 정경유착과 부패, 지역·이념·빈부·세대 갈등을 넘어 완전히 새로운 나라를 만드는 갈림길로 삼아야 한다는 주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파면된 박근혜가 보여 준 서울 삼성동 사저 귀갓길 풍경은 우리의 앞길이 결코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비록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전해졌지만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몰라도 반드시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는 박근혜의 앙칼진 항변에는 험난한 역정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수백 명의 박근혜 지지자들이 울분을 토로하던 장면에서는 YS(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 수천억 원대의 비자금 축적 혐의를 받던 전두환의 ‘골목길 회견’이 오버랩됐다.

이렇듯 앞길이 험난해 보일지라도 19대 대선에서 우리는 양 갈래 중 하나의 선택을 해야만 한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모든 병폐의 근원이 된 ‘반칙과 밀실’을 답습하도록 할 것인가. 아니면 ‘법치와 합리’의 성숙한 사회의 문을 열게 할 것인가? 지역과 패거리의 폐습에 갇혀 악순환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인가, 탕평과 포용으로 통합의 세상을 열어젖힐 것인가?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박근혜-최순실로 지칭되는 구시대 적폐가 자취를 감춘다 해도 우리 마음에 남아 있는 잔재를 시원하게 도려내지 못한다면 ‘구악’은 언제든 마각을 드러내게 마련이다. 부패한 권력과 정실의 맛은 달콤하기 그지없다. 한 번 혀로 느끼면 쉬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운 치명적인 그 맛. 한 번 즐길 때마다 꼭 그만큼 썩어 간다고 생각하면 어찌 두렵지 않으랴.

정치권은 지금 온갖 감언이설로 정권을 맡겨달라고 유혹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더욱 각별하게 각성해야 한다. 여든 야든 정권을 거머쥔 후 슬며시 찾아오는 야합의 관성을 이겨내지 못하는 순간 무늬만 다를 뿐 또 다른 구태가 자라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선택은 온전히 유권자 당신들의 몫이다. 지난겨울 혹한에도 발을 동동 구르며 새로운 나라를 만들자고 간절하게 외쳤던 당신들이건만 이제 고작 선택의 열쇠 하나를 얻었을 뿐이다. 당신들이 지닌 열쇠가 환한 미래를 열어 줄 것인가, 아니면 다시 어둠의 계단으로 떨어지게 할 것인가. 모든 것은 그대들의 손에 달려 있다.

/uni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