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전당이 비엔날레를 만났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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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전당이 비엔날레를 만났을 때
2017년 02월 15일(수) 00:00
윤 영 기 문화미디어부장
반갑다. 광주 문화행사를 대표하는 비엔날레가 오는 2018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리게 됐으니 말이다. 광주비엔날레 재단과 문화전당이 최근 비엔날레를 문화전당에서 치르는 내용을 골자로 한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비엔날레(2018년 9월7일∼11월11일)가 북구 용봉동 전시관에서 벗어나 전체 행사를 외부에서 치르는 것은 (재)광주비엔날레 창설 이래 처음이다. 지역 문화계에서도 이를 반기고 있다. 국제적 인지도가 있는 광주비엔날레와 아시아 최대 규모 인프라를 갖춘 문화전당의 협력은 지역민이 고대해 온 바이기도 하다.

한데 비엔날레가 문화전당과 손잡은 속사정이 좀 묘하다. 광주시 북구 용봉동에 있는 비엔날레 전시관 노후 문제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난 1995년 건립한 전시관(전체 약 8300㎡ 규모) 곳곳에서 노후 현상과 누수가 되풀이되고 있다고 한다. 비엔날레 측은 당시 7개월 만에 급조된 탓에 하자투성이라고 설명한다. 국제적인 행사를 치르기 위한 시설로는 부적합하다는 얘기다. 따지고 보면 비엔날레의 ‘외출’ 결정은 시설 신규 건립의 당위성을 내세우기 위한 ‘시위’ 성격이 짙다.

그렇지만 잠시 이런 사정을 접어두면 비엔날레와 문화전당의 협력은 긍정적 효과가 기대된다. 특히 비엔날레는 현재 정부가 단행한 일몰제(2008년부터 진행한 7회 이상 국제행사는 국비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제도)에 걸려 있는 터라 이로 인한 행사 축소 여파를 일정 부분 상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행사가 국가기관인 문화전당에서 열리면 정부 행사에 간접적으로 포함돼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는 관점에서다.

문화전당과 비엔날레 측도 관람객 특수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이미 문화전당에서 지난 비엔날레의 일부 전시를 개최하면서 양측은 이를 간접적으로 경험한 바 있다. 문화전당 측에서도 비엔날레 관람객(2016년 기준 40만 명)을 흡수, 문화전당을 국제적으로 홍보하는 계기로 삼으려는 내심을 감추지 않는다.

두 기관의 협력이 바람직하지만 한편으로 좀 걸리는 대목이 없지는 않다. 광주문화 발전을 위한 ‘공리’(公利)가 생략된 ‘실리’(實利)적 접근이라는 혐의를 거둘 수 없기 때문이다. 양측의 곤궁한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론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는 얘기다. 정작 비엔날레가 문화전당에서, 문화전당이 비엔날레와 협력을 바탕으로 무엇을 보여 주겠다는 것인지, 어떤 콘텐츠를 마련하겠다는 지를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화전당에서는 비엔날레 행사 기간(60여 일)에 자신들이 보유한 공간을 빌려주고 무엇을 하겠다는 설명도 없다. 이는 ‘왜’라는 본질적인 고민과 사유의 과정을 거쳐야 나오는 결론이다. 아쉽게도 두 기관이 이런 고민을 했다는 흔적을 현재로선 찾을 수 없다.

두 기관의 협력이 단지 ‘공간적 공유’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여기에는 서로 한계를 인정하는 반성적 사유라는 전제가 필요하다. 그동안 비엔날레는 국제행사라는 명성에도 미술 영역이나 작품 순도에서 신선함과 새로움을 보여 주지 못한 게 사실이다. 지난 2014년 비엔날레 혁신위원회를 가동하고 체재를 정비했지만, 관람객들이 변화를 체감하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안타깝게도 행사 성공을 위한 직원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외부의 평가는 회를 거듭할수록 격차가 나고 있다.

지난 2015년 개관해 걸음마 단계인 문화전당은 오히려 서서히 잊혀 가는 듯하다. 전시·공연 프로그램에서 인지도와 명성을 끌어올릴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게 결정적 아킬레스건이다. 따라서 국내 외 인지도가 시설 규모를 따르지 못한다는 게 지역 문화계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제법 흥미로운 전시를 열면서도 관람객들을 문화전당 문턱 안으로 끌어들이는 데는 늘 실패하고 있다.

이야기를 원점으로 돌리자면, 문화전당에서의 비엔날레 개최는 두 기관이 새롭게 출발하는 전기가 돼야 한다. 지난 2014년 행사 주제를 ‘터전을 불태우라’로 정해 재기를 다짐했던 비엔날레는 문화전당이라는 터전에서 질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행사 존립가치와 정체성을 재확립하고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비엔날레 재단의 바람대로 전시 공간을 새로 짓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지름길로 들어설 수 있다. 관성대로 전시를 치른다면 전당 개최 효과는 제로에 그칠 것이다.

문화전당은 문화콘텐츠 창작과 제작이라는 본령을 멋지게 구현해야 한다. 문화산업의 씨앗이 될 수 있는 ‘광주 브랜드’ 공연이나 전시를 선보이는 것은 문화전당의 당위이고 문화전당 건립을 바랐던 시민들에게 응답하는 길이다. 비엔날레와 협력을 단초로 지역사회 문화예술·콘텐츠 기관과 협력 사업을 실제로 수행하고 그 결과로 ‘지역에 인색하다’는 평가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두 기관이 상생 협력을 꽃피울 시간은 아직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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